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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들 Aug 24. 2023

울다 웃다 울다 웃다

처음이야, 픽 당한 거.


운전 중 재생해 두고 듣던 강의에서 명상을 시작한 것은 마침 집 앞에 막 주차를 했을 때였다. 엊그제 구입한 벽돌책의 내용을 저자가 직접 강의하는 영상이라 귀 기울여 듣던 참이었다. 차에 아직 앉은 채 그가 이르는 대로 얼른 따랐다.



자, 명상을 실제로 해보겠습니다.

일단 여러분의 가장 큰 고민, 나를 제일 힘들게 하는 것을 생각하고 주먹을 꽉 쥐어 보세요. 이게 여러분이 문제를 대하는 습관입니다. 이제 손을 펴고 숨을 내쉬어 보세요. 손을 펴는 것은 받아들인다는 것, 준다는 것, 그리고 세상과 연결된다는 의미입니다.

힘들고 부정적인 정서는 겨드랑이에 모이고 수축됩니다. 손을 위로 들고 겨드랑이를 열어주세요. 손으로 반대쪽 겨드랑이 아래를 두드려 주세요. 묵직한 슬픔이 여기 들어있어요. 이때 내 이름을 부르며 툭툭 털어주세요. 한 걸음 떨어져서 타인을 보듯 나를 보는 거예요. '아이고, 아무개야. 힘들지.' 반대쪽 겨드랑이도 두드려 주세요. '아이고, 여기도 뭐가 이리 많냐.'

이번엔 안아줄 거예요. 셀프 허깅. 양쪽 팔을 교차해서 팔 위쪽을 잡거나, 한 손을 아까 반대쪽 겨드랑이 아래, 다른 손은 반대쪽 어깨에 놓아 자세를 잡으세요. 그리고, 돌봐주고 달래주세요. 친절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내가 나를 안아주세요.

다른 누구도 줄 수 없어요. 내가 아픈 건 내가 제일 잘 알아요. 나를 달래주고 돌볼 수 있는 건 나예요. 그 '나'가 나를 안아주는 거예요. 문질러도 좋고, 두드려도 좋고, 꽉 안아도 좋습니다. 중요한 건, 따뜻하고 친절한 마음으로.

<내면소통>, 김주환 유튜브 영상



저자가 시범을 보이는 폰 화면에 시선을 고정하고 열심히 따라 하는데, 점점 이거 뭐지. 맙소사.


겨드랑이를 두드릴 때만 해도 괜찮았다. 툭툭 털며 그를 따라 이름을 부른다.

"주환아, 힘들지."

아, 아니구나. 내 이름을 부르는 거구나.

"박사야, 힘들지."

태어나 내가 내 이름을 나에게 부른 적이 있었던가. 자기애가 강한 시기라는 어릴 때조차도 안 그랬을 건데. 오글거리게 어떻게 그걸? 호동이도 아닌 문박사가 자기에게 '박사야', 심지어 '힘들지' 라니. 콧잔등이 시큰해온다. 눈알이 뜨거워지는 걸 느끼며 계속 겨드랑이를 두드린다.


그다음 셀프 허깅 차례. 양팔을 교차해 나를 안는 자세를 하고 선생님(어느새 호칭은 선생님이 되었다)의 말을 나한테 맞게 고쳐해 본다. "박사가 고생이 많지. 이러저러한데 그러 그러해서 힘든 거 잘 알아." 힘듦을 내가 인정하는, 꼭 필요한 과정이라고 했다. 혼자 생각하고 감당하고 있던 내 안의 사정을 처음으로 입 밖으로 내어 내 음성로 듣게 되었다. 여기였다. 터져버렸다.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영상 속 선생님이 이어 말씀하신다. "친절하고 따뜻하게 안아주세요."


몹시 뜨거운 대낮 멈춰있는 차 안에서 한 여성이 자기를 끌어안고 오열을 하게 된 사연이다.






그날 오후, 알람이 울린다. 브런치 알람이다. '조회수가 1000을 돌파했습니다.' 뭔 소리여. 이해가 가질 않았다. 단체 문자를 대하는 양으로 다시 닫고 신경 쓰지 않았다. 말 그대로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서였다. 조금 있다 새로운 알람이 온 걸 보는데 이번엔 2000을 돌파했단다. 같은 내용이 숫자가 늘어난 채로 연달아 오니 그제야 심상찮은 상황임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이거, 설마. 내가? 나도? 내 글도? 어떡해. 어떡해. 뭘 어떡해. 근데 진짜 어떡하지. 너무 떨려.


이곳은 아이들 아직 학교에 있을 낮 시간이라 더욱 고요한 도서관이다. 역시 고요하게 앉아 있는 나는 지금 겉 다르고 속 다른 중이다. 요동치는 내 속 한 구석에서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 믿을 수 없어 '진짜 내가 생각하는 그거 맞을까' 진위에 소심하게 의혹을 품는 한편, 그러거나 말거나 다른 쪽에서는 너른 자리를 잡고 이미 축제다. 폭죽이 뻥뻥 터지는 난리부르스의 여파로 내 입꼬리가 바르르 떨리며 조금 올라간다. 하지만 아직은 벌떡 일어나고 싶지 않다. 글을 쓰기 시작한 지 오래오래 지나 이런 일을 겪으니 그 '오래'의 시간만큼일까. 좋아 미치겠는데, 아무에게도 전하지 않고 어쩐지 혼자 이렇게 조금 더 만끽하고 싶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책 넘기는 소리 속에서 발갛게 달뜬 얼굴을 하고 그렇게 더 앉아있었다.







어제 발행한 글이었다. 어디엔가 노출된 걸까. 브런치 메인 화면을 훑었지만 없었다. 다음에도 가봤지만 없었다. 뭐지. 헛깨빈가. 내가 모르는 뭐가 있나 싶어(실제 뭐를 잘 모르는 일이 많기에)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지난 11월 이은경 선생님의 <브런치 프로젝트>로 작가가 된 우리 동기들끼리의 단톡방에 오랜만에 들어갔다. 몹시 부끄러웠지만 정말 물어볼 데가 없었다. 나의 이런 사정을 소상히 알리고, 어리한 기운을 진하게 뿜으며 문의글을 남겼다. 뜸한 단톡방의 적막함을 깨는 게 쑥스러웠던 나의 주저함이 다 무색하게, 긴 동면을 마치고 봄이 온 것이 반가운 개구리들처럼 작가님들은 순식간에 톡톡 튀어 올랐다. '구글이나 다음에 뜨면 그렇다.'라는 정보부터 '꼭 찾아주고 싶다!', 심지어 '지금 다음에 들어왔다, 발견하면 알려주겠다'까지 답변이 생동감 있게 줄줄이 올라왔다. 겨울왕국에서 자신들을 찾아온 크로스토프를 반겨주고 도와주는 트롤들이 떠올랐다. 찾아주고 싶다 라니, 벌써 찾으러 들어갔다니. 너무나 적극적인 나머지 다소 공격적으로까지 느껴지는 동지 작가님들은 또 나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아까와는 다른 종류의 울컥이다. (그나저나 뭐 이리 눈물이 흔해졌는지. 늙었나.)


작가님 중 한 분이 '에디터 픽에 올라와 있네요!' 하며 캡쳐본을 올려주셨다. 아. 내 글이 에디터 픽에 이렇게 떠 있다니. 신기하고 이상한 감흥에 한참을 구경했다.

증거물이 올라오면서 더욱 뜨겁게 작가님들의 축하 세례가 이어졌다. 아이디 면면이 모두 브런치에서 필명으로 익숙하다. 즉 1년 가까이를 지금까지 활발하게 글을 쓰고 있다는 방증이겠다. 무서운 분들이다(!). 내가 오늘에야 처음 경험한 이 일조차도 이미 다들 겪고(심지어 몇 번이고) 브런치북은 물론, 100번째 글을 기념한 작가님도 몇 분이나 있다. 나는 그런 대화나 글이나 작가님을 향한 축하 대열에 대체로 끼어 있었다.

그때마다 잔뜩 부러워했고 그것은 좋은 자극이 되었으며 매번 나의 다짐을 새로이 했다. 많이 쓰지는 못함에도 놓지 않고 갈 수 있는 원동력을 얻었다. 그렇게 오늘까지 근근이 왔다.




왠지 모를 기시감에 거슬러가 보았다. 가 닿은 때는 브런치 합격 소식을 나누던 작년 늦가을이었다. 가을 한가운데서 우리는 만났고 한 달여의 프로젝트 끝에 브런치 작가에 속속 입문하였다. 약 2백 명이 들어앉은 대형 단톡방에서 첫 합격자가 나온 순간을 기억한다. 우리 모두는 부러움과 축하를 동시에 표하는 한편 '우리도 될 수 있을 거야', '버스에서 내리지만 않으면 된다고 했어' 하며 서로를 응원했다. 그때 그 응원은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서로에게 서스럼없이 나누던 그 때의 온기와 에너지는 놀랍게도 여전했다. 1년 가까이의 시간과 경험이 더해졌으니 여유는 덤이겠다. 원석이 발굴된 다음에는 스스로 갈고닦아 빛을 내야 한다. 브런치프로젝트로 꺼내어진 후 지금까지 계속해서 글을 쓰며 눈부시게 성장하고 있는 동지 작가님들을 본다. 저 앞에서 멋지게 이끌어주는 그들을 계속 주시하며(그들이 우리를 이끌려고 하는 건 아니지만 나는 계속 줄줄이 이끌려가고 싶다) 떨어져 나가지 않고 이들 안에 계속 비비고 있고 싶다. 아직은 잘 붙어 있는 것 같아 새삼 안도한다.


"축하해, 문박사~ 돈 주나?" 

유튜브랑 헷갈리나. 개그와 아쉬움을 동시에 선물한 남편 사마씨가 축하 치킨을 주문했다. 그 사이에도 8천, 9천 돌파 알람은 이어졌고, 딸아이는 치킨을 뜯으며 "오, 엄마 이제 유명 인사네!" 하며 엄마를 추켜세웠다. 과연 조회수와 좋아요에 예민한 세대다. 나는 80년대 학부모 세대라서인지 뭔지, 한 번 놀란 다음부터는 이제 조회수보다 다른 걸로 뭉클해하고 웃고 있다. 바로 여기, 단톡방 대화창을 캡처해 박제한다.






아까, 나를 안아주며 나는 내게 무엇을 말해주었는가. 친절하고 따뜻하게,를 주문하는 바람에 오열하게 한 나를 향한 소리는 이랬다.

"박사야. 힘들지. 내 길을 찾고 향하고 싶은데, 박차고 나아가지 못하는 자신이 답답하지. 그래. 다 알고 있어." 하지만 놓지 않고 하다 보면 뿌옇던 앞이 또렷하게 보일 날이 올 거야.


꿈꾸는 길이 명확하게 보이지 않고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지만 지지부진한 것만 같은 날들이었다. 그런데 희한하게 오늘, 우연히 이런 명상을 하게 되었고 나의 고민을 정확히 인지하고 안아주었다. 그러고 나서 맞은 기쁨. 명상 덕이라 연결짓는 것은 무리겠으나 극과 극을 달리는 상황 덕에 극적으로 기분 좋긴 하다.




에디터 픽이라는 게 어떤 기준인지 알지 못한다. 또한 거기에 올라왔다고 다 잘 쓴 글이고 독자들이 모두 클릭하는 것도, 만족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어쩌면 그저 제목의 힘일 수도 있고 있고 또 무언가 다른 요소가 작용했을 수도 있다. 내 글이 좋아서, 라고 자신할 수 없으며 어쩌면 운일 수도 있다는 거다. 하지만 우야든동 글을 썼기 때문에 생긴 일 아닌가. 행운이 따랐고, 이 기분 좋은 기운에 힘을 내어 더 잘 쓰고 싶어졌으니 나는 분명히 성장할 것이리라. (이은경 선생님이 '글은요, 쓰면 늘어요.'라고 하셨으니까 말이다.)





뭔지도 모르고 나의 멘토가 뭘 한다기에 덕질하듯 얼른 등록해 버리고는 여기까지 이끌려온 대책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기왕 이렇게 된 거 꿈꾸어 보련다. 그녀가 쉬지 않고 책을 내고 지금도 소설을 쓰며 끊임없이 꿈꾸는 이상(그 소설을 영화화하고 주연 배우로 현빈을 캐스팅하는 성덕의 꿈을 꾸고 있다고 추측되는 바이다), 나 또한 나대로 계속 나아가 성덕이 되는 꿈을 꾸어 본다.


(동지 작가님들이 함께인 성덕 기념행사를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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