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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들 Oct 24. 2023

이상한 부탁을 하는 모임


일 년 전 우리는 만났다.

<브런치 프로젝트>라는 챌린지에 돈을 내고 신청을 했다. 기존에 혼자 글을 써오던 사람들도 있었고 나처럼 뭣도 모르고 덕질에 이끌려온 사람도 있었다. 선생님을 알고 믿고 들어온 것으로 미루어 엄마라는 공통점이 있을 터였다. 서투른 우리는 강의에 웃고 훌쩍이며 글이라는 것을 쓰기 시작했고,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에 작가 지원을 했다.

딱 이맘때였다.

늦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길목. 계절감을 기억하는 단서는 밀크티이다. 프로젝트 참여자들이 한창 작가 지원서를 내던 무렵, 아주 이르지도 않고 너무 늦지도 않은 시점에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메일을 받은 나는, 1학년 쌍둥이 하굣길을 마중 가는 길을 조금 일찍 나서 카페에 들렀다. 동네에 갓 생긴 홍차 전문점이었는데 무급 휴직 중인 나는 제법 비싼 찻값에 선뜻 들어가지 못했었다.(이은경 선생님의 눈물 젖은 단팥빵이 연상되는 대목이다.) 단풍이 제법 떨어지고 낙엽이 바스락 잔뜩 마른바람을 일으키던 그날 오전  '브런치 작가가 된 나'는 자축의 의미로 밀크티를 내게 선물했다. 남편의 축하만큼 따스하고 달콤하며 적당히 떫은맛을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쌀쌀해진 공기와 벌써 바람에 뒹구는 마른 낙엽을 보니 그로부터 사계절을 돌아왔음을 새삼 실감한다.


나의 밀크티처럼, 그때 각자의 방식으로 부캐 탄생을 자축했을 애틋한 동기들을 이제 만난다. 11월에 첫 모임이 공지된 것이다.

1기 프로젝트 참가자 200여 명에서 일 년을 보낸 현재 160여 명이 단톡방에 남았다. 놀라운 생존율이 아닐 수 없다. 이 독한 여인네들 같으니. 그간 우리는 브런치와 단톡방에서 글과 메시지로 소통했다. '좋아요'와 댓글로 서로를 응원했다. 기쁨도 좌절도 공유하고 공감했다. 채팅방에서는 더욱 활발히, 누구보다 축하하고 고민을 나누었으며 다독였다. 각자의 삶에 열심이면서 한편 이토록 꾸준하게 글을 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혼자였으면 진즉에 나가리 됐을 게 '뻔할 뻔'자다.


잠시 딴 길로 새는 이야기
한자 만화책 <마법 천자문>에 빠진 아홉 살 아들이 말한다.
아이 : 엄마. '뻔할 뻔'자는 없어요.
엄마 : 응? '뻔할 뻔'자가 없어? '놀랄 노'자네.
아이 : '놀랄 노'자도 없어요. 그 말 자꾸 쓰네, 엄마는.

 

그러니 이번 모임은 역경(!)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자들의 생존 신고라 하겠다.







그런데 모임이 공지된 후, 단톡방에서는 조용히 난리다.

활기 넘치는 채팅방의 주역들이 하나 둘 커밍아웃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I밍아웃'이라고나 할까.

'저 내성적이라.. 잘 부탁합니다.'

'낯을 가려서요... 아는 척해주세요. 잠깐만, 우리 이름표 붙이나요?'

'어쩌죠. 작가명이랑 본명이랑 글이랑 다 매치가 안 되는데... 못 알아보면 어쩌지요...'

 년간 라포가 충분히 형성된 덕에 내적 친밀감은 엄청나지만, 어디까지나 온라인상에서의 이야기인 것이다. 실제 만났을 때와의 간극을 상상하니 어색하기 그지없다. 캐릭터를 어찌 잡아야(!)하는지 혼란스럽다는 고민도 올라왔다.

잉? <브런치>와 포털사이트 메인을 하루가 멀다 하고 자신들의 글로 장식해 버리는 이들의 대화가 진정 맞는가? 하루에도 몇 번씩 단톡방을 축제의 장으로 만드는 저력의 작가님들이 맞는가 싶다.  역시도, 채팅창의 말풍선 하나하나 어디 공감 안 가는 말이 없으니 피식피식 낄낄대고 있다. 이들이 왜 글 쓰는 모임에서 만났는지, 우리가 어떻게 여적 살아남았는지 몹시 알겠기 때문이다.

      

나뿐만이 아니다. 내가 아는 많은 내향인은 외향인 가면을 쓰고 온라인에서 활동하고 있다.

근거 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내향성과 외향성을 연구한 수전 케인은 저서 <콰이어트>에서 내향적인 사람들이 외향적인 사람들보다 자기 자신에 관한 깊은 사실들, 가족과 친구들이 보면 놀랄만한 사실은 온라인에 표현한다고 언급했다. 200명이 앉아 있는 강의실에서라면 절대 손을 들지 않을 사람이 200만 명이 보는 블로그에 글을 쓰기도 한다며.

- <어른의 문장력>, 김선영(글밥) '내향인에게 더욱 힘이 되는 온라인 글쓰기' 중에서



외국 영화에서 가면무도회 장면이 나오면 생각했었다. 가면을 쓰면 어떤 기분일까. 등장인물이 입은 근사한 드레스와 화려한 장신구, 차림에 어울리는 에티튜드 '같은 기분'이 아닐까. 원래의 내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아오고 있든 말이다. 글을 쓴다는 것이 내게 그랬다.  물론 멋들어진 이야기만 써 내려가는 것은 아니다.(오히려 그 반대다.) 하지만, 마흔에 진로를 고민하게 만드는 내 직업 말고, 말할 수 없이 사랑하지만 때로(자주) 괴물로 변하게 되는 엄마로서 말고, 타인의 기준에서 늘 평가받는 역할에서 말고, 내가 글을 쓸 때만큼은 마치 다른 존재가 된 듯하다. 글 쓰는 내 모습을 근사하게 여긴다. 가면을 쓴 듯.


한 '편'의 글뿐이 아니다. 말솜씨로 좌중을 휘어잡거나 활력을 내뿜는 대신 내향인들은, 메신저가 편하다. 생각을 표현하는 데 있어 한결 자유롭다. 다수가 함께 하는 자리에서 인사를 나눈다던지 모두가 주목하는 가운데 자기소개를 한다든지 하는 상황이 아주 곤란하다.

어렵다고 해서 싫은 것이 아니다. 그러니 우리가 채팅방에서 이 조용한 소동을 벌이고 있는 거지. 서로를 좋아하고, 어서 만나고 싶고, 설레고. 그러나 긴장되고.


한 작가님이 말했다.

"하객 복장 해야 하나요? 첫 만남이니까?"

빵 터지며 자연스레 '복장'으로 화제가 옮겨갔다.(그랬다. 여기는 복장까지 걱정하는 무리다.)

'드레스 코드를 정하는 게 어떨까요?'라는 제안으로 시작한 토론은 빨강 대 초록은 어떤가요, 크리스마스 색깔입니다, 그럼 골드 앤 실버는요?로 이어지며 뜨겁게 달아올랐다. 옷차림 얘기가 나오니 '지금 3킬로그램 살이 찐 거라고 알려드리고 싶네요...'라는 공감백배의 고백이 올라왔다. (희한하게 특별한 날을 앞두고 늘 3킬로는 쪄 있다.) 엄마도 여자고 소녀였다.

11월 말이니 따뜻하게 입어야 할 것이라는 건강염려론은 많은 이들을 안심시켰고, 과열된 걱정을 순식간에 가라앉혔다. 빵빵한 것은 (3킬로 찐 살 아니고) 패딩일 것이며, 코트는 꽉 '짜매고' 벗지 않으면 된다며, 다들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 모임은 몇 가지 부탁을 주최측에 하게 될 지 모르겠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 실내 난방을 최소화해주실 수 있나요. (빵빵한 패딩 혹은 꽉 쫌맨 코트를 벗지 않을 수 있게 함이지만, 지구 환경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 무대 스크린에 채팅 화면을 띄워주실 수 있나요.(대화는 채팅으로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라방처럼요. 걱정 마세요. 미소와 웃음까지 아끼지는 않을 거예요.)

* 손들게 하거나 무대에 올리지 말아 주세요. (앗. 이것은 작성자 개인 의견일 뿐. 죄송합니다.)


그날까지는 한 달이 남았다.

그 사이에 얼마나 더 쫌스럽고도 기발한 의견과 요구가 모아질지, 감히 예상할 수 없다.

정중하지만 이상하고, 순수하지만 뜨거운 '얘들아'와의 첫 만남을 기다리며, 그래서 한 걸음 뒷걸음치고 세 걸음 저어기 앞서 가있게 되는 것이다.



사진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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