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트디부아르와 하마
길거리 좌판에서 망고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망고의 달콤함을 즐기다 보니, 망고철이 서서히 끝나가고, 코트디부아르에 대우기가 찾아왔다. 운동하러 나가도 비가 쏟아져 바로 돌아오기 일쑤이고, 세찬 빗소리와 끊임없이 치는 천둥번개로 잠이 깨기도 한다. 시도 때도 없이 내리는 비 때문에 실외 활동이 힘들지만, 언제나 비를 뚫고라도 가고 싶은 장소는 있기 마련이다. 이번엔 애써 조상들이 이룩한 문명과 기술 발전을 벗어나 자연을 만끽하고 싶었다. 그렇게 일상과 도시를 떠나 하마를 찾아 나섰다.
동물원이 아닌 자연 서식지에 살고 있는 하마를 찾기 위해선 먼저 코트디부아르의 경제수도, 아비장을 벗어나야 했다. 간신히 잡은 새벽 택시를 타고 빗속을 질주하자 어느새 비는 그치고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창구에 버스 예약 내역을 보여주었다. 바로 티켓을 손에 쥘 수 있으리라는 예상과 달리 핸드폰조차 한참을 돌아오지 않았다. 버스표 대신 매표원이 나왔다. “서비스 센터로 따라오세요.” 바로 맞은편 대합실 한 구석에 있는 서비스 센터로 향했다. 거기서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여기는 아자메(Adjamé) 터미널이 아니라 요푸공(Yopougon) 터미널이에요.” 며칠 전 버스 예약 후, 버스 회사에 전화해 받은 터미널 위치가 잘못된 것이었다. 직원들은 예약 내역을 사진 찍어 어디론가 보내고 5분만 앉아서 기다리라고 했다. 큰맘 먹고 하마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 버스터미널에서 좌절될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10분 후에 요푸공 버스터미널에서 떠나는 티켓을 받을 수 있었다. 출발 시간은 7시, 티아살레(Tiassalé) 행이었다. 버스 출발 시간이 단 10분밖에 남지 않아 서둘러 인파를 다시 가로질러 버스에 탑승했다. 버스 시트는 비 올 때 창문이 열려 있었는지 한쪽이 축축했다. 젖은 시트를 피해 비스듬히 앉아 역동적인 상인들과 여행객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7시가 넘어서도 승객은 계속 버스로 밀려 들어왔다. 그때 깨달았다. 7시 출발이란 것은 7시(부터 승객이 다 차면) 출발한다는 이야기라는 것을. 버스 안이 승객으로 가득 찼고, 두 개 발권된 22번 좌석 때문에 버스 안이 소란스러워졌다가, 거의 모든 승객이 한 마디씩 거들고 나서 어찌어찌 갈등은 마무리되었다. 마침내 버스는 움직이기 시작했고, 운전기사 조수가 조금씩 달리는 버스 안으로 뛰어 올라타더니 앞뒤 문은 닫았다.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한 차는 사정없이 떨렸고, 엔진의 진동으로 인해 어느새 잠이 들었다.
2시간을 조금 더 가자, 티아살레(Tiassalé)에 도착했다. 목적지에 도착했지만, 당연히 하마는 터미널 옆에 살고 있지 않았다. 응지(N’zi) 강으로 가기 위해 가이드를 만나야 했다. 여행이란 자고로 느슨한 계획 사이의 여백에서 태동한다는 강한 믿음으로 인해, 원래 내려야 하는 터미널을 지나쳤다는 걸 티아살레 땅을 밟기 직전에 깨달았다. 하지만 여행은 이렇게 불확실성 속으로 삶을 던지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사상 무장을 한 채, 버스에서 내렸다. 툭툭 기사에게 가이드 접선 장소를 보여주자, 여긴 너무 멀어서 갈 수 없다고 했다. 다만 이곳으로 가는 바카(Gbaka) 터미널로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가이드는 이름에서부터 응지(N’zi) 강 근처에 있는 마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응지아누안(N'Zianouan)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바카 터미널에서 목적지를 이야기하고 나서, 매표원 아저씨가 타라고 하는 차에 탑승했다. 승객이 다 찰 때까지 약 30분을 기다리고 나서야, 살이 잘 발라진 생선처럼 뼈대만 남은 듯한 차가 승객을 가득 싣고 굴러가기 시작했다. 이 바카는 중간중간 시골 마을에 승객을 내려주기도 하고, 또 태우기도 하며, 가이드 접선지로 향했다.
만나기로 한 장소에 도착하자, 건장한 청년이 톱을 들고 나타났다. 가이드였다. 우리 일행 3명을 한 오토바이에 태우려고 시도하다가, 막상 타보니 이러다간 영영 하마를 못 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멀어서 안 간다며 가이드의 제안을 거절하던 툭툭 기사를 설득해서 우릴 태웠다. 탑승을 거부하던 툭툭 기사를 이해하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짧은 포장도로가 끝나고 긴 비포장도로가 펼쳐졌다. 비가 많이 내려서 이곳저곳 움푹 파여 있었고 물길도 크게 나 있었다. 기사님이 베테랑이 아니라면 우리가 타고 있는 오토바이 수레가 구덩이에 빠져 덜컹하며 허리가 툭툭 끊어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하지만 그는 프로였다. 수많은 장애물을 피하고, 피할 수 없다면 속도를 줄이며 앞으로 나아갔다. 상점과 노점이 늘어서있는 마을을 지나, 소들이 풀을 뜯고 있는 목초지를 지나, 툭툭에서 내려 나무다리를 건너며 점점 응지강에 가까워졌다.
툭툭에서 내려 각종 식물 설명을 들으며, 옥수수밭과 논을 지나갔다. 걸어가면서 가이드에게 물었다. “우리 오늘 하마 볼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나 돼요?” 그는 단호히, 그러나 친절하게 100%라고 확신했다. 이제까지 하마를 못 보고 간 사람은 없다는 것이었다. 안심이 되었다. 너무 덥지 않고, 다행히 비도 쏟아지지 않는 여행하기 좋은 날씨를 만끽하며 열대의 생명력이 느껴지는 거대한 아름드리나무들과 자연을 즐기며 하마를 찾는 트랙킹을 했다. 적당히 힘들 때쯤 저 밑으로 강이 모였다. 그리고 바로 옆엔 섬유질이 가득한 하마 똥과 육중함이 드러나는 발자국이 찍혀있었다. 하마의 땅에 들어선 것이다. 이제 하마를 발견하는 건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