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들 Jul 20. 2023

나의 목소리가 들려

낭독이야기(2)


"으히, 으히히."

"오, 잘하는데? 엄마 지금 깜짝 놀랐어~"     



그래, 깜짝 놀랐다. 내 목소리에.

아까 찍은 영상을 확인하며 아이들에게 폭 빠져있는데 끼어든 불청객. 나의 목소리다.   

   

일상을 기록하는 일을 다시 시작한 요즘, 특히 아이들의 반짝이는 순간을 잽싸게 포착하는 일이 내 부지런의 절반을 차지한다. 이때 비록 아이들과 엄마 사이에 카메라가 있긴 하지만 아이들은 무엇을 하든 늘 엄마에게 말하고 싶고 보여주고 싶어 안달한다. 나 역시 그에 반응하기를 참을 수 없다. 내 목소리가 같이 들어가겠구나 의식될 때면 최대한 말 대신 표정으로만 혹은 손으로 대답하기도 한다. 허나 오래갈 리 없다. 결국 웃음을 터뜨리거나 응, 그래그래, 로 시작하여 영상의 지분을 차지하고 만다.     



목소리에서 표정이 보인다. 아이들 영상 속 내 목소리에서, 눈에는 주름을 가득 짓고 입가는 가로로 헤 벌린 얼굴이 보인다. 아이들을 담는 신난 엄마로서의 나를 나는 좋아한다.

그러나 녹음된 음성이라면, 다른 이야기가 된다.

말하는 동시에 들리는, 그러니까 내가 아는 내 목소리와 너무나 다른 데서 오는 이질감과 어색함이 영 불편했다. 게다가 그 '다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 나머지 ‘틀림’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비음이 많이 섞인, 차분하지도 똑똑해 보이지도 않는 목소리가 못나 보였다. 내 것이라는 것을 부정하고 싶었다. 마치 목소리가 나인 듯, 내가 저런 사람인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이렇게 별로인 목소리로 다른 사람들은 다 듣고 알고 있다고?  



                  



낭독이야기(1)

https://brunch.co.kr/@msh7682/17  


일 년 전 영어 낭독이라는 것을 시작하면서 부닥친 장벽은 따로 있었다. 굳은 혀와 애매한 영어 실력은 둘째, 셋째 문제였다. 웬걸. 녹음된 내 목소리를 듣는 것이 더 큰 장벽이었다.   

  



낭독 연습을 충분히 한 후 마음의 준비가 되면, 마이크를 꽂고 버튼을 눌러 녹음을 시작한다. 혀가 꼬이고 버벅거린다. 어떤 단어나 구절은 나를 붙들고 안 놓아주기도 한다. 멈추고 그 부분 혹은 해당 단락부터 다시 간다, 한참이 걸려 끝까지 마치면 처음부터 들어본다. 으...! 영 매끈하지가 않을뿐더러, 끊은 부분마다 공기의 흐름이 바뀐 것까지 예민하게 귀에 들어온다. 처음부터 다시 간다. 이번에는 걸리는 부분이 있으면 걸린 지점부터가 아닌 맨 앞으로 돌아간다. 한 큐에 가려는 시도다. 집중할 수밖에 없다. 그 덕에 틀리는 횟수가 점점 준다. 다시 들어본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고 나서, 만족이 있을 수 없지만 ‘이만하면 됐다’ 싶을 때(아닌가, 너무 지쳤을 때?) 마이크를 뺀다.

편집 어플을 열고 교재 표지와 음원을 끝어 오고 오늘 주제의 제목을 쓰면서 하나의 영상으로 만든다. 함께 낭독하는 도전자들의 피드를 보면, 분명 같은 주제인데 자신의 개성이 드러나는 게 흥미롭다. 나 역시 하나의 작품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사진을 골라 넣고, 글자 색상이나 폰트를 선택한다.


내 것을 제일 많이 보는 사람은 나니까, 내가 보기 좋게 편집한다. 마찬가지로 ‘내 것 듣고 내가 좋으려고’ 이리도 심혈을 기울여 낭독하고 녹음하는 나를 본다.         

                





애초에 이 챌린지를 하는 이유가 최종적으로 영어 실력을 키우고 싶은 거지, 단순히 읽고 녹음하는 게 다가 아니렷다. 그러니 영어 본문을 내용과 표현, 문법을 파악한 후 원어민의 음원을 들며 낭독하는 건 기본이요, 여기에 더하여 ‘내 낭독을 반복해서 듣는 것이 낭독만큼 중요하다고 챌린지를 이끄는 선생님은 강조했다.


이 챌린지의 중요한 미션은 인증이다. SNS에 낭독 영상을 업로드하는 방법으로 미션을 완료했음을 증명하는데, 이는 또한, 접근이 쉬운 SNS의 장점을 이용해 내 낭독을 반복해서 듣게 하려고 마련한 장치인 것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두뇌는 논외로 하고(왜) 성실한 학생이 아니던가.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했다. 싫었지만 굳은 의지로 들으려 애썼다. 그렇게 얼마 지나자 내 낭독이 더 귀에 쏙쏙 들어오는 것을 느끼며 ‘원어민의 음원보다 내 음원이 내 귀에 특화된 재료’라는 선생님의 말을 체감했다. 신기하여라.    



여기에 더하여 더욱 의미 있는 변화가 있었다. 내 녹음본을 듣는 것이 더 이상 거북스럽게 들리지 않는 것이다. 특히 ‘좀 괜찮게 했는데?’ 싶은 날은 일부러 듣고 듣고 또 듣기도 한다. 목소리가 달라진 걸까. 그런데 일상을 찍은 영상 속 예상 못하게 튀어나오는 내 목소리에는 여전히 뜨악한데? 그럼 뭘까. 왠지 덜 싫어진 기분, 왜 그럴까.      


그간의 여정을 반추해 보고 분석한 결론은 이랬다.

반년여를 꾸준히 하면서 발음이나 강세, 청킹 같은 영어낭독 실력이 껑충, 까지는 아니지만 나만이 자각할 정도까지 늘었고, 루틴이 만들어준 자신감이 더해져 한층 단단해졌음을 느꼈다. 즉, 고유의 목소리가 변한 것은 아니나 ‘낭독하는 소리’가 달라진 것이다.       


        




낭독 챌린지를 시작할 당시 인증할 SNS가 필요했었다. ‘인증용’으로 생성한 새 계정에는 가족이나 지인 누구도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타인을 의식할 필요가 없었다. ‘낭친(낭독 친구)’들에게 노출되고 ‘좋아요’로 응원을 주고받기는 하지만, 통상적인 SNS의 그것과는 다른 차원의 시선이다. 오로지 내가 보고 내가 듣는다. 나를 위해 인증하고 기록하고자 하는 마음은 더 열심히 하고 싶어지는 동기가 충분히 되었다.

차곡차곡 쌓이는 매일매일의 노력의 흔적을 허투루 남기기는 싫다는 마음이 든 것이다. 그리고 이런 동기를 가지고 해온 행위의 결과로 나는 조금 앞으로 나아갔다.




타고난 것을 바꾸는 것은 어렵다. 싫든 좋든 내 목소리가 어디 가랴. 그러나 노력과 시간을 들여 낭독이 늘었고, ‘낭독하는 소리’가 좋아지니 자꾸 듣고 싶고, 외면하지 않고 반복해서 들었더니 점점 친해지게 되었다.

그랬다. 익숙해지고 친해진 거였다. 고개 돌리지 않고 마주 보게 된 것. 작은 이 변화를 알아차린 내가, 수줍지만 기특하다. 이 또한 나를 들여다보고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그리하여 주인공은 평생 길고 긴 몸의 일기를 쓰게 된다. 쓰는 동안 그는 어색한 친구와 차차 친해지듯이 스스로에게 적응해 간다.

가장 어려운 우정은 자기 자신과의 우정일지도 모른다. 몸의 감각에 대한 글쓰기는 자신과 사이좋게 지내기 위한 노력 중 하나다.

- 「부지런한 사랑」 중 ‘몸의 일기’, 이슬아     


낭독을 하는 과정은 ‘몸의 일기’를 쓰는 것과 닮은 점이 있었다. 첫째, 매일매일 한다(자주 보아 정드나 보다). 둘째, 아까와 지금, 어제와 오늘을 비교하고 관찰한다. 셋째, 이게 나로구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게 된다. 마지막으로, 그러는 사이 자란다. 뭐든.          


어색한 친구와 힘들게 친해졌으니, 이 어려운 우정을 더욱 공고히 하고 싶어졌다.

그리하여 나는 지금,

시각장애인도서관 낭독봉사자에 응모할 낭독 원고를 연습하고 있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이전 14화 소리 내어 읽어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