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트디부아르와 하마
아주 옛날, 사람들은 거대한 동물을 신처럼 여기고 자신들의 정체성으로 삼기도 했다. 호랑이와 곰처럼 몸집이 거대하고 물리적 힘으로 인간을 압도하는 존재들에게 강한 생명력과 경외감을 느낀 것이다. 동물원에서도 이런 거대한 동물을 마주할 수 있지만, 이미 그들은 자연에서 지녔던 아우라가 사라진 상태이다. 어쩌면 나도 아주 먼 조상들의 관습을 따라, 토템으로 여길 만한 존재를 마주하고, 신기함과 두려움을 느끼고 싶어서 무의식적으로 하마를 찾고자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코트디부아르 응지(N’zi)강에 다달아 하마의 흔적을 만나자, 금방이라도 육중한 하마들을 마주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마음이 부풀었다.
강변을 따라 걸었다. 점점 태양 아래서 걷는 시간이 길어지자, 마음속 낙천성도 휘발되었다. 가이드도 마음이 급해졌는지 종종 우리를 그늘에서 쉬게 하고 여기저기 하마가 있는지 탐색하고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점점 다리에 피로는 쌓였고, 그늘에 있는 나무 기둥에서 잠시 앉아 쉬고 싶었다. 굵은 나무 기둥 안에 혹시라도 벌레가 있을까 발로 한번 차고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걸 확인하고 앉았다. 마음을 놓고 잠시 숨을 돌렸다. 한 5초 간 여유를 부렸을까, 다리를 보니 불개미가 족히 30마리가 붙어있었다. 엉덩이는 0.1초 만에 다시 나무에서 떨어졌고, 손으로 개미를 털어내고 물병으로 다리를 내리쳐 가까스로 눈에 보이는 개미는 다 처리했다. 그 순간, 다리가 따끔했고, 통증 부위를 세게 내리쳐 바지로 들어간 개미도 처단했다. 개미를 치우려고 바지를 걷자, 다리털에 걸린 불개미 한 마리를 발견했다. 우리 몸에 그냥 생긴 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불개미의 습격 이후 더 깊숙이 강을 따라 들어갔다. 하마들이 오가는 길을 따라 한참을 걸었고,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100% 하마를 보여주었던 가이드의 경력에 우리가 오점으로 남을 거라는 강한 추측이 들었다. 그게 왜 우리냐는 억울함과 함께.
처음엔 하마가 다니는 길을 걷고 배설물을 발견하며 금방이라도 거대하고 포악한 포유류가 불쑥 튀어나와 우리를 공격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이젠 제발 나와달라고 비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간절한 바람이 표정으로 전해졌는지, 가이드는 이제 숲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숲에 들어서자, 주변엔 많은 덫이 있었다. 코트디부아르 사람들이 즐겨 먹는 설치류 아구티(Agouti)를 잡는 용도라고 했다. 얼마간 숲을 걸었을까 무슨 소리가 들렸다. 물 뿜는 소리였다. 그 소리를 따라 거친 경사길을 나무줄기에 의지해 내려가고, 작은 계곡을 넘어 강가로 향했다. 그러자 우리와 다른 존재들의 울음소리도 들렸다. «저게 하마 울음소리야.» 가이드가 말했다. 드디어 하마를 찾은 것이다. 부레옥잠이 가득한 강변에서 시선을 거대한 강 중심으로 옮기니 물 위에 떠다니는 듯한 물체가 보였다. 집 떠난 지 7시간 만에 하마를 발견했다.
하마들이 잠수하고 있었기에 몇 마리인지 확실히 알 수 없었다. 한 5분이 지났을까 숨 쉬러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시속 30km 이상으로 달릴 수 있는 하마와 안전거리를 유지해야 했기에, 망원경을 통해서 그들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거대한 수컷 하마 한 마리와 암컷 여러 마리, 그리고 새끼로 이루어진 무리였다. 가끔 고래가 물을 쏘아 올리듯, 푹푹 소리를 내며 숨 쉬는 소리가 들렸다. 육중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작고 귀여운 귀의 움직임을 감상했다. 하마는 탈수를 막고 햇볕에 민감한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낮엔 물속에서 지내다가 밤에 육지로 올라와 활동한다고 한다. 송곳니가 최대 70센티미터까지 자라고, 몸길이 4미터, 몸무게 3.2톤까지 이를 수 있는 이들에게 포식자는 없다. 잠수하고 수면 위로 올라오는 하마들에겐 여유가 흠뻑 묻어 있었고, 자신들의 행복을 최대한 향유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지극히 평화로워 보이는 하마의 삶도 이면은 있기 마련이다.
2017년 자료에 따르면, 코트디부아르 전역에 500~600여 마리의 하마가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코트디부아르 하마 개체수는 2002~2007년 1차 코트디부아르 내전, 2010~2011년 2차 코트디부아르 내전 중 밀렵으로 많이 감소하였다고 한다. BBC에 따르면 코끼리 보호 체계가 강화되어 상아 거래가 전면 금지되면,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하고 구하기 쉬운 하마 이빨에 대한 수요가 증가한다고 한다. 또한, 하마의 서식지 및 먹이 감소로 인간과 충돌하는 횟수가 늘고 있다. 작은 배를 타고 있는 어부의 배를 엎어버리고 공격하는 사례와 강가에서 우연히 하마를 만나 큰 일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은 어부들은 당국에 하마와의 갈등을 해결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하마 개체수 조절은 유일한 해답이 될 수 없으며, 농업 개발에 힘써 바나나 재배 등 주민들에게 경제적으로 유익할 만한 농업 활동을 개발 및 장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이드는 하마를 통해서 돈을 벌고 있기에 하마의 개체수가 유지 내지 확대되길 바란다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하마에 대한 이런저런 설명을 듣고, 수면을 오르락내리락하는 하마 떼를 한참 구경하다가 점심을 먹으러 떠났다.
아구티를 잡기 위한 덫이 가득한 숲을 지나 옥수수밭과 논을 지나, 툭툭을 타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구운 치킨이라는 뜻인 풀레 브레제(Poulet braisé)와 기름에 튀긴 플랜틴 바나나인 알로코(Alloco) 등과 말린 히비스커스 꽃으로 만든 비쌉(Bissap) 주스를 곁들여 맛있는 식사를 했다. 밥을 먹고 길가로 나갔다. 여긴 따로 터미널이 없고, 길에서 택시 잡듯이 지나가는 버스를 탄다고 했다. 하지만 1시간 동안 어떤 버스도 서지 않았고, 비가 오기 시작했다. 툭툭을 타고 좀 더 터미널스러운 곳을 갔다. 상인과 승객, 차가 한데 어우러진 곳이었다. 하차와 함께 동양인인 우리에게 시선은 집중됐다. 그리고 누군가 말을 걸었다. ‘너희 어디 가니? 베이징?’ 장난치기 좋아하는 사람이 많이 사는 코트디부아르에선 흔히 겪는 일이기에 ‘우리 한국인이야.’라고 간단히 대답했다. 그들은 한국이란 나라의 존재를 몰랐다. 새삼 시골에 왔다는 사실이 느꼈다. 거기서도 아비장행 버스를 타지 못해, 바카(Gbaka)를 타고 응두씨(N’douci)로 나왔다. 버스터미널은 이미 닫혀있었고, 여기도 수많은 사람이 길가에서 버스를 잡고 있었다. 1시간이 지나도록 버스는 오지 않아, 버스 탑승 관리자로 추정되는 사람에게 아비장 갈 개인 차가 없는지 문의했다. 그가 가능한 차량을 수소문하는 동안, 기적적으로 아비장행 버스 한 대가 정차했고 우린 무사히 몸을 실을 수 있었다. 풍채가 좋으신 아주머니 옆에 끼어서 정신없이 잠에 취해, 코트디부아르 밤길을 달려 아비장에 도착했다. 피로에 찌들었지만, 원하는 걸 즉각적으로 얻는 데 익숙해진 채 살아가다가 원하는 걸 찾기 위해 모험을 했다는 사실로 인해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거기에 더해, 집에서 피로와 하루동안 뒤집어쓴 먼지를 씻어내기 위해 샤워하다가 뒤로 고꾸라지며 여전히 살아있음에 감사함과 화장실 슬리퍼의 중요성을 동시에 깨달으며 하루가 끝났다.
참고자료
https://cites.org/sites/default/files/eng/cop/19/prop/as_received/F-Hippopotamus_amphibius.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