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밤 열 시.
불과 20분 전에 집에 왔다. 회식을 마치고.
오늘 저녁은 이장님들과 면사무소 전직원 회식이었다.
정말이지 가고 싶지 않았다. 퇴근 이후 시간을 이런 식으로 쓰는 것이 정말이지 싫다. 그러나 6개월 전, 아니 불과 한 달 전과 달리 나는 불참하겠노라고 말하지 못했다.
한 달 전 부서에서는 그곳에서 일한 지 이미 일 년 반째인 능구렁이 고인물이었지만, 지금은 이곳에서 다시 군기바짝 든 신참같은 존재다. 그때 상사는 근무 외 시간의 일정에 빠지는 것에 크게 개의치 않았지만, 지금 상사는 근무시간이든 아니든, 업무든 아니든 일정 만드는 걸 개의치 않으신다(빠지면 데쓰노트다).
무엇보다 그때는 직원이었지만 지금은 팀장이다. 직속 상사의 레벨이 달라졌다.
회식 장소에 들어가기 전 가면부터 썼다.
누군가 씌워준 건 아니다. 주섬주섬 내 손으로 쓴다.
입장 동시에 변모한다. 싫은 티는 커녕 세상 적극적으로 즐기는 팀장이 된다. 오늘 저녁 자리를 (굳이) 창조한 상사의 취지와 이장님들의 흥에 섞이고 부응한다. 가면이 역할에 충실한 중이다. 오늘따라 착붙이네. 웃고 떠들고 호응하고 먹고 마신다.
무대공포증이 있는 나는,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돌아가며 시키는 건배사가 너무 싫다. 하지만 피할 길 없다.
알콜의 힘 덕인지 양소리는 면했다. 아니 양소리를 면한 정도가 아니라, 평소 나같지 않게 신소리를 하는 것이 좌중에서 섭섭지 않게 터지기도 하고, 뱃심을 끌어모아 제법 우렁차게 건배사도 해낸다. 스피킹 대가 이민하 선생님의 피드에서 배운 가르침은 이 순간을 위한 거였나 보다.
도망치고 싶었던 오늘 회식에서 쓴 가면은 ‘협조적인 팀장’ ‘꽤 유쾌한 직원’이었다.
역할을 다 한 가면을 '진짜 퇴근' 기차에 올라탄 후 비로소 벗었다.
집에 도착하니 얼굴이 얼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