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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bino Sep 29. 2021

소화되지 않는 삶

나도 잘 모르는 나

큰일에는 진지하게 임하면서 작은 일에는 무관심한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 몰락은 바로 거기서 시작된다고. 인류는 존중하지만 자기 하인은 괴롭히는 사람들, 조국이나 교회나 당은 숭배하면서 일상의 자잘한 일은 거칠고 소홀하게 다루는 태도, 거기서 붕괴는 시작된다고.
- 헤세 x 정여울, p47



 어디선가 기러기 울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캄캄한 밤하늘을 아무리 샅샅이 뒤져보아도 보이는 건 작은 별들뿐이다. 울음소리는 고개를 들면 보이는 하늘에서 분명히 들리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잠시 답답했다. 하지만 이내 작게 깔리는 풀벌레 소리와 풀내음 가득 머금은 시원한 바람, 작고 은은하게 빛나는 별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기러기의 울음소리, 이 모든 것이 자아내는 신비감에 도취했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잠시 빠져들었지만, 내 안에서 솟구치는 고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마음을 들여다보았지만,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 없었다. 그곳엔 아름답고 소박한 소리도 향기도 불빛도 없었다. 오직 어둠과 고통, 적막뿐이었다.     






 가끔, 아니 자주 나에 대해 전혀 아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잘 지내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두통이 몰려오고 무기력에 빠지고 가슴은 답답해진다. 고통스럽다는 사실만 뚜렷할 뿐 어떤 이유로 통증이 느껴지는지, 어디가 아픈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분명 보이지 않는 기러기 떼는 신비로웠는데 이 알 수 없는 고통은 자기 회의와 답답함의 늪으로 날 끄집어들인다.      






 분명히 몸이 이렇게 살다가는 힘든 시기를 보낼 거라는 신호를 보냈을 것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난 이 작은 신호를 잘 알아채지 못한다. 쉬어야 한다는 몸의 신호를 무시하고 머릿속의 이상을 실현하려는데 몰두하면 결국 몸이 말을 듣지 않게 된다. 더욱 강력한 신호를 보낸 것이다.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여기서 순순히 몸의 말을 듣겠지만, 난 그렇지 않았다. 무작정 생각이 시키는 일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원하는 만큼 하지 못하고 두통과 무기력으로 좌절한다. 짜증과 분노가 일지만 결국 고통받는 건 나 자신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통증의 원인을 찾기란 쉽지 않다. 고통을 유발하는 요인은 하나가 아닐 것이다. 얼마 전 겪은 엄청난 감정 소모, 군인이기에 제한된 자유로 인한 답답함, 목표를 이루기 위한 조급함 등이 날 힘들게 한다는 걸 발견했다. 물론 미처 발견하지 못한 원인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고통의 원인을 하나라도 발견하는 과정에서 이 고통을 타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고통을 벗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하면서 우린 이전보다 더 잘 쉴 수 있고 더 과감하게 고통과 마주하며 성장할 수 있다.      






 슬픔을 애써 외면하고 기쁨을 누리지 못할 , 현재를 즐기는 일과 미래를 준비하는 일의 균형이 깨질  지친다. 이런 상황에서 닥치는 고통(일종의 번아웃 증상) 휴식을 취하라는 명령 이상의 의미가 있다. 감정보다 해야 하는 일이 우선되고 현재가 말살당하는  과정에서 인간답게 살아가려면 현재의 풍요로움과 미래의 설렘을 온전히 느껴야 한다는 애정 어린 조언이자, 조급함으로 삶을 소화하지 못하는 존재들에게 삶을 음미하라는 명령으로 느껴진다. 단순히 자본주의 체제하의 부속품, 거대 집단의 일원이 아니라 개인으로 살아가라는 강력한 가르침으로 들리기도 한다. 적당히 쉬어야 우리는 삶을 외면하지 않고 내가 누구인지 탐구할 힘을 얻으며 현실을 충실히 살고 설레는 미래를 준비할 힘을 얻는다. 나도 이제 약간의 깨달음을 얻은  같으니  자신을  돌보아야겠다.


나를 직시할 수 있어야 아픔을 잘 치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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