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라? 잠깐만. 왔어왔어. 아 지금은... 안되는데...
애먼 데 정신을 집중하느라 뛰는 자세가 흐트러지고 말았어요. 비 오듯 쏟아지던 땀이, 이게 식은땀인가 싶어요.
저요? 지금 러닝머신 위예요.
실은 상반기를 꽉 채워 필라테스를 했어요. 무척 좋은 운동임에 틀림없죠. 속근육을 만드는 운동이라더니 정말 배가 단단해졌음을 느끼거든요. 아? 에이, 뭘 또 배를 보고 그래~ 다 같은 처지끼리~ 아니 변명이 아니라, 근데 이게 뭐 십 일 자 되고 이런 복근이랑은 또 달라요. '속'근육이라니까? 6개월 아니라 더 오래 한다든지 선생님이랑 일대일로 한다면 어떨지 모르죠. 어쨌든 난 여섯 명이 같이 하는 그룹수업으로 6개월 한 거고요. 희한한 게, 수업 때뿐 아니라 평소에도 나도 모르게 아랫배에 힘을 주게 되고, 괄약근을 조이게 되고, 머리를 뒷벽에 붙이듯이 목을 당겨 곧추세우게 되더라니까. 그러니 자세도 좋아지고 코어힘도 단련된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도 들고, 옷 입은 태가 좋아진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뭐 누가 알아본 적이 있는 건 아니고요. 내 기분이 그렇다는 거죠. 호호.
그런데 왜 과거형이냐고요? 참 좋은 운동을 만났다, 이건 평생 해도 좋겠다, 싶었는데. 그냥 좀... 작은 문제가 있었어요. 아유, 몰라요 몰라. 지금은 말하기 그래~
아무튼 6월 말에 수강기간이 끝났는데 '7월에는 아이들 방학이 있지', 하며 재등록을 하지 않았죠. 아닌 게 아니라, 새 마음 새 뜻으로 1월에 시작했을 때 그랬잖아요. 아이들 겨울방학과 겹치는 바람에 내 의욕 같지 않게 시간 맞추어 가는 일이 자유롭지는 않더라고요. 하지만 이번에도 그것 때문이라 하는 건 사실 핑계였다는 걸, 나 자신은 알죠. 방학이 끝나고도 등록하지 않았어요. 그 '작은' 문제는 그리 사소하지 않았던 거예요.
운동을 하던 습관은 있고, 안 하면 내 몸으로 오는 후환이 두려우니 안 할 수는 없어요. (평생 그렇겠지요?)
아파트 단지 내 작게나마 헬스장이 있어요. 러닝머신 네 대, 실내자전거 두 대, 하체용인 것 같은 근력운동기구가 두 대 있고. 아령이 무게별로 있고, 훌라후프 하나 있고요. 규모나 시설이 소박하긴 하지만 나야 뭐 헬스의 헬 자도 모르고 오로지 러닝머신만 탈 줄 아는 사람이니 그만하면 감지덕지죠. 걷기를 워낙 좋아하고 주로 밖에 나가서 걷지만, 너무 덥거나 너무 춥거나 눈이 오거나 비가 오는 날, 이런 궂은 날씨를 피하면서 쾌적하게 운동을(걷기를) 계속할 수 있는 환경이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에요. 그래서 솔찮이 이용하고 있답니다.
일평생을 걷기 외길 인생이었는데, 요즘 혼자 멘토로 삼은 분이 달리기를 시작했어요. 멘토가 하니 우린 또 따라 하고 싶잖아요? 실행력은 좀 타고난 편이에요. '초보 달리기'로 검색해서 기본적인 사항을 간단히 공부한 후 그날로 바로 시작했어요. 초짜가 처음부터 달리면 다리에 무리가 올 수 있다길래(내 무릎은 소중하니까요) 걷다 뛰다 걷다 뛰다를 번갈아가며 했어요. 막상 해보니까 무릎이 문제가 아니라 더 달렸다가 죽을 것 같... 그렇게 '걷뛰'를 하며 달리는 시간을 늘려갔죠.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어요. 또요.
헬스장에 들어오면 간단히 스트레칭을 해서 몸이 놀라지 않게 달래준 후, 일단 빨리 걷기로 10분 동안 몸을 풀어줘요. 몸이 후끈해지면 이제는 달릴 만큼으로 속도를 올려요. 시간이 꽤 늘어 이젠 20분을 내리 달린답니다. 2분에서 시작해 20분까지 내쳐 달린다니, 제가 기특해 죽겠습니다. 그렇게 한창 탄력 받아 땀에 젖은 채 '운동하는 신여성'의 모습에 도취되어 있을 때였어요. 그래요, 꼭 이때예요. 요럴 때 찬물을 끼얹는 일이 생겨요. 아 말 제대로 했네. 찬물 끼얹는 기분 맞아요. 열기 가득한 땀방울이 홀랑 식으며 순식간에 식은땀으로 바뀌거든요. 하지만 땀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낄 새도 없죠.
괄약근을 꽉 조이지 않으면 안 되거든요. 집중력을 읽는 순간 괄약근은 해이해질 것이고, 동시에, 그래요.
발사되고 말 거예요.
이곳 아파트 헬스장은요, 시끌시끌 쿵쿵 강렬한 비트의 음악이 흐르며 운동세포를 일깨우는 여타 유료 헬스장과 달라요. 고요~합니다. 절간이에요. 누군가가 러닝머신에 붙은 작은 티브이를 켜놓기 전에는요. 어르신들은 그 작은 티브이 화면을 보며 러닝머신 위를 걷는 활용법이 보통이고, 다른 기구를 이용하거나 맨몸으로 할 때도 조용히 운동만 할 뿐이에요. 대부분 혼자 오지만 일행이 있어도 여럿이 떠드는 일도 지금껏 본 적이 없어요. 다들 어쩜 그리 점잖으신지! 청장년층은(나는 어디에 들어갈까요. 애매하니 합쳐버립니다. 참고로 낯 뜨겁지만 마흔도 MZ에 속한답니다?) 내가 그러듯 폰과 이어폰을 연결하여 귀에 꽂고 운동하는 경우가 대다수죠.. 밖으로는 아무 소리도 새어 나오지 않는 거예요.
가재눈을 하고 벽 전면 거울을 통해 상황을 살핍니다. 일단 뒤쪽에는 아무도 없고요. 결론적으로 지금 이 헬스장에는 나 말고 두 사람이 더 있을 뿐이네요. 그 소수의 인원이 하필 내 양 옆에 있는 게 문제겠습니다. 왼쪽에 여자, 오른쪽에 남자. 생각해 보니 두 사람은 내가 여기 왔을 때부터 걷고 있었어요. 내가 그 사이에 남은 기구로 들어온 게 맞지만 우리(!) 셋은 왜 하필 딱 붙어 있는 건지 새삼 원망스럽네요. 헬스장 전체 공간에서, 고작 세 사람이, 한쪽에 몰려 서서 운동 중인 모습이, 웃기면서 싫습니다. 지금은요.
자칫 방심해서 혹여나, 내가 불안해하고 있는 그 사건이 실제로 벌어졌다가는, 양 옆의 두 사람이 즉시 러닝머신 작동을 멈추고 다가와 내 양팔을 붙잡고 어디론가 연행해갈 것만 같습니다. 놀란 그 순간에 나는? 궁금합니다. 과연, 허공에 마구 차대는 나의 발차기에 자극되어 시원하게 발사를 하게 될지, 아니면 공포에 사로잡혀 안 그래도 땡땡한 배가 더욱 팽만해질지 말이에요.
이 와중에도 나는 용하게 계속 뛰고 있네요. 중심을 잃지 않기 위한 본능으로 가까스로 공상에서 벗어났죠.
'갈 때 안 됐나?' 속으로 괜히 남의 운동시간의 단축을 종용하고 있습니다.
으윽. 그러는 사이 뱃속은 점점 상황이 좋지 않아요. 방울이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단단해져 갑니다. 저들끼리 아우성을 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
처음부터 이런 건 아녜요. 다들 아시잖아요. 아랫배에 조그만 방울이 퐁 하고 생겨나는 것으로 시작하죠. 혼자 있거나 편한 장소에 있어서 마음껏 내보낼 수 있다면야 뭐가 문제겠어요. 그렇지 않은 때와 장소니 큰일이 되는 거죠. 저는 주로 직장 사무실이나 도서관에서 문제를 겪곤 했어요. 귀여운 방울 정도는 처음에는 뇌에서 모른척합니다. 그러면 일단 물러나는 것 같아요. 잊을 즈음 다시 등장합니다. 이때는 이미 처음의 방울이 아니에요. 새끼를 친 건지? 이제 모른 척할 수는 없어요. 근데, 아유. 이 정도야. 짬이 얼만데! 십오 년 경력과 연륜을 오로지 일하는 능력 키우는 데만 쓴 거면 좀 아깝게요? 다 스킬이 있죠~ 우리 초등 2학년 아들이 뿌듯해하며 말한 표현을 좀 빌릴게요. 그 정도 규모(!)는 이렇게 해결해요. 자, 살살 달래는 게 중요해요. 그러면서 수도꼭지를 아주아주 약하게 틀었다 잠갔다 틀었다 잠갔다(아들, 자랑스럽다) 하면서 소리 내지 않고 조심조심 살짝살짝 방사하는 거죠. 도가 튼 저라면 앉은 자세에서 괄약근 조절만으로, 상체의 미동도 없이 간단히 해결할 수 있죠. 후훗.
아, 냄새요? 사실 그게 변수이긴 한데, 그게 뭐 예상할 수도, 조절할 수도 없는 범위라, 복불복이긴 해요. 우리 인생이 그렇잖아요? 어쨌든 통상적으로는 옆에 상사도, 신규 직원도, 며느리도 모르게 1차로 급한 불을 끈 후 자리를 옮겨 다음 단계를 시원하게 해결하면 될 일이에요.
그런데 말이에요. 그래요. 미처 막을 길 없는 냄새처럼, 인생에서 도대체 무방비인 것들이 많더라고요.
필라테스에서 그랬어요. 휴직 중이라 자유롭게 분출하며 가벼이 살던 나날 가운데 필라테스를 등록했는데, 여럿이 같이 하는 게 무색하게 정말이지 거기도 우리 아파트 헬스장 못지않게 조용합디다. 우아한 클라식 음악은 들릴똥말똥하니 별 도움 안되고요, 잔잔한 선생님 목소리와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하는 소리만 들릴 뿐이죠. 몸을 부위별로 늘리는 동작도 많고 또 내내 복부에 힘을 주고 있어야 하기도 해요. 늘이고 힘주는 동작 모두, 배를 아주 자극하더군요. 고백하건대, 한 시간의 수업시간 동안 다른 이유로 배에 힘을 줄 때가 많았어요... 흑. 가만히 의자에 앉아서 귀신도 모르게 내보낼 때와는 달라서 동작은 다양하고 어려웠고, 참기는 더 힘들었죠. 6개월 후 재등록하지 않은 연유가 되겠습니다.
걸으면서는 괜찮았거든요? 아니 생각해 보니 주로 밖에서 걷긴 했네요. 아, 그러네. 호호호.
근데 뛰는 건 이상하게 러닝머신에서 해야겠더라고요. 그렇게 뛰기를 시작하면서는 헬스장 출입이 잦아지게 된 거예요. 달리는 것은 걷기와는 차원이 다르잖아요. 아 그렇죠. 당연히 칼로리 소모도 크고, 더 땀이 많이 나고, 폐활량도 더... 이런 좋은 점이야 말해 뭐해요. 근데 그게... 몸이 위아래로 요동치고, 장기들도 신나게 상하운동을 하면서, 생각지도 못하게 시작된 거죠. 활발한 장운동.
변의를 느끼는 건 흔한가 보더라고요? 저도 물론 경험 있죠. 근데 그거야 한 번 다녀오면 끝이잖아요? 아무 일 없던 듯이, 아니 오히려 더 가벼이 다시 뛸 수 있죠. 근데 얘는... 달라요. 섬세하게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확실히 방귀는 타이밍이에요. 얘가 두드릴 때 배출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죠. '잠깐만'? 안 통해요. '밖에 나가서 내보내줄게'라던지, '저기 화장실 가서' 하며 암만 빨리, 조심하며 달려가도 기다려주지 않는다구요. 그 사이에 이미 들어가 있죠. 깊숙이, 묵직하게.
이리도 예민하고 성질머리 고약한 걸 아니까. 하필 열심히 뛰는 중에 소식이 오는 게 야속할 뿐이에요. 즉시 러닝머신을 멈추고 달려 나가 봐야 소용없다고요. 쿵쿵, 헉헉거리며 뛰는 와중이니 온 신경을 그곳에 집중해서 소리 없이 배출하는 나의 필살기를 쓰는 건 불가능에 가깝고요. 그러니 목표한 시간까지 참는 쪽을 택하는 거예요. 꾸룩꾸룩? 꾹꾹 꾸욱.
때맞춰 나가지 못한 탓에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며 팽팽해지고 있어요. (쉽사리 지지 않고 여전히 뛰고 있는 나도 참 나다 생각이 들어요.) 이제 오래가지 못할 것 같다는 위기감을 느끼며, 두 사람을 다시 살폈어요.
둘 다 귀에 무얼 꽂지 않았네요. 외부 소리를 잘 들을 수 있는 상황인 거겠죠. 내 오른편의 남자는 느린 속도에 맞춰놓고 눈을 폰에 고정시킨 채 어슬렁어슬렁 걷고 있습니다. 똑똑 여보세요. 여기 왜 오셌에요. 왼쪽 여자는 나와 비슷한 속도로 달리고 있는데, 어머? 지금까지 티브이를 켜놓은 줄 몰랐어요. 소리가 나오긴 하지만 안 들릴 정도로 작게 해 둔 채로요. 거의 화면만 보고 있는 거죠. 세상엔 어쩜 이렇게 배려 가득한 사람들이 많은 거죠? 저 지금 '그래서' 울컥하는 거죠?
제가 볼륨을... 올려드리고 싶어요... 크게.. 우리 셋 다 들릴 만큼 쩌렁쩌렁 말이에요. 오.. 플리즈...
거의 포기하려던 즈음이었어요. 왼쪽 여자가 삑삑삑 버튼을 누르더니 걸음이 느려지면서 러닝머신에서 내려가지 않겠어요? 그러더니 오른쪽 남자 쪽으로 가서 뭐라 뭐라 이야기하더니. 오 지져스! 둘이 같이 신발을 갈아 신고 헬스장을 나갑니다! 위~아더 챔푠~ 마 프래앤~~
맑고 고운 소리로 작동하는 자동잠금장치 소리를 귀 기울여 확인한 다음에야 나의 러닝머신도 걷기에 알맞은 속도로 낮추었어요. 여유 있게 걸으며, 부부로 추측되는 두 사람이 사이좋게 백년해로하기를 빌었고요. 뱃속에서 더 이상 커질 수도 없게 커진, 더 이상 단단해질 수 없이 단단해진 방울방울들이 서서히 진정하는 게 느껴지네요. 얘네도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두드립니다. 응답하라 롸잇 냐우.
다시 혼자 남은 헬스장에서, 몇십 분 동안 참은 만큼이나 열과 성을 다해 응답했어요. 우르릉 쾅쾅 뿡뿡 뽕뽕. 크고 작게 한참을 만끽했죠. 그리곤 다시 달리기 모드로 속도를 높여요. 세상에 얼마나 가뿟한지! 헬스장 지붕을 뚫고 날아갈 수 있을 것만 같네요?
행복이란 이런 거죠.
사진 출처 :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