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룬디에서 말라리아와의 싸움을 이어가는 국경없는의사회
국경없는의사회는 세계 곳곳에서 말라리아 환자를 치료하고 대규모 예방 캠페인을 진행하는 등, 많은 개발도상국 아동의 사망 원인이 되는 말라리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말라리아는 모기에 의해 전파되는 전염병으로 현재 말라리아에 대한 백신이 없기 때문에, 가능한 한 모기에 물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예방법이다. 4월 25일 ‘세계 말라리아의 날’을 맞아 국경없는의사회가 아프리카 중부 부룬디에서 진행하고 있는 말라리아 예방 캠페인을 소개한다.
최근 몇 년 간 국경없는의사회는 부룬디 동부에서 대규모 말라리아 예방 캠페인을 여러 차례 전개했다. 가장 최근 캠페인은 킨인야(Kinyinya)의 산악 지대에서 진행됐는데, 모기 개체수를 감소시켜 말라리아를 원천 차단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다음에 또 와주세요!" 베누아 미사고(Benoit Misago)가 20분간 집 천장과 벽 구석구석 모기퇴치제 분사를 마치고 떠나는 방제팀을 향해 말했다. 약품이 묻지 않도록 소지품은 모두 밖으로 꺼내 두었다. 방제팀은 큰 스프레이통과 펌프를 등에 진 채 자전거를 타고 다음 가정으로 향했다.
2019년 여름, 첫 말라리아 퇴치 프로젝트 팀이 베누아의 가정을 방문해 프로젝트에 대해 안내하고 베누아가 궁금해하는 내용에 대해 설명했다. 베누아를 비롯해 모든 쿠모소(Kumoso)의 주민은 1년에 한번씩, 올해로 두 번째 말라리아 예방을 위한 모기퇴치제 분사 작업을 받았다. 국경없는의사회는 킨인야 보건구역에서 이 활동을 조직했다.
"집을 방역한다고 했을 때 바로 동의했습니다. 당시 이곳은 말라리아 문제가 심각했어요. 모기가 없는 곳이 없었을 정도였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아픈 사람이 무척 많았습니다. 병원에 환자가 넘쳐나 하루 종일 대기하기도 했어요.
다행히 국경없는의사회가 방문한 후 상황이 나아졌습니다. 오늘 이렇게 또 보게 되어 기쁩니다."
베누아 미사고 / 킨인야 보건구역 주민
부룬디에서 말라리아는 매우 심각한 보건 문제이다. 말라리아는 아프리카의 풍토병인 동시에 정기적으로 유행하는 전염병이다. 아동 입원 및 사망의 가장 큰 원인이기도 한 말라리아는 부룬디 뿐 아니라 아프리카 대륙 전역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 세계 연간 약 40만명의 말라리아 사망자 중 90% 이상이 아프리카에서 발생한다. 아직 말라리아는 백신이 없기 때문에 항말라리아제 사용과 더불어 모기장 설치 및 위생 수준 개선 등 물리적 보호를 통한 예방이 필수적이다.
실내 잔류 살충제 분사(Indoor residual spraying)는 이러한 물리적 예방법 중 하나다. 전 세계 여러 지역에서 성과를 보인 이 분사 작업은 가정집, 농가의 곳간, 옥외 화장실 등 건물의 내・외벽과 천장에 살충제를 분사하여 모기 성충을 제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분사 후 수개월간 효과가 지속되며, 모기장 설치를 병행할 경우 말라리아 환자 수를 크게 감소시킬 수 있다.
"작년 이곳의 말라리아 환자 수가 80%나 감소한 데에는 실내 잔류 살충제 분사 작업이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꼼꼼하게 방제 작업을 계획해서 실시하고, 반복해야 합니다. 이 모든 과정은 지역 당국과 주민의 협력 아래 이루어져야 하며, 전문가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급조해서 할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닙니다."
히폴리테 음봄바(Hippolyte Mbomba) / 국경없는의사회 킨인야 말라리아 프로젝트 책임자
국경없는의사회와 지역 보건당국은 수개월에 걸쳐 방역 캠페인을 준비한다. 방제 작업의 첫 단계는 살충제를 선택하는 일인데, 모기가 살충제에 대한 저항성을 발달시킬 수 있기 때문에 여러 살충제를 번갈아 가며 사용해야 한다. 다음으로는 지역사회에 정보를 전파해 참여를 독려하고,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계획하며, 방제 인력을 채용해 훈련시켜야 한다.
"킨인야 지역에는 언덕을 따라 68,000개의 가정이 흩어져 있습니다. 방제 작업의 효과를 보기 위해선 최소 85%의 건물을 방역해야 합니다. 매우 체계적이어야 하고 그만큼 세심한 노력을 기울여야하는 작업입니다. 특히 지역주민에게는 생소한 작업이기 때문에 프로젝트를 충분히 이해하고 따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따라서 지역 정부와 긴밀히 협업하고 다수의 현지 인력을 고용해 주민들의 질문에 충분히 답변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히폴리테 음봄바 / 국경없는의사회 킨인야 말라리아 프로젝트 책임자
2020년 9월 파견된 78개의 방제팀을 관리하는 지닌 아라카자(Jeanine Arakaza)도 덧붙였다.
"작년 이 지역에서 각 가정에 처음으로 방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주민들로부터 질문이 꽤 많아 수차례에 걸쳐 설명회를 진행했습니다. 결과적으로 95%의 가정을 성공적으로 방역했습니다. 올해는 주민 모두가 [방제 작업에] 호의적입니다. 지난 캠페인의 효과를 몸소 느꼈기 때문이죠. 올해는 주민들이 방제팀을 찾아와 집을 방역해달라고 하는데, 그럴 때면 보람을 느낍니다. 작년보다 올해 더 좋은 성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지닌 아라카자 / 국경없는의사회 킨인야 보건 구역 방제팀 관리자
지역주민을 동원하는 것과 더불어, 효과적이고 환경친화적인 방제 캠페인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최신 기술을 도입하고 물자공급망을 철저히 구비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수많은 가정에 방제 작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환경 기준과 폐기물 관리 기준을 준수하는 데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가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사항이죠. 올해 방제 작업에 참여한 인력만 468명입니다. 위생전문가나 팀 리더, 물류관리자를 제외한 숫자입니다. 이외에도 약품 관리, 보관, 청소, 환경관리 등을 담당하는 수 많은 인력을 교육해야 합니다. 대인원이지만 필수적입니다."
히폴리테 음봄바 / 국경없는의사회 킨인야 말라리아 프로젝트 책임자
짧은 기간 안에 많은 가정을 방제해야 하는 것도 이러한 캠페인의 큰 어려움 중 하나이다. 킨인야에서 진행된 캠페인은 15일 주기로 두 번에 걸쳐 진행하여 한 달이 채 되지 않는 시간 내에 수만 개의 가정을 방제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방제팀은 굳건한 의지와 탄탄한 체력 외에도 지리 정보 시스템(GIS - geographic information system) 기술을 적극 활용하여 방제 작업에 착수한다.
"자전거를 이용한 첫 방제 작업이 이뤄지기 한참 전부터 국경없는의사회 전문가들이 킨인야 전체 지역을 지도로 세밀히 옮기는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매파톤(Mapathon)’을 통해 작업된 위성 사진을 기반으로 항공 지도를 제작하고, 지리 위치 장비를 갖춘 팀을 현장에 파견하여 각 가정, 마구간, 화장실 등 건물의 명단을 하나하나 작성합니다. 이렇게 지역에 총 몇 가구가 있는지, 지형이나 진입 경로는 어떤지 등을 정확히 이해하여 방제 캠페인을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일일 진척도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히폴리테 음봄바 / 국경없는의사회 킨인야 말라리아 프로젝트 책임자
방제팀 관리자로서 지닌 아라카자는 일일 진척도 모니터링 세션이 가장 보람을 느끼는 시간이라고 한다.
"하루 일과가 끝나고 밤에 돌아오면 아주 피곤한 상태입니다. 하지만 그때 마법같은 일이 펼쳐지죠. 큰 화면에 띄운 지도에 표시된 작은 점들이 그날 성과에 따라 색이 바뀝니다. 각 팀은 자신이 방역한 가정 뿐 아니라 프로젝트 전체가 이루어낸 성과를 볼 수 있죠. 목표를 달성하려면 어디를 재방문해야 하는지도 볼 수 있어요. [이걸 볼 때면] 그날 쌓인 피로가 전부 풀리는 느낌입니다. 다음 날 다시 작업을 시작할 힘을 얻게 되죠."
지닌 아라카자 / 국경없는의사회 킨인야 보건 구역 방제팀 관리자
지닌은 방제 작업이 단순히 지도의 색이 바뀌는 것만 아닌 실제 '변화'를 일으키는 활동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곳에서 방역 프로젝트 관리자 역할을 맡기 전에는 집중치료실 간호사로 일했어요. 집중치료실에서 말라리아로 사망하는 수많은 환자를 봐왔습니다.
예방 측면에서 활동을 하면서 병원을 찾는 환자의 수 자체를 줄여야겠다고 스스로 생각했습니다. "
지닌 아라카자 / 국경없는의사회 킨인야 보건구역 방제팀 관리자
방제 캠페인이 말라리아 환자 수를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되기는 하나 말라리아를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한다. 여전히 치료를 받아야 하는 말라리아 환자가 있다. 그렇기때문에 국경없는의사회는 보건구역 내 14개의 보건 시설에서 무상으로 제공되는 말라리아 치료를 지원하고 있다.
"우리에겐 정말 큰 변화입니다. 과거에는 증상이 나타나면 민간요법을 사용하거나 종교지도자인 마라부(marabout)를 찾아가곤 했습니다. 아니면 밀수 의약품을 찾아다녔죠. 요즘엔 아이가 아프면 병원에 가서 양질의 치료를 무상으로 받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빠르게 병원을 찾아가 치료를 받곤 합니다."
펠리시티(Félicité) / 킨인야 보건 구역 주민
말라리아 환자 수를 줄이고 무상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많은 생명을 살리기도 하지만, 다른 방식으로도 지역 주민의 가정에 도움이 된다.
"이제 주민들은 치료비를 식량과 같은 다른 곳에 쓸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학교에 갈 수 있고 부모는 병원을 계속 오가는 대신 밭에 나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건강 문제를 넘어 주민들의 일상 생활에도 도움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지닌 아라카자 / 국경없는의사회 킨인야 보건 구역 방제팀 관리자
아프리카에서 말라리아와 싸움을 이어가는 것은 여전히 갈 길이 멀고, 말라리아 예방・진단・치료에 필요한 의료 도구의 접근성을 향상하는 데에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아프리카의 말라리아 환자 수는 여전히 높지만, 작은 성과가 모이고 있다. 올해 킨인야 주민을 위해 더욱 철저한 방역이 이루어진 것이 한 예다. 방제 작업으로 지역 내 모든 가정의 98%에 방역이 이루어졌고, 덕분에 2021년 여름 다음 방역 캠페인을 진행할 때까지 몇 개월 동안 31만 명이 넘는 주민은 말라리아로부터 안전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