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유찬근입니다. 지난 며칠간 [‘이영훈론’이 필요하다]에 보내주신 많은 관심과 격려가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론 놀랍고 무섭기도 합니다. 글을 올리는 순간까지 엄청나게 욕을 먹게 될 것 같아 두려웠는데, 부족한 글을 다들 따뜻하게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양한 분들께서 다양한 맥락으로 제 글을 읽어주시는 건 감사한 일이지만, 노파심에 짧게나마 말을 보태고자 합니다. 만일 이영훈 선생님의 글을 읽고자 하신다면 『반일종족주의』를 비롯한 대중서는 가급적 피하시길 바랍니다. ‘학자’ 이영훈 선생님과 ‘계몽가’ 이영훈 선생님의 이야기가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이영훈 선생님께선 학술서인 『한국경제사』에서 상당한 분량을 할애해 조선의 노비는 노예라기보다는 농노에 가까운 존재였다고 말씀하십니다. 반면 대중서인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에서는 노비는 노예에 불과했다고 단언하십니다.
『반일종족주의』 역시 ‘학자’라면 결코 꺼낼 수 없는 이야기들로 가득합니다. 이전부터 이영훈 선생님을 알고 계신 분이었다면 분노를 넘어 슬프고 안타까운 기분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반일종족주의』에 대해선 많은 분들이 이미 꼼꼼하게 비판하셨으니, 이를 읽어보시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영훈 선생님의 글을 처음 읽으시는 분이라면 『한국경제사』를 추천합니다. 저는 이영훈 선생님의 진가는 『한국경제사』와 같은 학술서에서 비로소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대한민국 이야기』나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와 같은 대중서의 경우, 그 악마적인 필력과 근사한 서사가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물론 『한국경제사』는 매우 두꺼운 책이긴 합니다만, 선생님께서 쓰신 다른 논문이나 학술서와 달리 한자도 적고 술술 읽힙니다.
만일 그래도 부담이 되신다면 2011년 그린비에서 나온 『인터뷰: 한국 인문학 지각변동』에 실린 인터뷰 「이영훈: 탈이론, 탈신화의 경제사」를 읽으시길 권해드립니다. 제가 생각하기엔 이영훈 선생님의 문명론과 역사관이 가장 잘 드러난 글입니다.
글은 세상에 나오는 순간 쓴 사람의 것이 아니라고 하는데, 이렇게 사족을 보태 부끄럽습니다. 원래 [‘이영훈론’이 필요하다]를 쓸 때 짧게나마 쓰려던 내용인데, 그 때는 어차피 욕을 먹고 곧 글을 지우게 되리라는 생각에 굳이 넣지 않았습니다. [‘이영훈론’이 필요하다]를 어떻게 읽어주시든 저로서는 감사한 일입니다만, 『반일종족주의』를 읽어보시라는 의미로만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면 해서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