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가린 채 아프리카 차드 구호 현장으로 가다
지도에 없는 그 곳, 국경없는의사회는 어떻게 찾아갔을까
글 | 미씽맵(Missing Maps) 커뮤니케이션 매니저 얀 봄(Jan Böhm)
차드(Chad)는 아프리카 대륙의 중앙에 위치한, 리비아, 니제르, 수단 등의 국가에 둘러싸인 내륙 국가다.
차드에서 1981년부터 활동해 온 국경없는의사회는 여러 프로젝트를 통해 지역 병원과 인근 보건소들의 소아과∙산부인과 의료 지원 활동을 돕고 있었다.
2019년 1월, 차드에서 홍역이 유행하기 시작한 지 8개월이 지난 시점이었지만 여전히 그 기세가 대단했다. 정부와 국제단체의 노력과 2018년 시행된 대규모 예방접종에도 불구하고 2019년 초 차드의 홍역 발병 건수는 최고치를 찍었다.
한국에서는 사라진 감염병으로 여겨지는 홍역은 아동 사망의 대표적인 원인이 되는 질병이기도 하다. 감염성이 매우 높아 홍역 보균자와 같은 공간에 있는 경우 면역력이 없는 사람의 90%는 홍역에 걸리게 된다. 홍역은 감염자가 기침·재채기를 할 때나, 숨을 쉴 때 나오는 비말(침방울)로 인해 전염된다.
홍역에 걸린 사람 중 대부분은 2~3주면 회복하지만, 5~20%에겐 치명적일 수 있다. 설사, 탈수, 뇌염, 호흡기 감염 같은 합병증 때문이다.
차드에서 2018년부터 발병된 홍역은 126개 보건 구역 중 118개에 퍼져있었다. 특히 수도인 은자메나(N’Djamena)와 암 티만(Am Timan) 지역에서 가장 심각했다.
암 티만에 도착한 국경없는의사회는 암 티만 병원과 세 개의 보건소에서 홍역 환자를 무료로 치료했다. 그러나 새로운 감염이나 전염을 막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예방접종이 필요했다. 정부기관에 의하면 차드 내 5세 미만 아동의 완전접종률은 25%이며, 37%만이 홍역 예방접종을 맞았다고 했다.
따라서 생후 6개월에서 9세 사이 아동 모두에게 예방접종을 하는 계획을 세워야 했다. 그런데 백신을 수송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홍역 백신은 열에 약해서, 수송 과정에서 콜드 체인(저온 유통체계)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또한 예방접종 캠페인 자체에 대한 사전 홍보도 필요했기 때문에 국경없는의사회 팀이 캠페인 대상 지역을 직접 방문해 주민들에게 알리기도 했다. 캠페인의 모든 부분을 세심하게 계획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지도의 부재였다.
주로 쓰이는 기존의 지도에는 암 티만 시내는 나와 있지만, 근교의 촌락이나 마을에 대한 정보는 빠져있었다. 그 지역의 대부분이 지도에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제대로 된 지도가 없는 채로 이동하려니 두 눈을 가린 채로 움직이는 기분이었다. 예방접종 캠페인의 가장 큰 어려움은 이처럼 정확한 지도 없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가는 일이었다.
“현지 관계자가 손으로 그려준 지도를 쓰기도 했어요. 현지 가이드를 고용해서 마을을 찾기도 했고, 길을 잃으면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물론 도움은 됐지만, 필요한 정보를 전부 얻을 수는 없었습니다.
비포장 도로를 따라 200km를 가는데, 8시간이 걸릴 정도였으니까요. 손으로 그린 지도 밖에 없다 보니
마을을 찾느라 헤매기도 했습니다.
_국경없는의사회 차드 긴급대응팀 프로젝트 코디네이터 테레사 베르톨드 (Theresa Berthold)
손으로 그린 지도로는 대략적인 위치를 파악할 수는 있지만 정확성에 한계가 있다.
“우리 팀은 하루에 서로 인접한 여러 지역을 방문하는 일정을 세웁니다. 그런데 막상 가보면 몇 시간씩 떨어진 지역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 경우가 자주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예방접종을 하는 데 써야 하는 많은 시간을 길을 찾는데 써야 했습니다.”_테레사 베르톨드
국경없는의사회 지역사회 보건 교육 활동가는 여러 마을을 미리 방문하여 자녀들에게 무료 예방접종을 맞히도록 권유했다. 그 후 의료팀은 예정된 날짜에 주요 마을을 돌면서 찾아온 아동들에게 예방접종을 실시할 수 있었다.
국경없는의사회 팀은 그렇게 4주 동안 10만 7천 명의 아동들에게 예방접종을 할 수 있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홍역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대상 인구의 90~95%에게 예방접종을 할 것을 권하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 또한 조건에 해당하는 아동들의 95%를 접종하는 것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예방접종 캠페인의 성공 여부를 평가하기 위해선, 예방접종률 조사가 필요하다. 이 조사는 임의로 선택된 가구를 조사원이 직접 방문해 가구 구성원 중 몇 명이 예방접종을 맞았는지 파악하는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이 조사를 하려면, 정확한 지도가 있어야만 한다.
다행히도 지도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해결책이 있다. 지도계의 ‘위키피디아’라고 할 수 있는
오픈스트리트맵(OpenStreetMap)이다. 오픈스트리트맵에서는 누구나 지도를 편집할 수 있어 영리 기업이 제공하지 않는 지도를 온라인 커뮤니티의 일반인들이 그릴 수 있다. 구호 활동 지역의 정확한 지도가 없다는 점은 차드에 있는 국경없는의사회 팀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인도주의 단체 모두의 큰 고민이다.
이러한 계기로 국경없는의사회, 영국 적십자, 미국 적십자, 그리고 휴머니테리안 오픈스트리트맵 팀은 2014년 미씽맵 프로젝트를 공동으로 출범하게 되었다. 미씽맵은 전 세계 자원봉사자들이 인도주의 단체 요청에 따라 지도를 만드는 활동이다. 국경없는의사회를 위해 암 티만 지역을 지도화한 것도 바로 일반인 자원봉사자들이었다.
221명의 자원봉사자는 4 주 만에 34,120채의 건물을 그리며 암 티만과 인근 지역의 지도를 만들었다.
“정확한 지도가 있으면 시간과 자원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죠. 확인된 마을 위치에 따라 계획을 수립하고 이에 맞춰 일정을 구상할 수 있었습니다. 조사원도 태블릿에 지도를 저장하여 선정된 가구를 더욱 쉽게 찾아갈 수 있어 업무를 빠르게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_테레사 베르톨드
손으로 그린 지도와 미씽맵 자원봉사자가 만든 오픈스트리트맵을 비교해보면, 봉사자가 기여한 바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손으로 그린 지도는 마을들이 가까워 보이지만, 오픈스트리트맵을 보면 마을 간 거리가 꽤 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점은 도로망에 대한 표시다. 두 지도 모두 이다티 시로 연결되는 도로 등 주요 지형지물이 표시되어 있다. 하지만 손으로 그린 지도는 방향이 틀리다. 오히려 가운데 사진처럼 지도를 살짝 돌려서 보아야 방위가 맞는 것이다. 우측의 디지털화된 지도는 마을 간 거리도 정확하게 보여준다.
이렇게 오픈스트리트맵을 통해 임의로 지정된 가구들이 정확히 어디 위치했는지 알 수 있었던 조사원은 예방접종률 조사를 쉽고 빠르게 마칠 수 있었다. 조사 결과 예방접종 대상 인구의 81.9%가 접종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지역에 머물며 계속 상황을 지켜볼 예정이다. 앞으로 국경없는의사회가 해야 할 일이 더 있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적어도 미씽맵 자원봉사자들의 도움 덕분에 홍역의 발병지를 찾는 것이 훨씬 더 용이해졌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차드에서 37년 동안 활동해왔다. 차드 긴급대응팀은 전염병 사태에 신속하게 의료 지원을 하고, 양질의 무상 치료와 긴급 예방접종 캠페인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망둘(Mandoul)과 모이살라(Moissala) 지역에서 의료 활동을 하고 있다.
미씽맵은 크라우드 소싱을 통해 구호 활동 지역의 정확한 디지털 지도를 만드는 프로젝트입니다. 참여형 지도 서비스인 오픈스트리트맵을 활용하며, 일반인 자원봉사자들의 참여로 지도가 없는 지역의
디지털 지도를 만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참여로 만들어진 지도는 자연재해·전염병·무력 분쟁 등으로 인한 피해 지역의 규모를 파악하고, 역학 조사와 구호 물품 수송 계획을 통해 의료 접근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 국경없는의사회 한국 안내 사이트 : msf.or.kr/missingmaps
- 미씽맵 공식 사이트: missingmaps.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