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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bino Jan 11. 2023

게으름을 허락하지 않는 나라

할머니와 함께 떠나는 여행

 할머니와 여행을 떠나면서 7시간의 비행은 단연 큰 걱정거리 중 하나였다. 하지만 내가 할머니를 과소평가했다는 사실은 금방 드러났다.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할머니는 영화 2편을 보시고 간간이 독서하시면서 비행시간을 보내셨다. 안정적인 할머니의 컨디션, 인터넷을 할 수 없는 기내환경 덕분에 온전히 책을 보고 잠을 자는 데 시간을 할애할 수 있었다. 잠과 책이 질릴 때쯤 인도네시아 여행에서 어떤 경험할지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화산과 열대우림이 즐비하고 수많은 사람과 야생동물이 있는 곳을 누비는 상상을 했다. 여유로운 7시간이 지날 때쯤 우리가 탄 비행기는 안전하게 착륙했다.

비행기에서 먹은 두 번째 기내식!

 비행기 문을 나서자 눅눅한 습기와 코를 찌르는 동남아 특유의 섬유유연제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이국의 향취가 거의 3년 만에 해외에 온 날 긴장시켰다. 한껏 얼어붙은 마음으로 백신 접종 증명서 검사를 받으러 갔다. 간단한 인사말이 오간 뒤 증명서를 확인한 히잡 쓴 친절한 직원이 탑승권에 도장을 찍어주었다. 우리가 적절한 서류를 잘 가져왔다는 표시인 듯했다. 이제 도착 비자를 받아야 할 차례이다. 어디서 비자를 받아야 하는지 몰라 우왕좌왕하자 공항 직원이 영어를 하며 손가락으로 무언갈 가리켰다. 그가 쏟아낸 영어 중 어느 단어도 뇌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러자 내 비루한 영어 실력을 보다 못한 동생은 말했다. “비자받으려면 저기로 가야 한대.” 나와 할머니는 한 팀이 되어 비자를 발급하는 창구에 섰다. 먼저 할머니의 여권과 탑승권을 공항 직원에게 건넸다. 그는 7시간의 비행은 견딘 80대 노인에겐 어떤 질문도 하지 않고 비자를 발급해 주었다. 이제 내 여권과 탑승권을 그에게 건넸다. 그는 여유롭고 호의적인 미소를 띠며 내가 왜 인도네시아에 왔는지 물었다. ‘트래블’ 이 간결한 소리가 내 입에서 흘러나오자 그는 다시 인도네시아에 얼마나 있을지 궁금해했다. 내가 3주라고 대답하자 “오케이 3 데이즈”라며 시원하게 비자를 발급해 주었다. 3일을 있든 3주를 있던 편히 지내다 가라는 뜻이라고 미뤄 짐작해 본다.


 이제 한국에서 부친 짐을 찾을 차례였다. 인도네시아에선 수화물이 늦게 나오는 경우가 다반사이기에 한참 기다리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우리 짐은 인도네시아 역사상 가장 빨리 나온 수화물 탑 10에 버금갈 정도로 빨리 나왔다. 짐이 빨리 나오는 행운에 힘입어 낯선 환경에서 주눅 든 마음도 점점 기지개를 켜는 듯했다. 세관을 통과하자 아빠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아빠를 부둥켜안고 반가움과 무사히 도착한 안도감과 뿌듯함을 만끽했다. 공항엔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인파를 이루고 있었다. 비행을 마친 사람들을 기다리는 이들과 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뒤섞여있었다. 우리는 갑자기 치솟은 습도와 인파를 뚫고 무사히 차에 올라탔다.


 긴 여정으로 피로했기에 숙소에 도착해 간단히 라면을 먹고 잠들었다. 포만감과 에어컨 바람으로 뽀송뽀송해진 침구류로 그 어떤 것도 우리의 쏟아지는 잠을 방해할 수 없어 보였다. 한참 잠에 빠져 여기가 인도네시아인지 한국인지 헷갈릴 때쯤에 창문 밖에서 누군가 확성기에 대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새벽 4시였다. 인도네시아 인구의 87%를 차지하는 무슬림들의 기도 시간을 알리는 아잔이었다. 누가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게으르다고 했던가. 매일 4시애 기도하는 사람은 절대 게으를 수 없다. 아잔 소리는 자는 날 깨워 고정관념을 박살 냈다. 무슬림들이 메카를 향해 고개를 숙일 때, 나는 베개 깊숙이 고개를 파묻었다. 그렇게 인도네시아의 첫 아침을 맞았다.       

인도네시아에서 먹은 첫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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