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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들 Oct 23. 2023

북토크에서 책을 받았다

뜻이 있는 곳에 선물이 있나니.

주말 아침. 즐겨 가는 도서관에서 문자가 왔다.

'오늘 오후 2시 <어른의 문해력> 김선영 작가의 토크콘서트 안내'


오. 어른의 문해력? 김선영 작가? 문해력이야 몇 년째 뜨거운 감자라 관련 책이 쏟아져 나오고 나 역시 여러 권 읽어보기도 한 익숙한 주제이지만, 해당 책은 어쩐지 익지 않다. 김선영 작가? 음.. 우리 집에 있는 청소년소설 <시간을 파는 상점>의 김선영 작가는 아는데... 같은 분인가?

도서관에서는 매달 프로그램으로 북토크가 열리는데 그동안은 주로 그림책 작가라 종종 아이들과 함께 했다. 혹은 관심 없는 분야라 내가 주목하지 않았고. 그런데 이번에는 느낌이 온다? 나를 손짓하며 부르는 것 같다.

'아직 몰랐어? 잊지 말고 꼭 와야 해~'

안내 문자의 행간에 없는 문장까지 보이는 듯하다.

자. 검색의 생활화.  <시간을 파는 상점>의 김선영 작가와는 다른 분이었다. 14년간 방송작가로 일하다 자신의 글쓰기에 매진하며 글쓰기 코치로도 활동하고 있다. 지금까지 네 권의 저서가 있는데 그중 세 권이 글쓰기와 관련한 책이다. 대표저서로는 안내에 명기된 <어른의 문해력>이 있는데, 내용을 살펴보니 개인적으로는 <어른의 문장력>이라는 책이 내게 더 필요해 보였다. 와. 완전! 이건 가야 해. 직관해야 해!!

그런데 잠깐. 오늘이라고? 책이 없는데...






유명 작가의 걸음이 이 시골까지 닿는 경우는 드물다. 그간 경험한 북토크나 북콘서트는 내가 주체적으로 이룬 일이었다. 좋아하는 작가 북토크를 '예약'하고, 내 일정을 비우고, 왕복 기차표를 예매하고 다녀오는, 당일치기 여행 수준이다. 이렇듯 작정을 하고 가는 '내게 큰' 행사이니, 저서를 준비해 가는 것은 그야말로 마땅한 준비물이다. 책에 작가 싸인을 아니 받을 수 있겠는가.

하물며 관심 있는(지금 막 생긴) 작가님이 여기 행차하시는데, 책이 없다니.


당일이라 온라인 서점 주문도 안 되는 점을 아쉬워하며 지역 서점을 검색하여 전화를 돌렸다. 저서 두 권을 다 문의했다. 아. 없다. 온라인 서점에 검색했을 때는 리뷰도 꽤 많고 반응도 좋은 책이던데, 한 권도 파는 서점이 없다니. 대형서점이 없는 지역 환경이 새삼 안타까웠다. 작아지는 상권에다 그나마 남은 동네 서점들에는 문제집 종류가 더 잘 팔린다. (나만 해도 온라인서점을 주로 이용하며 서점은 아이 책 고를 때만 더러 갈 뿐이니, 할 말 없다. 온라인 수요가 많아지니 동네 서점은 죽을 수밖에 없고, 안 팔리는 책을 다양하게 많이 갖다 놓지 못하는 동네서점이니 소비자는 가지 않게 되고. 악순환이다.)       

오늘 일단 그냥 참석할 수밖에 없겠다. 아이들과 채비를 하여 도서관에 도착했다. 아이들은 어린이 열람실에 떨구어 놓고 나는 북토크가 열리는 산책홀로 가 앉았다.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와서 놀랐다. 청중의 연령 범위가 넓은 것과 성별이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것도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청중의 집중도에 놀랐다. 내가 맨 뒤에 앉아서 다 봤다. 도서관이나 시에서 여는 강의들은 많다. 무료라서, 시간이 남아서, 그냥 그렇게 주민들이 많이 오기도 한다. 그런데 이 강의를 듣고 있는 이들은 '그냥 그렇게' 온 사람들이 한 명도 없는 것 같았다. 작가가 우스운 얘기로 빵빵 터뜨리는 스타일도 아닌데, 모두 한 시간여의 강의 내내 그 작가에 빠져들 듯 향하거나 앞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머리칼이 희끗희끗한 우리 아버지 또래의 어르신은 하나도 놓칠 수 없다는 듯 연신 카메라로 화면을 찍으시거나 수첩에 열심히 메모를 하셨다. 청년도, 중년도 그랬다. 이렇게 글쓰기에 관심 있는 사람이 많다니. 이 뜨겁고 진지한 현장은 내게 무척 신선하게 다가왔다.

흔한 글쓰기 모임도 없는 시골이라 생각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고 솔직하자면, 없다고 생각하여 알아볼 노력도, 꾸려본 용기도 내지 않았었다. 혼자 쓸 뿐이었다. 어차피 혼자 하는 작업이니까. 아마도 앞으로 그럴 것이다. 하지만 미세하게 변화가 예감한다. 이 조용하고 작은 지역에서도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고 글로 써내고 싶어 하는 뜨거운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 같았다. 이 다양하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속 에너지를 이곳저곳에서 조용히 글로 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한다.

특별한 연결고리 없이 든든하다.






알찼던 강의 내용 중 필사가 내게 꽂혔다. 필사야 뭐 모르는 이 없을 것이다. 좋은 문구를 베껴 쓰는 것. 필사의 좋은 점을 강조하는 유튜브나, 실제 필사를 하고 게시물로 올리는 SNS도 많이도 보아 왔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렇게 좋다고- 좋다고, 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말해도 듣는 자식에게 와닿지 않으면 잔소리일 뿐이다. 철들고 정신 차리며 내가 필요해져야 아, 그거 있지, 하고 달려든다. 아님 뭐, 아이돌 오빠가 한 마디 해주던지.

널리고 널린, 눈에 아른아른하도록 흔하게 보던 '필사'라는 것이 그랬다. 지금껏 내 것이 아니었다. 귓등으로도 안 듣던 필사가 강의 중 불과 십여 분 만에 내게 팍 꽂혔다.


작가가 설명한 필사의 효과는 이러했다.


<필사의 효과>

1. 독서량 : 매일 인증을 하다 보면 자기 전 한 두쪽이라도 읽게 된다. 책을 읽어보면 겪는 바지만, 읽다 보면 한 두쪽이 뭐여, 궁금해서 쭉쭉 읽게 된다. 자연히 독서량이 는다.

2. 글쓰기 재료 : 필사할 재료는 책에서 인상적인 부분이나 문구다. 인상적이라는 것은 공감되거나 영감을 주는 내용이니 글쓰기 재료로 이어지기 쉽다.

3. 새로운 어휘와 문장 구조 :  사람은 늘 쓰는 말만 하고, 쓴다. 내게 익숙하지 않은 어휘와 문장구조를 책에서 접하고 그것을 직접 따라 써 보면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끝날 무렵, 질문 있는 분 있는지 물으셨다. 그리고 한 분의 질의응답이 끝났을 때. 럴수 럴수 이럴 수. 내가 손을 들고 마이크를 받고 있는 게 아닌가. 이 소심쟁이가, 대문자 I가, 맨 뒷자리 사수녀가, 무려 질문 타임에 손을 들었다니. 유사 이래 손에 꼽을 만한 사건이다.

내가 물은 것은 이랬다.

"작가님은 손으로 쓰는 필사를 하시는데, 타자나 휴대폰으로 치는 필사도 해보셨는지, 손글씨 필사의 장점이 무언지 궁금합니다."

작가님은 이 질문을 강의 때마다 받는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이렇게 답변하셨다.

"이 질문을 하는 이유를 저는 알지요(웃음). 타이핑이 빠르고 익숙하니까요. '그래서' 손글씨로 필사합니다. 손으로 써보면 알겠지만 마음처럼 빨리 쓸 수가 없어요. 그러니 자연히 느리게 음미하게 되지요." 

하지만 기록의 의미와 차후 검색의 용이성을 위해 손글씨는 손글씨대로 인증하고, 별도로 타자로 입력해서 남기기도 한다며, "둘 다 하세요."라는 깰꼼한 명언으로 정리를 하셨다.


뭐 하세요. 이렇게 하세요. 단정 짓거나 명령체를 거부하는 다소 더러운 아니 까다로운 성격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 잔소리를 주체적으로 흡수하고 있다. 받아들일 때가 되어서이다. 내 것이 될 준비 완료.

얼결에 글쓰기를 시작한 지 일 년이다. 누구도 주지 않는 압박을 견디며 작심삼일 반복하기를 이어갔다. 책 읽기를 그저 좋아하던 마흔 인생에 글쓰기가 보태졌다. 일 년이면 정착되었다고 봐도 되지 않나?(누구한테...)

그렇게 시나브로 준비가 된 모양이었다.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작가님의 말씀을 아로새겼다.

그때 작가님이 한 구석으로 걸어가시며 수줍게 말씀하셨다.

"질문하신 두 분께 선물을 드리고 싶은데요."

하며 무려 당신의 가방에서 노란 책 두 권을 꺼내시는 게 아닌가. 헛. 주최 측에서 준비한 것도 아니고, 작가님이 직접 가방에 챙겨 오신 것이라 더 감격스럽다. 의미 부여하는 버릇 있는 사람으로서 최적의 감동 포인트다. 공손히 받고 보니 그 책은 심지어, 내가 갖고 싶어 한 <어른의 문장력>이다.



최근 일 년 사이에 부쩍 많이 새기는 문장이 있다.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모든 경우에 적용이 되는 다용도 문장이라 잘 써먹는(!)다. 여기에도 써먹어보고 싶다.

글을 썼더니 평생 읽어왔던 책 읽기가 달리 다가왔다. 자꾸 멈추며 생각하며 느릿느릿 읽게 되었다. 생각하고 느낀 것을 글로 써내어 본다. 쉽지 않은 작업이지만 외면하지 않고 애써 한다. 써서 남긴다. 남기는 것은 기록이다. 다른 형태의 기록에 대하여도 그 중요성을 깨달았다. 원래 하고 있던 일도 인증함으로써 기록으로 남긴다.

글 쓰면서 책 읽는 방법의 변화는 '필사 잔소리'를 받아들이게 했다. 어떻게 실행하고 인증할지 시작도 하기 전 머리에 그려진다. (필사 인증은 김선영 작가님의 이 책으로 해야겠다, 그것이 사람 된 도리, 라며 또 의미 부여.)

뭐가 되었든, 하니까 꼬리에 꼬리를 물며 펼쳐진다. 준비가 되었기에 필요한 강의가 눈에 띄고, 마음이 가득하니 생전 안 하던 '손들고 질문'이라는 것을 하고, 그러니 선물도 받았고.

책만큼 귀한 선물이 또 언제 어디서 어떻게 굴러 들어올까. 넝쿨째 들어올지도 모르는 그것을 마땅히 받기 위해 내가 버선발로 나서서 준비해야겠다.


또 꼼지락꼼지락 뭘 하러 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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