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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bino Aug 26. 2021

걷다가 완성된 하루

shall we walk?

 걷기는 감각을 깨운다. 걷다가 갑자기 콧속을 급습한 달콤한 아카시아 꽃향기로 행복감을 느끼기도 하고, 때때로 잡생각은 가라앉고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뇌와 가장 긴밀하게 연결된 신체 부위는 다리인 듯 같다. 과학과는 전혀 관련 없는 주관적인 경험에 의한 판단이다.  다리를 움직이는 것은 어쩌면 바느질과 비슷할 수도 있다. 삶의 조각들을 이어 붙여 나름의 문양이 새겨진 작품을 만드니 말이다. 이런 엄청난 일은 언제 일어날지 전혀 예상할 수 없기에 더욱 짜릿하다.


 몸을 움직여야 한다는 명령을 받았다. 휴가를 보내고 격리 생활을 하며 2주간 운동을 하지 않았기에 내 몸이 할 수 없이 내린 결정이었다. 근무가 시작되자 피곤은 눈과 머리에 붙어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고 몸은 두들겨 맞은 듯이 찌뿌둥했다. 이 불쾌한 것들을 꼭 떨쳐버리고 싶었다. 빨리 근무가 끝나고 밖에 나가 뛰면서 말이다.


  오랜만에 하는 운동이어서 그런지 조깅 코스의 한 바퀴 반 정도를 뛰었을 때 무릎 통증을 느꼈다. 결국 오래 뛰지 못해 아쉽지만 걷기로 했다. 달리기를 멈추고 천천히 걷자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휴가를 다녀온 사이 날씨는 선선해졌고 노을은 좀 더 옅어졌으며, 날씨가 갠 지 얼마 되지 않아 도로엔 작은 물웅덩이가 즐비했다.


 물웅덩이 속에도 노을  하늘이 담겨있었다.  좁은 수면 위에 비친 세상은 진짜 하늘보다  아름다워 보였다. '   세상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데  좁은 세상이  아름다워 보일까?'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한   바퀴를  걸었다. 그때 어디선가 푸드덕 소리가 났다. 송골매가 잣을 먹고 있던 청설모를 공격하고 있었다. 청설모는 가까스로 공격을 피했고  자리엔 먹다 남은 잣만 놓여있었다. 다행히 목숨을 부지한  나무에 오르는 청설모를 보고서야 아까 던진 질문에 답할  있었다. '그건 아마 물웅덩이  세상은 안전해서였을 거야. 그곳은 존재하지 않는 곳이기에 안전할  있지. 세상은 절대 안전한 아니니까. 봐봐. 오늘도 송골매는 청설모를 공격했잖아.' 세상은 안전하지 않은 곳이라는 감상은 생각을 다른 곳으로 옮겨 붙게 했다. 달리기를 시작하기 , 조승연 작가의 유튜브에서 벤자민 프랭클린이 했다고 전해지는 말이 떠올랐다. "지금의 안전을 위해서 자유를 포기하는 사람은   가질 권리가 없고   잃게  것이다." 세상을  위험한 곳이라고 생각하자 오히려 마음은 편해졌다.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나를 고민할  가장 복잡한 문제는 안정이냐 자유냐 하는 문제이다. 세상은 위험하고 죽음이 자기 앞에 항상 도사리고 있다면, 안정성을 어느 정도 포기하고   자유를 누리고 원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강력한 바람이 느껴졌다.  이상의 질문은 떠오르지 않았다. 순간 어떤 생각을 시작으로 안정이냐 자유냐의 문제까지 다루게 되었는지 의아해하며 한편으론 오늘 걷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걷기란 전혀 관련 없어 보이던 일들을 엮어 하루를 하나의 울림으로 만드는 일은 아닐까. 조승연 작가의 유튜브, 조깅과 걷기, 물웅덩이에 비친 세상, 송골매의 청설모 공격 그리고 앞서 말한 것들에 시선과 감각이 머물게 만든 모든 것들. 알 수 없는 무언가들과 관련 없어 보이는 일련의 사건들이 만든 하루를 사랑하게 되었다. 매미가 미친 듯이 울어대고 그 울음에 따라 사방에서 부드럽게 밀려오는 바람을 느끼며 걸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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