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마지막날의 소회
"할머니~!!!!"
"오이야~ 오니라 고생했다야~"
"큰아빠다, 안녕하세요!"
시끌벅적한 인사가 이어진다. 아이들은 오랜만이면서도 편안한 장소가 반가워 몹시 들뜬 기색이다. 속초집(시집) 문을 들어섰을 때, 먼저 와있는 아주버님과 어머님만 우리를 맞이한 게 아니다. 또 다른 그것은 명절의 냄새. 전 부친 기름 냄새, 갈비 삶는 냄새, 장냄새 등 여러 음식 냄새가 이리저리 뒤섞여 있다, 문이 열리는 동시에 이제야 살겠다는 듯 푸! 하고 바삐 새어 나온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반대로 그 명절 냄새 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어머님은 음식에 진심이다. 특히 가족들에게 건강하게 해 먹이는 일에 찐이다. 사마씨가 고등학교 때까지도 치킨을 사 먹어본 적이 없다는 말을 했을 때 나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나는 어릴 때 부모님 월급날에 통닭집 외식하는 게 크나큰 낙이고 추억이었는데! 시댁을 십여 년 겪은 바 시댁에서의 닭요리는 그저 푹~ 삶은 백숙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다만 익숙해진다는 것이 좋아지는 것과 같은 말은 아니더라).
명절은 어떻겠는가. 명절을 치르는 가족이라고는 이제 어머님 아버님과 미혼인 아주버님 그리고 우리 가족 다섯 뿐이니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단출한데, 제사상에 올라가는 음식은 실로 놀랍다. 친척들이 많고 참석율이 놓은 우리 친정보다 더 화려하고 풍족하다. 더 놀라운 것은 이 많은 걸 다 어머님이 준비하신다는 것.
결혼하고 몇 년간의 명절에는 북적북적했다. 남편의 두 '작은 집'에서 작은아버님들과 숙모님들, 그 가족들까지 왔었다. 대가족이 명절을 쇠러 모이는, 전통적이고 흔한 모습이었다. 전날 오후쯤 와서 다 함께 저녁 먹고 티브이보고 한 잔 하며 수다 떨고, 다음 날 차례 지내고 아침 먹고 가까운 바다 구경까지 함께 했다. 그렇게 24시간을 보낸 후 느지막한 시간에야 헤어지곤 했다. 그때는 전이나 부침 종류를 두 숙모님이 번갈아 해서 가져오셨다. 그러다 2~3년쯤 후부터는 점점 뜸해졌다. 좁은 데 같이 자는 게 불편하다며 명절 당일 아침 일찍 왔고(몹시 공감했고 합리적이라 생각했다. 어찌 보면 구성원 중 핏줄보다 '남'이 더 많은 관계들인데 그 많은 남들이 좁은 집에 모여 굳이 한 개의 화장실을 공유하며 하룻밤을 보낼 필요에 대해서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할머님이 돌아가시고 그다음 해부터는 성인이 된 자녀들은 빠지고 어른들만 오셨다. 그 후에는 그마저도 아침에 잠깐 와서 차례만 지내고 가셨다. 그리고 이제는 아무도 안 오신다. 우리끼리다.
친지들의 참여도가 떨어지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연유야 다양하고도 많을 것이다.
사회가 변하고 개인의 가치관이 달라졌다. 가족보다는 개인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 가족은 '마음만 있으면' 언제든 만나고 연락할 수 있는 시대 아닌가. 조상을 기린다는 차례의 의미도 퇴색되고 있는 마당에, 긴 연휴를 '활용'할 수 다른 일들은 수없이 많다.(생각만으로 행복한데 나의 경우 생각만이어서 슬퍼진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살아계시는지 여부가 슬하 형제, 자녀들의 결집에 영향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또한 세월의 흐름에 따른 자연의 섭리이고, 이 모든 상황들로 명절의 규모가 작아지는 방향으로 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스무 명 가까운 친지가 명절을 시끌벅적 보내다 십 년 만에 그 인원이 여덟 명으로 대폭 준 우리 시집은 작은 사회가 반영된 것일 따름이다. 아닌 게 아니라 친척들과 딱히 교류가 많지 않던 자녀들은 부모님을 그저 따라오던 어릴 때를 벗어나고서는 딱히 올 필요성을 못 느끼게 된다. 당장 그 부모인 막내 작은아버님 내외도, 이미 맏이인 우리 아버님과는 다른 세대이다. 그들은 진작에 명절 연휴에 차례에 '참석'하는 대신 그들끼리 여행을 가기 시작했다. 둘째 작은 집도 사정은 비슷하다. 여행을 가지는 않더라도 굳이 여기에 와야 한다고 여기지 않는다. 즉슨, 명절에 오는 것이 즐거움, 기꺼움이 아니라 의무적인 일로 인식하며, 그 의무 또한 별 힘이 없어서 해도 안 해도 상관없을 뿐이다.
당연하고도 자연스럽다고 여긴다. 내 조상을 위한 것도 아닌 차례상에 애먼 소수의 사람들이 희생하는 문화를 누가 좋다고 이어갈까. 함께 즐기지 못할 거라면 진작에 없어졌어야 마땅하다 믿는다.
나의 엄마는 종갓집 맏며느리다. 직장에 다니면서도 일 년에 열 번도 넘는 제사를 지내고 더하여 두 번의 명절을 치르며 고생하는 엄마와 할머니를 보며 자랐다. 한편 수많은 '그날'들마다, 어른 남자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여자들이 갖가지 제수음식을 넓은 상에 꽉 차도록 차린 음식을 앞에 두고 절하고 풍족히 먹고 마시는 일뿐인 것도 지켜보아왔다. 그 결과 어린 나이부터도 그 문화를 단 한 번도 당연히 여긴 적이 없었다. 유독 명절에 비합리적으로 드러나는 남녀의 역할에 대해 거부감이 컸다. 나의 엄마는 시댁이나 그 문화에 대해 불평의 말을 한 적이 없었지만, 할머니가 연로해지시고 엄마가 주도권을 잡은 후부터는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우리 친정 역시 청년이 된 자녀 세대의 결혼율은 낮고 그에 따라 평균 연령이 높아지게 되었다. 달라진 상황을 인지하고 인정한 엄마는 품이 많이 가는 전이나 떡 같은 음식은 전문점에서 소량 사서 쓰기 시작했다. 고기나 생선 종류도 예전만큼 이것저것 하지 않고 준비와 관리가 편한 재료로 택해 종류를 간소화하였으며, 음식의 양도 줄어든 가족수에 맞추어 딱 적당히 했다. 남는 음식을 당연히 싸주었던 문화도 없앴다. 가족수가 많고 먹을 게 부족했던 시절에야 남은 명절 음식을 싸주고 바리바리 들고 가는 게 미덕이었지만(엄밀히 말하면 남은 음식이 아니라 애초에 여유 있게 준비해 '남긴' 것이리라), 먹을 것이 넘쳐나는 데다 건강을 위해 음식을 관리해 가며 먹는 요즘은 미덕이 아니라 짐이 되기도 한다. 음식 외에도 한밤중에 지내던 제사 시간도 조금씩 점점 당긴 결과 이제는 6시쯤 지내고 바로 저녁을 먹게 되었다.
엄마가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점이다. 제사를 안 지내면 큰일이 나는 줄 아실 할아버지 할머니를 존중하기도 하기에, 변화의 필요성을 느낌에도 모두가 천천히 받아들일 수 있게 시나브로 바꿔간 것이다.
시집의 명절 인원이 대폭 줄었는데 안타깝게도 남은 여덟 명에 나도 포함된다. 필수 요원인가. 꼭 필요한 인원이라기보다 빠질 수 없는 인원이라는 생각이 들자 몹시 씁쓸해졌다. 솔직히 말하자면 두 작은 집이 안 오기 시작하자 먼저 드는 생각은 이거였다.
'좋겠다.'
맏이가 아니어서 좋겠다. 맏이가 아니면 제사를 책임지지 않고 심지어 참석의 무게조차 내려놓을 수 있는 이상한 문화. 반대로 생각하면, 맏이는 또 뭐. 결국 부모를 책임의 대상으로 보게 만드는 이 왜곡된 유교사상에까지 거슬러 갔다. (이 때문에 내가 이런 발칙한 생각을 한 거라고 화살을 돌려본다.)
엄마에게 종종 이런 내 생각을 털어놓는다.
"엄마 아빠가 돌아가시면 나는 지금 같은 제사상 안 차릴 거예요. 그날 오빠랑 만나서 엄마 아빠 얘기하고 우리 얘기하면서 밥 한 끼 먹을 거야."
언젠가 <시선으로부터>라는 책에 대해 엄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한 번에 바꾸기는 어렵지만 엄마는 당신이 근 몇 년 사이에 이 집의 제사 문화에 대해 조금씩 바꾸어온 변화들이 스스로도 놀랍다며, 앞으로는 얼마나 더 빠르게 '좋은 방향으로' 변해갈지 가늠도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니 걱정 말라고, 나에게 말했다.
(엄마가 말하는 좋은 방향으로의 변화가, 그녀의 생각과 기대보다 훨씬 더 빠르게 왔으면 좋겠다.)
필수 요원만 남았어도 빈자리 없이 그득한 차례상을 본다. 그리고 몇 시간 후에는 제사상에 올린만큼은 되어 보이는 음식을 우리 가져가라고 아이스박스가방 몇 개에 나누어 꾹꾹 눌러 담으시는 어머님을 보며, 또 어쩔 수 없이 소극적인 손을 보탠다. 할 말이 많지만 삼킨다. 그게 맞다.
아주버님이 전 부치기를 돕긴 하시지만 어머님은 여전히 음식 전부를 손수 하신다. 전도 여러 가지로 만들고, 송편도 직접 빚으신다. 생선도 종류별로 '생물'로 사서 찌고, 고기도 종류별로 삶고 졸인다. 그 외는 말할 것도 없다. 야속한 점은, 명절음식과 제수음식은 보이는 결과물보다 훠얼씬 손이 많이 가는 것들의 집합체라는 것이다.
몹쓸 며느리일 수 있지만 나는 이 지극한 정성에 적극 가담하지 않는다. 발을 들이지 않으려 애쓴다. 나는 제사를 지내는 것이 싫고, 그렇게 많은 음식을 하는 것이 싫다. 다만 나의 어머님 아버님을 좋아하는 마음으로 토끼 같은 아이들과 빠지지 않고 챙겨 감으로써 그분들을 기쁘게 하고, 어머님이 힘들까 봐 걱정되는 마음으로 그 정도만 거들 뿐이다. "우리 이제 음식 줄여요, 어머님."이라든지 "남은 음식 안 싸주셔도 돼요"라는 말은 못 하고 안 한다. 손을 보태지도 않으니 그건 분명 주제넘는 행동이다. 또한 사마씨 말대로, 음식을 준비하고 자식에게 나누는 일이 어쩌면 그녀의 진심과 즐거움인지도 몰라서이다.
세대가 다르고 살아온 길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를 뿐, 나와 생각이 같지 않다고 원망하거나 탓할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대체로 배울 점이 많은 그녀가 사실 나는 좋다.
그렇기에 바란다.
어머님이 이제는 내키지 않는 일을 단지 관습 때문에 유지하는 게 아니길. 좋아서 하는 것일 지라도 이제 연로해져 떨어지는 체력을 간과하지 않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