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찬근 Aug 06. 2019

동과 서의 국제질서는 과연 ‘충돌’했는가?(下)

유바다, 『19세기 후반 조선의 국제법적 지위에 관한 연구』

 앞서 이야기했듯 유바다의 『19세기 후반 조선의 국제법적 지위에 관한 연구』는 날카로운 통찰과 치열한 사료조사가 빚어낸 훌륭한 논문이다. 그럼에도 아쉬웠던 점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저자가 서울대 외교학과로 대표되는 기성학계와 자신의 연구를 철저하게 구분 지으려다보니 생긴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크게 세 가지 정도를 꼽아보려 한다.     


  첫째, 저자는 19세기 조선의 국제법적 지위란 근본적으로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고 여긴다. 따라서 조선은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을 폐기하고 자주독립의 길로 나아가야만 했다. 이는 저자가 김옥균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저자 본인의 연구에 따르면 전근대 동아시아의 조공질서를 근대 서구의 국제법질서에 ‘연착륙’시킬 수 있는 법적인 근거가 충분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조선의 국제법적 지위가 꼭 불안했다고만 볼 수 있을까?

 물론 저자는 서구 국제법질서에서 번속(藩屬, Vassal State)과 진공국(進貢國, Tributary State)의 지위는 상당히 애매했고, 시간이 흐르며 점차 독립국과 보호국으로 정리되어갔다는 이야기를 빠뜨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논문에서 그리 선명하게 드러나지도 않을뿐더러, 설득력 역시 떨어진다. 20세기에 접어든 이후에도 번속이나 진공국으로 규정되진 않을지언정 이와 비슷하게 불완전한 주권을 보유하는 국가들이 여전히 존재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2019년 현재 완전무결한 ‘주권’을 행사하는 나라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 예컨대 한국과 일본이 명실상부한 자주독립을 유지하고 있다면 ‘전작권 환수’나 ‘보통국가’에 대한 논의가 이렇게나 많이 나올 리가 없잖은가. 앞의 예시는 너무 과하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명목상의 식민지가 모두 사라진 오늘날에도 사전적 의미의 ‘주권’을 온전히 보유한 국가가 극소수라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근대 국제법질서의 번속과 진공국을 꼭 ‘불안’하다고 단정 지어야 할지 좀 의문스럽다. 청이 일본과의 전쟁에서 승리했을 경우 미래가 어떻게 흘러갔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 아닌가.

 논리적으로도 “조공국의 지위는 근대 서구의 국제법질서에서 보장받을 수 있었다”는 주장으로부터 “그러나 그 지위는 매우 불안한 것이었다”는 결론을 이끌어내는 건 어딘가 어색하다. 조공국이라는 지위의 불안함은, 오히려 전근대 동아시아의 조공질서와 근대 서구의 국제법질서는 필연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는 기존 학설을 따랐을 때 선명히 부각된다.


 둘째, 유길준에 대한 저자의 해석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추측컨대 김옥균에 대한 저자의 개인적인 호감과, 유길준을 높이 평가하는 기성학계와의 차별성을 부각하려는 의도가 맞물린 듯하다. 유길준은 『서유견문』 제3편 「방국의 권리」에서 조선과 같은 증공국(贈貢國)은 국가의 보전을 위해 부득이하게 강국에게 공물을 바칠 뿐, 주권을 가진 당당한 독립국이라는 점에서 국사 전반을 상국(上國)에 맡기는 속국(屬國)과는 다르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그는 조선이 조공을 바치고 청이 책봉을 내리는 건 오직 두 나라 사이에 국한된 ‘특수한’ 관계이기에, 조선이 미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과 동등하게 교류하는데 하등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오늘날까지 회자되는 그 유명한 ‘양절체제론(兩截體制論)’이다. 요컨대 조청관계는 나머지 나라들과 마치 책의 페이지가 나뉘듯 그 층위가 다르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유길준의 주장이 당대 서구 국제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라고 비판한다. 유길준이 증공국과 속국을 나눈 것은 조선의 외교고문인 데니가 『청한론』에서 Tributary State(증공국)와 Vassal State(속국)를 구분한 것을 그대로 갖고 온 것인데, 정작 『만국공법』에서 양자는 같은 범주로 취급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증공국은 자주독립이요, 속국은 상국에 철저히 종속되었다는 유길준의 주장은 근거가 없다. 이런 논리로 국제법으로 무장한 노회한 청국 엘리트들에게 맞섰다간 처참히 깨질 뿐이다.

 그간 절대다수의 한국인들이 조선의 지위에 대한 유길준의 ‘입장’을 마치 ‘사실’인 양 굳게 믿어왔다는 점에서, 저자의 날카로운 분석은 분명 의미가 있다. 하지만 저자도 살짝 언급했듯, 증공국과 속국을 분류하고 조선을 전자에 위치시킨 유길준의 작업이 애초에 철저한 ‘정치적 판단’일 수도 있다. 그리고 유길준의 이러한 ‘판단’은, 당시 가난하고 나약한 조선이 고를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가 아니었을까. 저자의 말마따나 김옥균처럼 독립을 선언하고 청의 종주권을 부정하는 게 가장 깔끔한 방법이었겠지만, 조선이 그 후환을 감당할 수는 있었을까.

 유길준이 그렇게 ‘판단’할 근거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저자가 언급했듯 Tributary State와 Vassal State 중에는 나폴리 왕국처럼 교황의 봉신이면서도 사실상의 독립국인 경우가 있었는가하면, 이집트처럼 종주국에게 주권을 상당 부분 제약받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다면 전자를 Tributary State로, 후자를 Vassal State로 확실히 구분 짓고 조선은 Tributary 쪽이라고 선언해버릴 여지 자체는 존재한다. 서구인들 중에서도 조선왕의 권력이 이집트의 파샤(太守라는 의미)보다 훨씬 강하다고 보거나, 유길준의 양절체제론과 비슷한 이야기를 꺼낸 경우가 있으니 말이다.  

   

 셋쩨, 부수적인 문제지만 논지가 약간 산만하고 서술이 늘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저자의 핵심 논지인 전근대 동아시아의 조공질서와 근대 서구의 국제법질서 사이의 연속성이 논문에서 잘 부각되지 않는달까. 반면 제2부 「조선의 반주·속국 지위 극복 시도와 자주·독립국 지위 지향」은 유길준 파트를 제외하곤 쓸데없는 사족이 지나치게 길게 이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가 이 논문으로 2018년 제11회 강만길 연구기금을 받았기에 조만간 책으로 나올 것 같은데, 단행본으로 낼 땐 과감하게 뒷부분을 쳐내고 당대인들이 ‘주권’이나 ‘자주’, ‘자치’ 등을 어떤 의미로 사용했는가를 넣어도 좋을 것 같다. (물론 한림대에서 낸 개념사 시리즈가 있긴 하지만)     


 이건 본문과 관련 없는 고민인데, 개항기를 다룬 어떤 연구를 읽든간에 가장 인상 깊게 다가오는 건 주장의 참신함이나 논리의 탄탄함보다는 조선의 가난함과 나약함인 것 같다. 『개화당의 기원과 비밀외교』를 읽으면서도 결국 조선이 돈 많고 강하면 다 해결되는 거 아닌가싶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 

 청과 일본, 심지어 조선마저 조선은 찢어지게 가난하기에 서구열강이 올 일이 없다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고작 임오군란 한 번으로 나라의 재정이 거덜나 청군에게 의존하고... 그러니까 일각에서 분개를 터뜨리는 ‘1880년대 청의 조선 식민화’는, 사실 조선이 자초한 면이 크다. (본문을 읽었다면 알겠지만 딱히 ‘식민화’도 아니었다)

 심지어 ‘커즌 라인’으로 유명한 영국의 외교관 조지 나다니엘 커즌은, 조선의 유일한 강점이란 바로 그 유약함이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조선은 안겨 있는 어린아이의 힘밖에 없기 때문에 청, 일본, 러시아 삼국의 견제로 아슬아슬하게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만약 조선이 동아시아의 판도를 바꿀 정도로 강력했더라면, 틀림없이 저 세 열강 중 하나에게 먹혀버리고 말았으리란 게 커즌의 진단이다. 정말이지 통렬한 조롱이다. 

 청과 일본은 허구한 날 서구열강에게 얻어터지면서 배상금을 밥 먹듯이 물어내고도 멀쩡하던데, 조선은 어떻게 그렇게 가난하고 약했을까. 이건 진짜 화나는 수준을 넘어 신기할 정도.     

매거진의 이전글 동과 서의 국제질서는 과연 ‘충돌’했는가?(上)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