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종교개혁과 통하다』
‘꽃’ 혹은 ‘된장’
고등학생 시절까지 미디어에서 마주한 여성의 이미지는 저 두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간혹 ‘어머니’가 추가되긴 했다.) 대부분의 영화와 드라마에서 여성은 ‘꽃’처럼 단아하고 아름답거나, 고작해야 ‘된장’인 주제에 사치와 허영을 일삼는 존재로밖에 그려지지 않았다. 어느 쪽이든 여성을 사람 아닌 무언가로 대했다는 점에선 차이가 없었다. 나 역시 미디어가 여성을 대상화하는 방식에 별다른 문제의식을 갖지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친구의 대부분은 여성이었는데도 말이다.
‘여성은 꽃이다’는 말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건 대학을 들어오고 나서였다. 바로 전 해 메갈리아의 등장과 함께 그간 억눌려온 여성의 목소리가 봇물처럼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나는 메갈의 ‘미러링’을 접하고서야 지금껏 별 뜻 없이 던졌던 시시껄렁한 농담들이 실은 얼마나 성차별적이었는가를 깨달았다. 한밤중의 산책처럼 남성에게는 너무나 당연했던 일들이 내 여성 친구들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도 그때서야 알았다.
존재만으로 ‘가해자’일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 받은 ‘남성’이 나 뿐만은 아니었나보다. 메갈 이후, 그간의 삶을 반성하며 페미니즘에 지지와 연대를 표하는 남성들이 적지 않게 등장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들 ‘남성 페미니스트’를 보며 이상하리만치 찝찝함을 감출 수 없었다. SNS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던 네임드 남페미들의 이야기가 하나같이 아래의 문장으로 끝을 맺었기 때문이다.
“남성들아, 여성들이 얼마나 힘든지 아느냐! X잡고 반성하자!”
네임드 남페미들은 여전히 여성을 ‘남성인 나와 다른 무엇’으로 대상화하고 있었다. ‘꽃’과 ‘된장’이라는 꼭짓점을 갖는 납작한 선분 위에 ‘피해자’라는 점을 찍어 삼각형을 만들었지만, 이 조그만 삼각형 역시 여성을 가두는 족쇄는 아닌가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이 시기 남페미들의 또 다른 ‘강령’은 “이해가 안 되면 외우자!”였는데, 내 여성 친구는 이 말을 듣고는 “그냥 이해가 안 된다는 거네”라며 픽 웃었다. 삼각형을 통해서만 여성을 보려니 이해가 될 턱이 없었다. 결국 메갈로부터 4년이 지난 지금, 그 많던 남페미들은 대부분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고 말았다.
이처럼 아무리 ‘선의’에 의한 것일지라도 여성은 정형화된 이미지 이상이기 어려웠고, 이는 여성의 삶을 굉장히 재미없고 납작하게 만들어버렸다. 역사라 해서 예외는 아니다. 막말로 비교적 최근까지의 ‘여성사’란 ‘특정 사건으로 여성의 처우가 좋아졌냐, 나빠졌냐’를 따지는데 머물러있었기 때문이다.
박효근의 『여성, 종교개혁과 통하다』는 이러한 이분법을 과감히 무너뜨린다. 그는 남성 종교개혁가들이 부과한 규율에 완강히 저항하고, 이를 교묘히 이용했으며, 심지어는 창조적으로 전유해간 여성들의 삶을 따뜻한 시선으로 톺아본다. 나름의 방식으로 종교개혁과 통(通)한 수많은 여성들의 목소리가 되살아남으로써, 해방의 기회이자 통제의 순간이었던 종교개혁의 복합적이고 역설적인 성격 역시 더욱 생생하고 온전하게 드러난다.
『여성, 종교개혁과 통하다』는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각 ‘저항’과 ‘전유’, 그리고 ‘이용’이라는 방식으로 종교개혁을 살아간 여성들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물론 각 파트의 주인공들이 오직 한 가지 방법만을 택했던 것은 결코 아니다! 어디까지나 서평을 편하게 쓰려는 나의 인위적인 구분에 불과할 따름...)
먼저 시대에 ‘저항’했던 16세기 주네브의 두 여성을 만나보자. 열성적인 종교개혁가였던 마리 당티에르는 성서를 자유자재로 인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무려 히브리어까지 익혔던 당대의 엘리트였다. 그는 여성이라는 성별이 아니라 자신이 쓴 글을 “읽고 판단하라”고 줄기차게 요구했다. 하지만 여성이란 모름지기 정숙한 아내로서 남편을 섬길 따름이라고 여겼던 남성 종교개혁가들은 당티에르를 그저 재밌는 이야깃거리로 취급할 뿐이었다. 이들에게 당티에르는 비난의 대상조차 되지 못했던 것이다.
당티에르는 암담한 현실에 결코 좌절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주네브의 선술집과 여관, 뒷골목을 돌아다니며 작지만 의미 있는 반향을 만들어냈다. 당티에르는 여성 역시 신으로부터 재능과 은총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또한 그는 예수께선 세상의 주류를 자임해온 현자, 박사, 성직자, 권력자들보다 “약하고 경멸당했던 이들을 택하시어 대단한 이들을 부끄럽게 하셨다”고 주장했다. 이 ‘약한 자들’이 다름 아닌 여성이란 사실은 그리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비록 당티에르는 남성 중심 지배질서의 타파를 외치지는 않았지만, 다음과 같은 그의 일갈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모든 여성은 완벽하지 않다. 그러나 이는 남성도 마찬가지이다. 왜 그렇게도 열심히 여성에 대해서만 비판하는가? 생각해보면 여성은 예수를 팔아넘기지도, 배반하지도 않았다. 이런 짓을 한 사람은 유다라는 남성 아닌가? 수없이 많은 의례와 이단, 잘못된 교리를 만들고 조작하여 퍼트리는 사람들은 사실 모두 남성들이다. 불쌍한 여성들은 그들의 유혹에 넘어가 고생하고 있다. ... 이런 상황을 볼 때 나는 당연히 침묵을 지키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이처럼 당티에르는 주네브 종교개혁가들의 ‘남성연대’에 적극적으로 저항했다. 하지만 우리의 두 번째 주인공, 성 클라라 수녀원의 잔 드 뒤시 수녀에게 당티에르는 전혀 ‘저항의 아이콘’ 따위가 아니었다. 수녀는 『연대기』에 1535년 7월 갑작스레 봉쇄수녀원에 들이닥쳐 일장연설을 늘어놓던 ‘배배꼬인 여자’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았는데, 이 ‘배배꼬인 여자’가 다름 아닌 당티에르였던 것이다. 이 기막힌 운명의 장난이라니!
잔 드 뒤시 수녀에게 당티에르를 비롯한 프로테스탄트(저항하는 자)들은 어디까지나 ‘저항의 대상’에 불과했다. 중세의 수녀원은 남성 중심 지배질서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했으나, 여성이 가정에서 벗어나 사회적 역할을 맡을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공간이기도 했다. 잔 드 뒤시 수녀 역시 수녀원의 기록 담당 서기수녀로 임명되고 주네브의 여학교에서 교육을 받는 등, 평범한 결혼을 했다면 결코 얻지 못했을 새로운 기회에 나름대로 만족했던 듯하다. 그랬기에 수녀는 자신이 평생 간직해온 신념을 ‘위선’이라 폄하하고, 회유가 먹히지 않을 경우 상스러운 폭력도 서슴지 않는 종교개혁 진영을 결코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1부의 키워드가 ‘저항’이라면, 2부는 ‘전유’에 대한 이야기다. 우선 저자는 16세기 주네브의 이혼소송기록을 통해 그 시대 여성들이 이혼을 어떻게 생각했는가를 살펴본다. 본래 칼뱅을 비롯한 종교개혁가들이 이혼을 허용했던 이유는, 어디까지나 부정한 배우자라는 ‘불순물’을 제거해 가정의 신성함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주네브 여성들은 결코 종교개혁가들의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이들은 이혼을 ‘재혼할 수 있는 자유’로 받아들여 이혼 뒤 곧바로 약혼 승인을 요청하거나, 자신과 아이를 보호해줄 가정이라는 외피를 빼앗기지 않고자 끝까지 투쟁하기도 했다. 주네브 여성들은 나약하고 수동적인 피해자라기보다는 약삭빠르고 적극적인 행위자였던 것이다.
보다 흥미로운 사례는 저명한 위그노 사상가인 필리프 뒤플레시스 모르네의 아내였던 샤를로트 아르발레스트다. 그는 남편이 옛 친구인 앙리 4세 앞에서 가톨릭과 벌인 신학논쟁이 실은 위그노를 찍어 누르려는 잘 짜인 각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즉각 행동에 나섰다. 아르벨레스트는 퐁텐블로에 가있는 남편을 대신해 파리에서 논쟁의 부당함에 대한 글을 인쇄·유포했으며, 이 과정에서 위그노 네트워크를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민주화운동가 김근태의 아내 인재근과 마찬가지로 아르발레스트 역시 모르네의 ‘바깥양반’이었던 것이다.
앞서 이야기했듯 종교개혁가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가정이란 온화한 가부장이 현숙하고 순종적인 아내를 이끄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비록 그 수장이 국왕일지언정) 가톨릭의 맏딸을 자임하던 프랑스에서 위그노가 된다는 것은 목숨까지 걸어야 할 정도로 극단적인 결단을 요구하는 일이었다. 따라서 위그노 여성들은 믿음을 지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투쟁하고 연대했으며, 이 과정에서 가정을 일종의 전위부대로 재조직했다. 특히 아르발레스트는 모르네와 전통적인 아내-남편 관계를 넘어, 학문적 도반이자 정치적 동지로서의 관계로까지 나아갔다.
1부 그리고 2부와 달리, 3부에서 저자는 오직 마르그리트 드 발루아 한 사람에게만 초점을 맞춘다. 한국에선 영화 <여왕 마고>의 주인공으로 잘 알려진 그는, 어떤 시대에도 인정받지 못한 ‘타자’의 자리에 머물러있었다. 16세기는 발루아와 부르봉이라는 ‘왕조’를, 17세기는 귀족이라는 ‘신분’을, 18세기는 여성이라는 ‘성별’을, 19세기는 16세기라는 ‘시대’를 깎아내리려는 상징으로서 마르그리트 발루아라는 이름을 줄기차게 물고 늘어졌던 것이다. 정작 마르그리트 드 발루아는 그 시대 기준으로 지극히 평범했던 귀족 여성이었는데도 말이다.
이에 저자는 시대의 욕망, 그리고 마르그리트 드 발루아 본인의 욕망까지 걷어내고 그가 실제로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세심하게 추적해간다. 우리 모두가 그렇듯, 마르그리트 드 발루아는 평생 여러 개의 가면을 상황에 맞게 쓰고 벗던 복잡하고 미묘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이 결혼 전에는 ‘순결한 처녀’였고, 결혼 뒤에는 ‘충실한 아내’였다며 당대의 남성 중심 지배질서를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하지만 이를 통해 마르그리트 드 발루아가 부각시키고자 했던 건 무엇보다도 ‘뛰어난 교섭자’로서의 역량이었다.
“ ... 나는 과거에 내가 자각하지 못했던 나의 능력과 역량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사실 나는 내가 그런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전혀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선천적으로 상당한 용기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 그 이후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음을 직감했다.”
실제로 마르그리트 드 발루아가 가장 아꼈던 가면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명문가이자 강대국 프랑스를 지배하는 발루아 가문의 일원이라는 정체성이었다. 그는 이 가면에 걸맞은 정치적 역할을 맡기를 갈망했으며, 이를 위해 보다 ‘볼품없는’ 가면을 이용하는데도 거리낌이 없었다.
최근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쓰이거나 그려진 소설과 만화를 읽다보면 고구마를 100개쯤 먹은 듯 답답함이 차오르곤 한다. 적지 않은 작품들이 쓸데없는 TMI와 자기연민, 불행배틀로 점철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이는 ‘남성 페미니스트’들이 줄기차게 외쳐대던 “남성들아, 여성들이 얼마나 힘든지 아느냐!”의 거울상이기도 하다. 시스젠더 남성이기에 꺼낼 수 있는 배부른 소리란 걸 알지만, 문학의 역할은 단순히 불행을 전시하는데서 끝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고통과 억압을 드러내되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고 보다 아름다운 세계를 그러내주기를 문학에게 바라는 건, 너무 지나친 요구일까.
박효근의 『여성, 종교개혁과 통하다』는 역사서이자 학술서이지만, 그 어떤 소설보다도 이를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16세기 주네브의 두 여성을 통해 우리는 ‘억압’의 다층성과 이에 맞서는 다양한 ‘저항’의 전략을 본다. 주네브의 이혼소송과 프랑스의 위그노 여성으로부터는 가부장적 질서의 창조적인 ‘전유’를, 왕비라 불리지만 단 한 번도 왕비인 적 없었던 귀족 여성에게는 기민하고 영리하게 편견을 ‘이용’하는 모습을 본다.
그것이 21세기의 눈으로 볼 때 어떠한 한계를 갖든, 격동의 종교개혁기를 살아간 여성들의 삶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또 풍요롭다. 메갈 이후 잠깐 타오르다 금세 사그라진 수많은 ‘남성 페미니스트’들에게 필요했던 건, 결국 여성이라는 다채로운 ‘이야기’에 대한 이해가 아니었을까. 여성은 ‘꽃’과 ‘된장’, 그리고 ‘피해자’라는 꼭짓점으로 이루어진 쬐깐한 삼각형 따위에 담아낼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하고 두꺼운 책이라는 사실을, 한때의 ‘남페미’들이 부디 깨우치길 바란다. 물론 나도 그렇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