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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찬근 Jan 16. 2022

대원군, 사상없음의 정치사상

『흥선대원군 평전』

 흥선대원군은 조선정치사의 파천황적 존재다. 왕이 아니면서 왕의 아비가 된 자들은 무수히 많았지만 살아있는 대원군은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으나 정작 어떠한 공식 직함도 갖지 않았다. 더욱 놀라운 건 그 막대한 권력으로 벌인 일들이다. 경복궁 중건, 호포제, 사창제, 서원 철폐 등 그때까지 아무도 손대지 못하던 수백 년 된 ‘적폐’들을 과감하게 해치웠다. 대원군의 안티만큼이나 팬 또한 많은 이유 역시 역사상 이런 ‘사이다’를 보여준 정치인을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리라. 특히 입만 열면 개혁을 외치면서 정작 하는 건 아무것도 없는, 혹은 없다고 느껴지는 사람들이 많은 지금은 더더욱.

  

흥선대원군은 조선정치사의 파천황적 존재다


 흥미로운 건 대원군에 대한 이런 관심과는 대조적으로, 정작 그의 정치사상을 조명하는 연구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기존 질서를 죄다 무시하고 깨부수는 파괴의 화신이란 이미지가 너무 강한 탓이다. 진짜든 아니든 많은 사람들이 “백성을 괴롭히는 자라면 공자가 살아 돌아와도 용서치 않겠다!”는 말을 대원군이 했다고 믿는다는 건 퍽 의미심장하다. 유교문명의 창시자인 공자조차 가만두지 않겠다는 사람이거늘, 사상 따위는 기대할 수 없다는 심리렸다.

     

 하지만 공자를 거스른다고 해서 사상이 필요하지 않은 건 아니다. 공자를 거스르기 위해서라도, 사상은 필요하다. 특히 그곳이 “유교 탈레반”의 나라인 조선이라면 더더욱. 김종학의 『흥선대원군 평전』(이하 『평전』)을 펼쳐본 건 이런 이유에서였다. 권력의 원천부터 실제로 행한 일들까지 무엇 하나 ‘정상적인’ 게 없었던 대원군은, 어떻게 자신의 ‘비상함’을 정당화했는가? 그는 어떠한 언어를 사용해 지지자를 모으고, 적을 규정하고,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했는가? 요컨대, 대원군의 정치사상은 무엇인가? 이게 나의 질문이었다.

     

김종학의 『흥선대원군 평전』


 안타깝게도, 『평전』은 대원군의 정치사상이나 그의 권력에 당위를 부여한 정치사상적 토대에 대해 질문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은이는 시종일관 대원군을 “정치적 이념과 정치철학이 부재한 권력욕의 화신”(p.249.)으로 묘사한다. 기존 연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시각이다. 실제로도 지은이는 황현의 『오하기문』이나 『매천야록』, 박은식의 『한국통사』 등 지금까지 숱하게 쓰였던 자료들에 의존한다. 그런 만큼 대원군에 대한 새로운 무언가가 나오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황현과 박은식


 물론 대원군에게 정말 정치사상 따윈 없었을 수 있다. 아니, 오히려 이게 진실에 더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대원군의 정치사상은 없어도, 정치사상으로서의 대원군은 있을 수 있다. 그러니까 당대의 맥락, 구체적으로 정조부터 시작해 세도정치를 거치며 특정 개인 혹은 집단에 권력이 과도하게 쏠린 상황에서 마침내 대원군이 기회를 잡은 과정을 정치사상사의 시각에서 재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학자들에겐 비약이라며 욕먹겠지만, 다른 어떤 학문보다 ‘비평’의 성격이 강한 사상사 연구자라면 그런 과감함은 오히려 미덕일 수 있다. 당장 우리시대 최고의 평론가인 김영민의 전공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실제로 얼마 전 출간한 『태종처럼 승부하라』에서 정치사상사 연구자 박홍규는 한비자나 마키아벨리 등을 사상적 도구로 삼아 태종을 새롭게 그려낸다. 하물며 역사학자인 후지이 다케시조차 푸코를 끌어와 이승만과 박정희의 통치방식을 “나병모델(죽게 하고 살게 내버려두는)”과 “페스트모델(살게 하고 죽게 내버려두는)”로 구분했다. (여담이지만, 후지이 다케시는 단편적인 사실들에 의미와 맥락을 부여하는, 속된 말로 ‘야마 잡는’ 능력이 정말 탁월했던 역사가라고 생각한다. 정작 그가 일본에서 석사논문을 마치기도 전에 한국으로 건너와 수업을 청강할 정도로 좋아했다던 지도교수 서중석이 ‘실증’의 역사가였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퍽 재미있는 아이러니다. 아직도 후지이의 칼럼 모음집 『무명의 말들』을 가끔 펼쳐보곤 하는데, 그의 글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게 나는 너무나 안타깝다.)

     

박홍규와 후지이 다케시


 김종학 역시 대원군을 정치사상사의 시각에서 재해석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은 건 아니다. 전작 『개화당의 기원과 비밀외교』(이하 『개화당』) 말미에서 그는 대원군을 일종의 리바이어던으로 묘사했다. 기존의 권위와 질서가 모두 무너진, 마치 자연상태와도 같았던 조선 말기에 오직 대원군만이 새로운 질서와 권위를 창출할 수 있는 존재로 여겨졌다는 것이다. 『평전』에서 자세히 설명하듯 (사실 이게 이 책의 가장 큰 재미다) 실각 이후에도 개화당, 친청파, 일본, 청, 동학군에 이르기까지 이념도 지향도 제각각인 세력들이 대원군의 “호랑이 같은 기세”를 빌리려 했다는 사실은 이를 잘 보여준다.

     

김종학의 『개화당의 기원과 비밀외교』


 하지만 이렇게 매력적인 틀을 만들어놓고도, 김종학은 정작 『평전』에선 대원군을 리바이어던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리바이어던의 자리를 가져간 사람은 청일전쟁 이후 주조선 일본 공사로 부임한 이노우에 가오루다. 지은이는 수틀리면 아무나 픽픽 죽여버리는 대원군, 수단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는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권력을 장악하고 싶어하는 명성왕후, 독재자가 될 강인한 기질도 없으면서 독재자가 되고 싶어하는 박영효가 대립하는 혼란상을 종식시킬 사람은 오직 이노우에뿐이라는 윤치호의 한탄을 두 번이나 인용한다. 이렇게 대원군은 조정자에서 플레이어로 격하되고 만다. 결국 지은이는 사상없음의 정치사상이라는 역설을 설명하는데 실패한 것이다. 혹은 아예 도전하지 않았거나.

     

대원군은 조정자에서 플레이어로 격하되고 만다


 『평전』을 펼치며 기대했던 것 또 하나는, 조선의 정치시스템에 대한 지은이의 구체적인 평가였다. 김종학의 전작 『개화당』은 갑신정변이 단순히 청으로부터의 독립을 외친 쿠데타가 아니라 신분차별 철폐를 위한 혁명이었으며, 그 주축은 박제가로부터 이어지는 중인과 상인 세력이었다는 주장으로 논란을 일으킨 문제작이다. 지은이는 학계의 김옥균이 되려고 하느냐는 이야기까지 들었다는데, 막상 책을 읽어보면 과연 그 정도인지 의심스럽기는 하다. 지은이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유력한 ‘물증’인 역관 오경석과 의원 유대치, 승려 이동인이 조기에 퇴장하고 결국 정변은 김옥균과 박영효라는 양반 도련님들에 의해 일어나기 때문이다. 만일 중인과 상인이 “사라지는 매개자”에 불과했다면, 갑신정변은 양반들 권력다툼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갑신정변의 주역들


 이처럼 다소 무리해가면서까지 갑신정변을 중인과 상인을 위한 혁명으로 규정하는 만큼, 김종학이 조선왕조를 부정적으로 평가한다는 사실은 그리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정확한 표현은 기억나지 않지만, “급변하는 세계정세를 파악하고 개혁을 추진하는 데는 무능하면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는 데는 놀랄 만큼 유능하고 단결도 잘 되는 양반세력”이라는 지은이의 말은 아직도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김종학은 아예 개화파의 계보를 박지원-박규수-김홍집·김윤식으로 이어지는 체제수호파와 박제가-오경석-김옥균으로 이어지는 체제변혁파로 분리하기까지 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렇게 양반 신분제를 질타하면서도 김종학은 왕권과 신권이 견제와 균형을 이룬 조선왕조의 통치시스템 또한 높게 평가한다는 것이다. (이는 그가 공저자로 참여한 『다시 국가를 묻는다』에서 잘 느낄 수 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식으로 넘어갈 수도 있겠으나, 적어도 그때는 왜 맞았고 지금은 왜 틀린지에 대한 설명은 필요하다. 『개화당』을 읽으면 정작 책의 ‘메인 빌런’으로 설정된 친청파 엘리트, 대표적으로 김윤식이 오히려 ‘진 주인공’처럼 느껴지는 건 그러한 설명이 없어서일지도 모른다. 이들은 청에 의존하는 수구세력이라기보다는 왕권과 신권의 견제와 균형이라는 조선왕조의 통치시스템을 근대적으로 변용하려는 ‘합리적 보수’로 그려진다.

      

친청파 엘리트 김홍집, 어윤중, 김윤식


(김종학과 마찬가지로 개화기로 박사논문을 쓴 유바다 역시 동아시아의 전통적 조공-책봉관계가 근대 서구의 국제법으로도 정당화될 근거가 있었음을, 즉 서구와 동아시아, 전통과 근대가 꼭 ‘충돌’하지만은 않았음을 밝혔으면서도 정작 조선에 주어진 유일한 길은 김옥균의 완전독립밖에 없었다는 결론으로 나아간다. 어째서 다들 이리도 김옥균을 좋아하는 것일까? 마성의 사나이, 김옥균!)

     

 『평전』에서도 김종학은 조선왕조의 통치시스템을 무너뜨린 대원군을 부정적으로 묘사한다. 하지만 이는 개화당 역시 마찬가지 아닌가? 요컨대, 대원군은 친청파 엘리트보다는 오히려 개화당과 함께 묶일법한 존재다. 김옥균과 박영효가 대원군의 “호랑이 같은 기세”를 빌리려던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그렇기에 질문해본다. 지은이는 조선왕조의 통치시스템을 긍정하는가, 아니면 부정하는가? 지나친 도식화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겠지만, 지은이의 ‘총론’이 워낙 칼칼하고 선명한 만큼 필연적으로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질문이다. 특히 그간 조선왕조의 역사적 성취로 평가받았던 군신간의 견제와 균형이 최근엔 하물며 군주조차 손댈 수 없었던 양반 엘리트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장치로 평가받기도 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더더욱.

     

 이 질문에 대한 김종학의 대답은 김옥균이나 대원군보다는, 오히려 김윤식에 대한 평가로부터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간 김윤식은 친청파 엘리트 중 비교적 많이 다뤄지긴 했으나, 그를 조명한건 대부분 일본 학자들이었다. 그런 만큼 김윤식은 “소국주의 내셔널리스트(기무라 간)”, “조공체제와 국제법 모두로부터 이득을 얻겠다는 양득론자(오카모토 다카시)”, “유교를 끝까지 밀고 나감으로써 근대에 도달한 선각자(조경달)” 등, 일본과는 다른 조선/한국적 특수성을 상징하는 인물로 소비되었다. 한국인으로는 드물게 김윤식에 대한 단행본을 쓴 국제정치사상 연구자 장인성 역시 그를 승출(乘出)의 사상가 요코이 쇼난과는 대조되는 근수(謹守)의 사상가로 정의했다. (장인성이 활동시기로 보나 역할로 보나 쇼난의 짝꿍에 훨씬 어울리는 박규수 대신 김윤식을 고른 건 조경달에 대한 비판보다도 조선과 일본의 ‘차이’를 드러내기 위한 의도적인 기획은 아니었을까?)

     

기무라 간, 오카모토 다카시, 조경달


 김종학이 그려내는 김윤식은 이와는 전혀 다르다. 그는 청에서 임오군란이 터졌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청군 전함과 함께 귀국해 대원군을 납치할 만큼 노회했고, 고종에게 자신이 대신 써준 반성문을 읽게 할 정도로 거침없었으며, 무력으로 거문도를 점령한 영국에게 국제법을 근거로 그 부당함을 설파할 만큼 주도면밀했다. “박규수 스쿨”의 베드로-자로이자 청질서 아래에서의 근대화를 지향하던 속국자주(屬國自主)의 모더니스트, 전통적인 군신공치(君臣共治)의 현대화를 도모한 합리적 보수의 면모를 모두 갖고 있었던 야누스적 인물이었다. 치렁치렁한 수염을 달고 인자한 웃음을 지어보이던 만년의 사진에 속으면 안 되는 것이다.

      

김윤식, 야누스적 인물


 이러한 김윤식의 다면성을 포착한 사람은,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김종학 밖에 없다. (굽시니스트도 있지만 그는 김종학의 『개화당』을 중요한 참고자료로 활용했다.) 자신의 지향과는 정 반대편에 서있는 김윤식을, 그는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조선왕조의 통치시스템, 그리고 이를 깨부수고자 한 대원군과 개화당에 대한 김종학의 생각은 『김윤식 평전』이 나온 뒤에야 선명히 드러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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