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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들 Jul 05. 2023

어쩌다 흘러든 이곳에서

글을 써야 했다.

브런치 발행도 해야 하고, 6월에 이어 7월에 다시 도전하는 챌린지도 인증해야 하고, 어제 마음먹은 디냅프로그램 관련 글도 쓰고 싶고. 재미있게 읽은 책 독서기록도 남겨야 하고. 이뿐이 아니다. 7월부터 하기로 마음먹은 맘스다이어리도 기록해야 하잖아. 아, 그것도 있잖아. 괌 여행과, 페스타 여행 기록. 휴. 그건 수리 보낸 노트북 오면 하기로 하자.


육아휴직을 연장하여 1년이 새로이 열렸다. 다시 말하면 이제 1년이 남은 것이다. 오직 일 년. 숨 쉬면 코털이 살랑, 하는 그 찰나의 시간 정도라는 것을 이미 겪었다. 어떻게든 일 년 안에 결판를 봐야 한다는 생각이 압박감으로 다가온다. 그런 모양이다. 이 중압갑을 나도 어쩌지 못하겠다.

기록에 대한 욕심, 미련, 바람. 그런데 원하는 만큼 잘 해내지 못하는 데 따른 아쉬움과 답답함.




그런 마음만 가진 채 며칠을 보낸 끝에, 오랜만에 나섰다. 집에 있어 꼬락서니가 안된다는 것은 내가 알고 내 집의 공기가 안다. 집의 가구와 온갖 물건들이 그래 너는 좀 나서라, 하고 종용하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눈치 보는 기분으로 얼른 씻고 이른 점심을 집밥으로 간단히 해결했다. 연체되어 있는 책을 반납하기도 해야 했기에 시립도서관으로 향했다. 현관에 설치된 무인 책반납기에 반납을 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 어럽쇼. 열람실이 텅 비어있다. 닫힌 유리문에 붙은 안내장이 그제야 눈에 들어온다.

' 7.1~10.31 리모델링 공사로 휴관합니다.'


어쩐지. 지금 서 있는 이 자리까지 온 길과 시간이 되감기 된다. 그랬지, 도서관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길목이 막혀있었다. 작은 표지판이 있었지만 연신 옆을 지나는 다른 차들을 신경 쓰느라 자세히 읽지 못했다. 그러고 옆 건물 주차장에 꾸역꾸역 주차를 하고 조금 걸어 도서관으로 들어오는데, 청소하시는 분들이 분주하게 청소를 하고 계셨고 전체적으로 어수선했다. 무인반납기에 책을 반납하던 현관에도 분명 휴관 안내가 붙어 있을 것이었다. 반납 후 현관에서 잠시 멈추긴 했었는데 그저 이번 달 도서관 프로그램을 훑었을 뿐이었다.

참. 나란 인간이 그렇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을 것도 뻔하지) 관심 없는 것에는 본능적으로 흐린 눈을 하고 지나친다. 나중에야 아차, 하고는 아이 또 그랬네, 머리를 맞으면서도 고쳐지지가 않는다. (사실은 고치려는 별 노력도 하지 않았음을 인정한다.)


나는 왜 이 취약점을 개선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가, 잠깐 생각해 보았다. 금방 잊어버리기 때문인 것 같다. 뭐 이제 알았으니 됐...




그래 이제 알았으니 10월까지 갈 다른 곳을 찾아볼까? 하고 나섰다. 아무래도 긍정적이고 전환이 빠른 덕분인가 한다. (그러고 보니 이것 '때문에' 그걸 못 고치는 게 아니라 '덕분'이라고 하고야 마 대책 없는 긍정주의. 풀썩. 웃어 말아~)



다행히 얼른 떠오르는 대체지가 있다. 내가 사는 이 작은 동네에 도서관이 여럿 있지 않지만 작년인지 재작년에 도서관이 새로 생겼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다만 집에서 특히 거리가 가까운 것도 아닌 데다 옛날꽃날부터 다니던 익숙한 그곳으로만 걸음이 향해지곤 했던 것이다. 머리로 궁금해하기만 하던 그곳을 이런 게으른 이유로 오늘에야 오게 되었다.




지금 나는 천 원짜리 따끈한 아메리카노를 옆에 놓고 글을 쓴다.


입구의 층별 안내를 살펴본 후 내쳐 3층까지 올라왔다. 내부 계단으로 이어진 3, 4층은 어린이 열람실과 일반 열람실인데 일 남짓한 역사의 새 도서관이라, 깨끗하고 쾌적하고 책도 보기 좋게 그리고 감각 있게 진열되어 있다. 천천히 구경하며 진열된 책과 도서관 내 구조를 익혔다. 평일이라 이용 중인 사람들이 띄엄띄엄 있는 정도라 한산하고 조용하다. 한쪽에 작은 카페가 있는데 메뉴는 커피 두 종류로 단출했다. 도서관 카페라는 곳의 메뉴 구성이 간단해 무엇 때문인지 마음이 편하다('왜때문일까'). 사시사철 뜨거운 아메리카노만 마시는 내가 주문한 그것의 가격은 천 원. 가방을 뒤적여 지폐 천 원을 내밀었더니 카드만 받는단다. 오히려 땡큐다.


대나무컵을 제공한다는 안내 문구를 고 있는데 금세 커피가 나왔다. 'NO TREE'라고 쓰인 친환경 재료의 컵을 받아 드는 그 시점은, 이 도서관에 마음이 화알짝 열림어 정점을 찍는 순간이었다.


아. 기호가 이리도 확실한 나여.

집을 나설 때만 해도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 이렇게 앉아 천 원의 행복이라며 헤벌쭉 글을 쓰고 있는 나여.


이쯤 되니 매정한 기운 뿜뿜 내뿜어준 (나를 '너무' 잘 아는) 내 집 가구들과 물건들에 고마움마저 든다. 아, 어떻게 또 이번 달에 딱 리모델링을 시작한 정겨운 나의 시립도서관에도 감사.


익숙함에서 벗어났을 때 비로소 새로운 것에 눈을 뜰 기회를 얻는 삶의 지혜를, 자꾸 잊게 되는 이 진리를 '덕분에' 다시금 깨달았으니 말이다.


앞으로도 자꾸 날 떠 내밀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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