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 도서관으로 출근하지만 월요일처럼 도서관 휴관일에는 집에서 작업을 하거나 카페로 향한다. 워낙 도서관을 좋아하지만 때로는 환경에 변화를 주는 일이 머리와 마음을 환기하기도 한다. 무급 휴직 중인 처지라 내킬 때마다 그럴 수는 없어도 자신에 보상 차원에서 더러 이용한다.
오늘은 격려 차원에서 왔다. 하하하.
이곳 소도시에는 대형 카페가 많지 않지만 그래도 프랜차이즈 매장을 선호하는 편이다. 대개는 집 근처 커피숍으로 간다. 겨울이건 한 여름이건 뜨거운 아메리카노만 마시는 사람으로서 그 회사(!) 커피가 맛있기 때문이 가장 큰 이유이고, 둘째는 널찍하고 붐비지 않아 음악 소리에만 잘 맞추면 방귀를 자유롭게 뀔 수 있다는 것. 셋째는 둘째 이유와 마찬가지의 공간 조건 덕분에 자리 순환에 대한 걱정을 내가 할 일이 없이 편하게 머무를 수 있는 점이다.
오늘 온 곳은 최근 발견한 카페다.
단골 카페와 같은 프랜차이즈의 다른 동네 지점이다. 그곳과는 달리 2층 건물이다. 1층에서 주문을 하고 2층으로 올라와 작업한다. 사장님과 분리된 공간이라는 점과 1~2인용 테이블이 많은 덕분으로 특히 카공족들이 많이 보인다. 만학도의 기분으로 그 속에 앉아 있다.
다 좋다.
'다 좋은데,' 이 말이 나오는 걸 보니 다 좋지 않다는 거다. 누구에겐 사소한데 내게는 사소하지 않았다. '왜, 어떤 치명타기에 '다 좋은데' 다 좋지만은 않은지' 알게 된 것은 작업에 들어간 지 오래지 않았을 때였다.
먼저 반응한 것은 역시 민감한 나의 코였다.
입술을 한껏 모은 채 모니터를 노려보며 타닥탁탁 글을 써 내려가고 있을 때였다. 솔솔 담배 냄새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둘러보지 않아도 내 코는 흡연실의 위치를 알려주고 있었다. 정확히 그쪽으로부터 흘러왔다. 그래도 예민한 나의 개코가 킁킁거리고 말 정도였다. 그저, 흡연실로 바로 통하는 문이 거기 있구나, 2층 내부에는 통풍이 잘 안 되는구나,라고 생각하고 잊었다.
대각선 뒤쪽 방향 자리로 레깅스 차림의 아주머니들 네댓 명이 우르르 들어왔다. 그들의 수다는 존재감이 확실하여서 처음에는 나도 모르는 문득문득, 합석이라도 한 듯 귀를 기울이기도 했더랬다.
환경에 금세 익숙해진 채 다시 집중모드로 들어간 지 얼마 지났을까. 이번엔 조금 달랐다.
담배 냄새가 콧속을 찌르듯 가득 들어왔다. 담배를 내가 피운다면 이런 맛일까. 강제 간접흡연으로 속이 메슥거린다. 모니터에서 눈이 떼졌다. 그러고 보니 익숙해진 그녀들의 수다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조용한데?(조용하니 불안한데?). 잠시 후 흡연실 문이 열린 듯 개방감과 함께 시끌벅적 재등장한 그녀들. 두둥. 진하디 진한 담배 냄새를 대동한 채였다. 당연히 비흡연 구역인 실내가 흡연실이 된 것마냥 매운 냄새는 진동했으며, 눈에 보이지 않으나 연기로 자욱한 환각을 느꼈다. 아... 쉣.
담배 냄새라면 질색팔색이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아빠를 비롯해서 모두 같이 살았던 할아버지, 상할아버지, 그 외 내가 본 남자 어른들은 은 거의 담배를 피웠다. 아빠나 할아버지가 집 안에서 담배를 피운 것이 아니었는데도, 어린 나는 옷에 남아있는 담배냄새조차도 싫어했다. 실내 흡연 금지가 정착된 것이 그리 오래된 역사도 아니다. 학창 시절까지도 오락실이나 식당 같은 곳에 담배 연기로 온통 부옇던 기억이 어렴풋하다.(회상에도 냄새가 묻어 있다니, 놀랍다)
직장생활을 할 때, 특히 신입 때만 해도 여전히 흡연가인 상사들이 많았는데, 그들의 책상에 잔뜩 쌓여있던 종이컵이 떠오른다. 커피를 담았던 종이컵들이다. 어르신들도 예사로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요즘과 달리, 당시는 직장에서도 대부분 믹스커피나 달달한 자판기 커피였다. 연관성이 있는지 모르지만 내가 겪을 상사들 중 많은 사람이 흡연가이면서 동시에 믹스커피 애호가인 경우가 많았다. 그들이 뭘 묻거나 지시를 하느라 그들의 책상 옆으로 호출을 하면, 나는 신입 특유의 군기로 신속하면서도 다소 헐레벌떡인 모양으로 달려가게 마련이었고, 그 바람에 무방비로 겪게 되곤 했다. 희한하게 조합된 입냄새를 말이다. 그들에게는 특유의 입냄새가 있었다. 나쁜 이들은 아니었다. 입냄새가 곧 그들의 인격을 말하는 건 아님을 알고 있었기에, 신입은 눈으로는 책상 위 차곡차곡 쌓인 종이컵들을 보며 귀로는 지시를 들으며 머리로 생각했다. 담배와 믹스커피가 섞이면 이런 썩은 내가 나는구나.
명절을 앞두고나 큰 규모의 지역 행사를 앞두고, 혹은 새해를 앞두고 등등 다양한 이유로 직장에서 플로깅을 종종 한다. 쓰레기봉투와 집게를 들고 거리로 나섰을 때 가장 개수도 많고 성가신 쓰레기가 뭐니 뭐니 해도 담배꽁초다. 여기저기 참 없는 구석도 없이 버려져있는 담배꽁초를 줍다 보면 욕이 안 나오는 게 이상할 지경이다. 죄 없는 담배꽁초를 욕하는 건 아니다. 뭐. 그렇게 되었다.
스물 중반에 첫 연애를 하게 된 상대는 골초는 아니었지만, 술 한 잔 걸치면 술집 밖에서 다른 남자들과 삼삼오오 둘러 피우곤 했다. 나를 좋아한 사람 중에 나도 좋았던 유일하고 처음인 남자였다. (오랜 짝사랑의 역사처럼 내가 일방적으로 너무 좋아한 상대와의 연애였다면 그렇 수 있었을까. 확신할 수 없다.)
그에게 말했다.
"나는 담배 피우는 사람 안 만나."
연애를 막 시작했을 때였다. 구 남친은 그날로 담배를 끊었다. 그리고 4년 후 결혼했다.
흡연가들은 말한다. 담배 끊은 놈, 아니 사람과는 상종을 말아라. 그만큼 끊기 어렵다는 뜻이겠다. '노담연애' 선언은 수단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구남친 현남편은 금연으로 나에 대한 사랑도 보여주었으며 마음먹으면 해내는 사람이라는 신뢰까지 준 건 분명하다.
나는 담배 피우는 사람이 안 멋있다.
홍콩 누아르 영화가 유행하던 시절 남자 주인공들이 담배 피우는 모습이 영화에 단골 장면으로 등장했었다. 그때였는지 모르겠다. 남자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멋있다고 착각, 아니 각인된 것이. 재차 말하지만 나는 하나도 멋있지 않다. 몇 년 전에 <인간중독>이라는 영화를 보러 갔었다. 좋아하는 송승헌 배우가 주연인 이유 하나 때문이다. 그 영화는 다른 화제성으로 유명해졌지만 나는 송승헌 배우가 영화 내내 담배를 피워'대'는 통에 극장을 나가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 작품을 이야기하는데 그렇게나 많은 비중의 흡연 장면이 필요했던 걸까.
그 배우가 멋있고 좋은 거지, 담배 피우는 모습만큼은 아니다. 담배 피우는 사람들을 보며 드는 생각은, '처량하다'이다. 왜인지 안쓰러워 보이고, 옷에서는 텁텁한 담배 냄새가 날 것 같고, 자세는 구부정해 고달파보인다. 담배 피우는 사람에 대한 감정은 남녀 모두에게 그러하다.
애정하는 작가가 흡연가라는 사실을 문득 떠올린다. 다작하는 그녀는 여러 작품들에서 자신이 흡연가임을 밝힌다. 애독자인 나는 그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희한하다? 영특하고 섹시하고 앙증맞고 깐깐해 보이는 그녀에게서 담배 냄새를 연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시공간을 뛰어넘어 상상만으로도 그걸 맡아버리는 능력자인데. 그러고 보니 정말 그러네.
이거 찐사랑인가?
담배는 기호식품이라고 한다. 남에게 폐만 되지 않는다면 자신의 건강이야 본인 것이니 뭐라 하겠는가.
그러나 많은 경우 그들의 의도와 관계없이 폐가 되기도 하는 게 사실이다. 아파트 관리실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실내 흡연을 자제하라는 안내 방송을 한다. 길을 걸으며 담배를 피우는 사람과 동선이 겹치는 경우 숨을 참고 빠르게 지나쳐야 하고, 특히 아이와 함께일 경우 손에 쥔 담배와 그 연기는 더욱 위협적이다. 비흡연자를 위한 별도의 흡연실이 마련된 카페에서조차, 그 비흡연자는 꼼짝없이 간접흡연에 시달린다.
흡연가들 전부가 냄새도 연기도 없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 한 현재 내게 있어 담배는 '노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