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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bino Dec 10. 2021

피하고 싶은 일을 피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모르파티

 피하고 싶은데 겪어야 하는 일들이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일이 점점 가까이 다가올 때 우린 엄청난 스트레스를 경험한다. 하지만 막상 일이 닥치면 고통스럽긴 하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일이 쉽게 풀리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많이 배우기도 한다. 나는 현재 피할 수 없는 경험을 하고 있다. 아직 이 시간이 남길 결말은 모르지만, 운명이 결정되었던 순간은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모든 일은 반나절도 안돼서 결정되었다. 사실 그 결정이 났을 땐 이 판결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실감하지 못했다. 나는 병무청에서 신체검사를 받고 있었고, 성인이 된 후 오랫동안 만나지 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나 약간 들떠 있었다. 현역으로 군대 가기 싫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검사에 임했다. 그 덕분에 갑자기 전에 없던 허리 통증이 느껴지고 몇 년 동안 잠잠했던 천식이 도지는 듯했지만, 진단서가 없었기에 입증할 수 없었다. 군의관에게 난 평평한 발을 가졌다고 이야기했다. 그 얘기를 들은 군의관은 마치 지구가 평평하다는 말을 들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발을 꺼내 들자 그제야 그도 내 발이 충분히 경사지지 않았다는 걸 알았는지 엑스레이를 찍어보자고 했다. 기계가 고장 난 게 분명했다. 역시 방사선은 믿을 게 못되었다. 하지만 모든 검사가 끝나자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그 판결에 동의하는 듯 작은 기계는 내게 외쳤다. ‘3급입니다.’




 군대 가지 못할 정도로 눈이 나쁘지도, 발이 평평하지도 않았기에 올해 봄을 논산에서 보낼 수 있었다. 여름은 충청북도에서 보냈고 가을과 겨울은 북한과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서 보내고 있다. 다행히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났고 군 내 부조리도 과거에 비해 많이 없어진 상황이었다. 하지만 모든 일을 보고하고 눈치껏 행동해야 하는 군대에서 주체적으로 삶을 이끌어가기란 쉽지 않았고, 명령에 따라야 하고 자유가 제한된 상황에서 무기력해지기 쉬웠다. 자주 부대를 빙 둘러싼 울타리를 보고 생각했다. ‘이 울타리는 밖에서 누군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만든 것일까, 아니면 안에 있는 사람이 밖으로 못 나가도록 만들어진 것일까.’ 삶의 통제권을 잃었다는 상실감과 억압된 자유로 인한 답답함으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세상에서 제일 착잡했던 순간


 시간이 흐르며 군 생활에 점차 적응하고 휴가도 몇 번 다녀오니, 나름 여유가 생겼다. 스트레스로 힘들어하며 시간을 보내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히 이 순간도 삶의 일부이니 말이다. 그리고 생각했다. ‘군대가 진짜 나쁘기만 할까? 분명히 장점도 존재하지 않을까?’ 무언갈 떠올리려고 했지만, 자꾸 머리가 하얘졌다. 금방 찾을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다시 곰곰이 지난날을 곱씹어보니 꽤나 쓸만한 점들이 있었다.




 군대는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곳이다. 항상 일찍 일어나 무언가를 하고 싶었기에 새벽 기상 습관 들이기에 좋은 환경이었다. 일찍 일어나려면 일찍 자야 한다. 군대는 12시 전에 잠들기 최적의 장소이다. 핸드폰, 술자리 등 잠과 나 사이를 떼어놓으려는 유혹이 적다. 보직 상 남들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는데 그땐 불침번이 나를 깨워준다.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들이며 아침에 무언가를 해도 좋지만, 그냥 일찍 일어나서 아침의 분위기를 느끼는 것도 컨디션에 큰 영향을 준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침에 시원한 공기를 마시고 산너머 붉은 주황색이 하늘을 점점 밝히는 것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세상과 함께 시작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일수도 있고, 삶을 자신의 바람대로 살 수 있다는 희망이 보여서 일 수도 있을 듯하다.




 많은 부대가 시골에 있기에 군대에서 누릴  있는 장점은 날씨 좋은 밤마다 많은 별이 보이는 밤하늘을 감상할  있다는 점이다. 출퇴근하며 귀가 떨어질 듯한 칼바람을 견디며 잠시  놓고 일정한 패턴 없이 하늘에 뿌려져 있는 별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뚫리는 느낌이 든다. 아마 이유 모를 해방감이 드는 이유는 밤하늘과 군생활이 았기 때문에 마음의 위안을 얻는  아닐까? 자아실현과 개인의 자유보다는 공동의 목표가 우선되는 캄캄한 곳에서 생활할수록 마음속엔 간절히 갈망하는 것들이 별처럼 빛나기 시작한다. 가족, 친구, 자유, 주체적인 , 여행 등이 내면에서 찬란히 빛나고 있다. 시골에 위치한 부대에선 밤하늘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자기 마음속 별들을 찾을  있다.




 운명에 떠밀려 어둠 속으로 떨어졌지만, 그 어둠 속에서 어떻게 행동할지는 나의 몫이다. 어두운 곳에 웅크려있을 때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일어나 하늘을 보자 반짝이기 시작했다. 평소에 화려한 빛에 가려져서 보지 못했던 소중한 내적 가치들과 만나는 일, 나 자신과 조우하는 일이 아마 군생활을 지탱해주고 그 후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하지 않을까. 마음을 밝히는 별을 찾기 위해 난 일찍 일어날 것이고 타인의 별에도 관심을 가지면 어느새 나만의 밤하늘에도 수많은 별이 반짝이고 있으리라 믿는다.


밤하늘의 별은 자세히 볼수록 더 많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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