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한 작가님의 글이 화제에 올랐다. 다음 메인에 뜬 것이다. 다들 버선발로 달려 나와 이 경사를 공유하고 축하했다. 한편으로는분노와 걱정을 더했다.
축하와 분노가 어찌 공존하느냐.
일단 분노는 해당 글의 '내용'에서 기인한 것이다. 이 글은 집안사를 다루고 있는데, 주요 등장인물이 한마디로 분노 유발자다. 그 인물의 믿기지 않는 행태와 에피소드에 우리는, 독자로서 그리고 주변에 잠재된 '그런 인간'의 주변인으로서 성토와 탄식을 쏟아냈다.
그렇다면 걱정은 왜? 믿을 수 없으나 믿어야 하는 '실화'를 이토록 매력적으로 다루어 메인으로 올린 작가의 필명이 무려 실명이기 때문이었다. 실화에 실명. 참 진솔한 작가가 아닐 수 없다.(나도 성을 쓰고 있으니 반쯤 진솔한 사람이라 묻어가 본다.)
'동기 사랑 나라 사랑'이라는 성어가 있지 않나.
우리 브런치 동기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걱정과 우려를 보냈다. 걱정과 우려는 머지않아 재촉으로 바뀌었고, 대체할 필명을 공모라도 하듯 채팅창에 올리기 작했다. 누가 작가들 단톡방 아니랄까 봐. 내용과 실명으로 얼마든지 '가늠당할' 수 있는 당사자는 정작 가만있는데 나머지 작가들이 난리였다. 고백하자면 나 역시 이것저것 떠올려 보았더랬다. <남의 필명 자체 공모>에 재기 넘치는 후보들이 속속들이 출품되는 현장을 보면서 나의 아이디어는 내부 검열을 통해 조용히 넣어두었다.
특히 실명과 연결시키면서도 실소를 자아내는 필명이 제안되었다.(탐났다.) 그러던 중 우리의 '실명 작가님'은, 고심하고 결정 내린 필명을 공개했다. '나의 쓸모'. 인상적으로 본 영화의 대사에서 따왔다는 설명이었다. 정한 이유와 필명 둘 다, 정말이지 근사했다. 어떤 작가님은 '쓸모'의 '쓸'이 글을 '쓴다'는 의미도 있다는 멋진 해석을 덧입혔다.
나의 쓸모.
하던 걸 손에 든 채 멍해졌다. 나의 쓸모는 무엇일까. 나는 쓸모 있는 사람인가? 에서 시작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렇게 이어졌다.
오늘 단톡방의 한 주제였던 '필명'에 대하여.
문박사.
박사의 정의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첫 번째로 '대학원의 박사 과정을 마치고 규정된 절차를 밟은 사람에게 수여하는 학위'라고 나와있다. 그렇다. 나와 무관하다. 무관하다는 말은 , 내게는 어떤 분야의 학위도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는 뜻이다.
두 번째 정의로, '어떤 일에 정통하거나 숙달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되어있다.
교실에서도 쉬는 시간이나 야자시간마다 그림을 그리고 아이돌 오빠들 얼굴도 부탁만 하면 슥슥 뚝딱뚝딱 그려내는 친구가 있었다. 우리는 그녀를 '그림 박사', '그림 천재'라고 불렀다. 직장에서도 유독 엑셀 프로그램을 잘 다루는 직원을 일컬어 "성하 씨는 엑셀 박사야~"라고 한다. 주부 9단에게는 '살림 박사'라고 한다. 그들에게 학위가 있어서가 박사가 아니다. 아이큐가 높아서 천재가 아니다. 이토록 정감 가는 정의로서의 박사라면, 비록 지금의 나는 '해당 없음'이지만 미래에는 해당 있고 싶다.
호기심과 관심으로 치면 문어발 못지 않을 거다.
하고 싶은 일이 늘 있었다. 실천력도 좋은 편이라 마음먹으면 일단 시작한다. 독학으로 혼자 하든 관련 학원을 등록하든 뛰어든다. 화르르 불타오르기 때문에 빠르게 익히는 것은 장점이겠다. 학원에서 배우는 경우 선생님에게 칭찬도 곧잘 받는 편이다. 어쩌면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아는 걸까. 내가 하고 싶고 재밌게 배울 수 있는 것에 안테나를 세우고 찾아다녔다. 그리하여 실제로 대부분은 재미나게 했다. 물론 그렇지 못하고 시행착오를 겪은 일도 많지만.
운동만 해도 그간 한 종류를 꼽아보니 참 다양도 하다. 조깅, 등산, 수영, 스노보드, 사이클, 재즈댄스, 벨리댄스, 폴댄스, 스포츠댄스, 방송댄스. 요가, 필라테스. 예술 쪽이라면 그림도 그려'봤'고 악기도 배우'봤'다. 일 년 전부터는 피아노를 다시 치면서도 한편 계획한다. 언젠가 기타도 배워야지. 첼로도...
한국인들이 평생 새해 목표 1순위로 꼽는다는 외국어 공부? 빠질 수 없다. 한때 일본어를 배워 여행을 가겠다고 책을 사서 공부를 했었고(일본여행에 일본어가 필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영어 공부는 말해 뭐 해. 나도 토종 한국인. 평생 영어 공부를 했다. 회화 학원도 오래 다녔고, 대학 시절에는 토익공부에 매진했으며, 취업 준비를 위해 취업 맞춤 영어공부를 했다. 직장 생활하면서는 전화영어를 십 년 넘게 이어가며 사내 영어동아리 활동도 했으며, 틈틈이 미드도 보고, 원서 읽기도 깔짝거렸다. 지금은 일 년여 째 영어 낭독 중이다.
취미 부자. 오롯이 취업 준비에 매달린 20대 초중반의 4년을 제외하고는 본업 외의 취미가 늘 있었다. 어렵게 합격해서 얻은 직장은 '일반 행정' 업무라 전문성을 키운다던지 흥미를 붙이지 못했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 적극적으로 딴짓을 찾았는지 모르겠디. 자꾸자꾸 스스로 무언가를 찾아서 배우고 즐겼다. 물론 그것들을 할 때 행복하고 즐거웠다. 그것은 부인할 수 없고 내 인생의 원동력이었다는 것도 안다.
문제는, 이것저것 발만 댔지, "나 이거 잘하는데."하며 내놓을 만한 게 없다는 것이었다. 대외적으로 보여주기 위함보다는 내 자신에게 남은 것 말이다. 매번 들끓어서 시작했는데 끝을 볼 때까지 해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무난하고 어중간한 사람. 사회에서의 평도 그럭저럭 무난한 사람, 어디서든 무엇이든 그저 표준에서 벗어나지 않는 사람. 눈에 띄고 싶지 않기도 하지만 정말로 눈에 띄지 않는 사람.
마흔 초입에 서 있다.
종종 이 자리에 멈추어, 가끔 뒤를 한 번 보고, 현재 나를 들여다 보고, 그 다음 앞을 그려보곤 한다.
이제는 발만 담그는 데서 그치는 대신, 나를 어떤 것에 푹 담그고 잠수하고 유영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김미경 작가가 말했다. 마흔은 인생에서 오전이라고.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부리는 한편, 집중력을 발휘하여 할 일을 해내기에 거뜬한 시간대가 아니던가.
차곡차곡, 정성 들여 나의 정체성을 만들어 가고 싶다. 찬찬하게 깊어지다보면 점점 나의 필명에 어울리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