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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들 Sep 27. 2023

너 어젯밤 기억 안 나?


혹시... 그때 그분, 문박사님 아니세요?


그때. 그분. 

'그'라는 말은 앞에서 언급한 것이나, 이미 알려진 사실을 가리킨다. 즉, 말하는 이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은 분명하고, 듣는 이도 같은 사실을 알고 있을 거라 기대하며 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불안하다. 그때, 그분. 알지 못하는 지경으로  '그' 기억이 없지만, 일단 '그분'이 나라는 것을 전제하고 떠올려보려 애쓴다. 


그녀가 준 정보는 이러했다. 

작년

아이들 글쓰기 수업 때

개인 메일로 교재 요청

너무 바빠 보였다. 


아. 비슷한 일이 생각났다.

글쓰기 수업 교재를 개인 메일로 교재 요청? 얼추 관련한 일이라면, 아이가 작년동안 글쓰기 온라인 수업에 참여했었는데, 12월 매거진에 아이 글이 실려서 기쁜 마음으로 책자를 받은 일이 있었다. 그런데 내가 그 책자를 메일로 따로 요청했던가? 그리고, 연말이라면 휴직 중이었는데 그때 바빴던가? 영 연계가 매끄럽진 않지만 아무튼 일단 '내가 맞는 것 같아요', 알은체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 일이 아닌데. 문박사가 아닌가 봐요.' 하며 그녀는 넘기려 했지만 내 마음이 영 개운치가 않았다. 

머리는 온통 안갯속이면서도 몸으로는 내가 틀림없다는, 확신에 가까운 직감이 들었다. 

기억이 가물가물한 나의 과거를 타인에게 들었을 때 왜인지 불안해지는 것은 나만 그런 걸까. 마치 술자리에서 필름이 끊긴 후 다음 날 누군가 이렇게 물을 때가 그럴 것이다.

"너 어젯밤 기억 안 나?" 

빠르게 스미는 공포와 찜찜함. 그리 묻는 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는 건 차라리 낫다. 걱정스러운 얼굴이면 최악이다. 후들후들. 

나 뭐 잘못했니. 나 떨고 있니. 




내 마음을 읽은 듯한 그녀가 다시, 보다 더 친절하고 상세하게 제공한 정보는 다음과 같았다.

아이들 글쓰기 수업 때 통상적으로 PDF 파일로 된 교재를 네이버톡톡으로 발송한다.

메일로 따로 보내달라는 요청이 있었는데

문박사 이름으로 기억한다.


아. 짐작 가는 게 있다. 

즉시 해당 인터넷 카페에 접속했다. 내 아이디로 업로드한 글들이 보인다. 작년에 아이가 수업받고 글쓰기 한 것을 열심히 올린 인증 기록이다. 날짜를 보니 확실해졌다. 작년 3월부터 7월까지.

내가 다른 글들에서도 언급하고 징징거렸던 바로 그 시기였던 것이다.



7월 휴직 전으로부터 정확히 1년간에 대해서라면 '전쟁 같았다',라고 회고하곤 한다. 

인생에서 그렇게 피폐했던 시간이 또 있었던가. 사람이 어떻게 될 것 같았던 날들이, 어쩜 그토록 일 년 내내 지속될 수 있을까. 티브이나 책에서 보는 성공한 멋진 (물론 우리가 겉으로 보기에) 커리어우먼들과 달리, 매일 일에 쫓기고 야근하면서도 집에 있는 아이들과 마음이 분리되지 못해 더 견디기 힘들었다. '지금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지. 산재처리에 누구도 부정할 수 없지.' 부정적이고 날카로운 마음이 밑바닥에 깔리고 있음을 인식할 새도, 여유도 없었다.






휴직한 지 막 일 년이 지났다. 

얼마간은 후임자와 업무 연락이 오가기도 했지만, 그 외에는 의식적으로 잊고 살았다. 가끔 복직하는 악몽을 꾸었지만, 휴직 생활을 양념반 후라이드반처럼 아이들과 나를 위해서 제법 균형 있게, 야물게 보내고 있으니 그곳은 자연스럽게 잊히기도 했다. 그랬기에 12월의 일은 얼른 기억나고, 불과 그 몇 달 전의 일은 저어기 아래 더깨를 끙끙거리며 벗겨야 드러낼 수 있던 거겠지. 선 긋듯 그렇게 딱 잘라서 말이다. 

여북 싫었으면.



그럼에도 그 시간을 떠올리게 될 때가 문득 있다. 오늘의 대화가 그랬다. 

웹툰이나 영화에서 죽음 경계의 인간이 육체에서 혼령만 빠져나와, 나와 나의 세상을 대면하는 장면처럼, 그때의 나를, 대각선 위쯤에서 둥둥 뜬 채 내려보는 듯한 경험을 오늘 했다.

(축북의 나이라는 것을 나중에 안) 마흔을 그렇게 맞고 있는 거기 내가 있다. '일개 월급쟁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그리 아등바등거리니.' 한탄하는 마음도 잠시. 눈앞의 업무를 처리하다, 아이의 글쓰기 수업이 생각난다. 다행히 퇴근한 남편이 아이가 온라인 수업에 들어갈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 그러려면 내게 온 자료를 남편에게 보내줘야 집에서 출력할 텐데, 이상하게 네이버톡톡에서 보이지가 않는다. 아니 열리지 않은 건지 어떤 문제였는지 사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조급한 마음으로 담당자분에게 요청한다. '자료를 메일 주소로 보내주실 수 있나요.' 그러기를 몇 번이나 했을 거다. 담당자가 이름을 기억할 정도이니.(부디 예의 없이 하지 않았기를, 뒤늦게 바라본다.) 일주일에 한두 번뿐인 수업, 그걸 미리 준비하지 못하고 아이와 남편, 심지어 얼굴도 모르는 담당자까지 불편하게 하고는, 여지없이 자책감에 쌓인다. 

정말. 대책 없는 유리멘털.


나를 지켜보는 나는 짜증나거나 답답한 대신, 그만 안쓰러워진다. 

"쫌! 단단해져 봐. 일도 좀 설렁설렁해도 된다고. 그렇다고 월급 더 나오니? 남의 말에 상처 좀 받지 말고." 

조언의 탈을 쓴 잔소리들은 많고 많다. 다 넣어두고 그냥, 저기 저 나를 안아주고 싶다.


(한편 눈앞의 것에 급급하고 끙끙 앓기만 하느라 또한 누군가를 딱하게 하지는 않았는지 염려한다. 혹시 나로 인해 폐나 상처가 되었을지 모르는 그들에게도 송구함을 담아본다.)



누가 누굴 위로할 처지나 되었던가. 

안을 들여다볼 여력이나 있었던가. 

저기 아래의 내가 보이고, 그를 내려다보며 가만히 어루만져주는 여기의 나도 보인다. 그럴 처지가 되었나 보다. 이제 여력이 있나 보다. 비로소 유리두께가 조금 단단해졌다 보다.

일 년을, 그 전의 일 년과는 다르게 살았다. 나와 가족을 보며 선택했고 집중했다. 여전히 과정에 있지만 맺히는 열매가 몹시 달고 실하여 나는 계속해서 이렇게 씨를 뿌리고 키울 생각이다.






행복한 가운데 어쩐지 개운치 않은 구석이 있었는데, 과거의 자신을 대면하고 다독이지 못해서였음을 알겠다. 그럴 자신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알려하지도 않았으니. 

정리가 안 된 방에서는 잠자리가 뒤숭숭하기 마련이고, 대만드라마 <상견니>에서 황위쉬안이 타입슬립하며 과거로 자꾸 돌아가려는 이유가 다 있는 거다. 오늘 그녀와의 대화는, 과거의 나를 용기있게 마주하고 다독이게 해 준 황위쉬안의 카세트테이프와 같았다. 


뭐, 드러나지 않은 케케묵은 것들이 아직 쌓여있을 수 있지만, 일부나마 과거사(!)를 정리한 기분이다. 창밖에는 어제에 이어 비가 내리고 있지만 나는 오늘 퍽 새롭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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