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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bino Feb 04. 2020

뜻하지 않았던 고급 음식, 송아지 김치찌개

프랑스 교환학생 이야기

 오늘은 김치찌개를 먹는 날이었다. 먹다 남은 김치, 마늘과 양파는 있었다. 돼지고기만 사면 됐다. 마침 장을 봐야 했고 아침 일찍 마트로 향했다. 아침은 평화로웠다. 적당히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여유롭게 새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기숙사에서 막 나와서 찍은 사진

 평소와 다름없이 포장된 특가 할인 삼겹살을 사러 정육 코너로 돌진했다. 평소에 삼겹살로 즐비하던 매대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고기로 가득했다. 아마 양고기였던 것 같다. 약간 당황했지만 2주나 브장송에서 살았는데 이 정도로 놀랄 수는 없었다. 내적 당혹감을 숨기고 발길을 유제품 코너로 돌리려고 할 때 프랑스 할머니와 눈을 마주쳤다. 이주 동안 관찰한 바에 의하면 프랑스인들은 이럴 때 웃으며 ‘Bonjour(봉쥬흐)’라고 한다. 눈을 마주치고 0.2초가 지나기 전에 내 입에서도 bonjour가 나왔고 입가엔 미소가 뗘있었다. 다행히도 그 할머니는 동양인인 나를 코로나 바이러스 덩어리로 생각하지 않으셨고 웃으면서 인사해주셨다. 그리고 할머니는 말하셨고 난 다시 미소만 지어 보였다. 아무것도 알아듣지 못했던 것이다. 현지 분과 대화하는 건 흔치 않았기에 여기서 이야기를 끝내고 싶지 않았다. “뭐 사러 오셨어요?”라고 했고 할머니는 대답하셨다. 이번엔 기필코 듣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었을까 들리는 단어가 꽤 많았다. “난 고기 이것저것 사러 왔어.” 그중에 ‘morceau(모흐쏘 – 일부분, (고기의) 부위)’라는 단어가 들렸다. 이거 어제 외운 단언데 ㅎㅎㅎㅎ 외국어를 배우면서 어제 만해도 모르는 단어가 들리고 이해될 때 정말 행복하다. 우리는 서로의 즐거운 하루를 빌었고 요플레를 사러 갔다.   

 이것저것 사면서 마트를 한 바퀴 돌고 다시 정육 코너를 맞닥뜨렸다. 여유를 잃지 않은 채 고기들을 정독하면서 지나갔다. 삼겹살 같은 걸 발견했다. 적당한 기름과 비계를 보아서 이건 확실히 삼겹살이었다. 하지만 가격이 원래 사던 가격보다 배는 비쌌기에 망설이다가 결국 사고 말았다. 

 삼겹살을 찾는데 오래 걸렸지만 꽤나 순조로운 하루였다. 게다가 마트에서 집에 오는 길에 들린 약국에서 브장송 시내의 약국이란 약국은 다 다녀 봐도 없었던 마스크와 거기에 손세정제까지 살 수 있었다. 가벼운 마음과 무거운 손으로 집에 들어왔고 4층까지 올라오느라 땀이 많이 났다. 그래도 과일을 많이 사서 좋았고 한동안은 아무 걱정 없이 쉴 수 있었다.

마음이 든든해지는 사진, 저기 요플레 통은 계란 유통기한 분리선이다


 저녁 먹기 위해 냄비 밥을 했다. 쌀뜬 물을 따로 담아두고 밥도 안쳐놓고 양파와 마늘을 손질했다. 마늘은 비닐봉지에 담아다가 주먹과 칼 뒷부분을 이용해서 빻았다. 이제 고기를 잘라야 했다. 고생 끝에 산 삼겹살로 보글보글 김치찌개를 끓이고 따뜻한 밥과 함께 먹을 생각에 설렜다. 비닐을 뜯고 고기에 칼을 댔다. 살 부분은 부드럽게 잘렸는데 비계 부분이 너무 딱딱했다. ‘유럽 돼지비계는 딱딱한가? 아니 저번엔 안 이랬는데???’ 그때 처음으로 이 고기가 삼겹살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을 했다. 두려웠다. 순간 불 위에 올려져 살려달라는 애원하는 쌀알들의 모습이 생각났고 뛰어가서 밥 상태를 확인했다. 하마터면 탈 뻔했다. 물은 없었고 밥은 덜 익었다. 물을 더 붓고 약불에 올려놓은 뒤 다시 고기 앞으로 왔다. 이 고기의 부위를 알고 싶었다. 랩 위에 종이에 porc(뽀흐크-돼지)라는 단어가 있길 바랬다. 거기엔 porc는 없었다. veau(보)만 있었을 뿐,,, ‘veau가 뭐지?’ 모르는 단어였다. 마침 켜져 있는 노트북으로 프랑스 사전에서 veau를 검색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송아지’ 갑자기 고기가 낯설어지고 멘붕이 왔다. 내 기억으로는 난 송아지 고기를 먹어본 적이 없다. 유튜브에 급하게 소고기 김치찌개를 쳐봤다. 다행히 그런 음식이 있었다. 

아니야 넌 돼지고기야 ㅠㅠㅠ

 쌀뜬 물에 자른 고기를 넣고 한참 끓였다. 그리고 양파, 마늘, 김치를 넣었다. 한참을 끓었고 냄새는 그럴싸했다. 하지만 맛은 싱겁고 고기 비린내가 났다. 얼른 한국에서 가져온 고춧가루를 넣었지만 매워지기만 했고 냄새는 잡히지 않았다. 라면 스프도 넣었는데 효과가 없었다. 그렇게 냄새를 잡지 못하고 저녁 식사는 시작됐다. 따뜻한 맛으로 먹었다. 평소에 스파게티 먹으면서 그렇게 먹고 싶어 했던 보글보글 끓는 김치찌개와 흰쌀밥이 있는데 이젠 스파게티가 간절하게 먹고 싶었다. 얼마 먹었을까 이제 더 이상 먹으면 체할 거 같아 숟가락을 내려놨다. 냉장고에 남아 있는 고기는 어떡하지, 이 김치찌개를 버릴까 여러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남은 고기는 차차 생각하기로 하고 찌개는 일단 내일 생각해보기로 했다. 다음에는 진짜 삼겹살이랑 목살로 기가 막힌 김치찌개를 해 먹어야겠다고 결심했고 소화제를 먹으러 방으로 향했다.     

  

망한 김치찌개와 예쁜 하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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