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흥거리며 혼자 걷고 있었고, 거리와 거리 위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규모가 큰 매장이 시야에 들어온 바람에(눈에 띄지 않을 수 없이 커다래서) 이끌려 들어간 것이었다.
그러한 큰 가게는 사람들의 다양한 취향을 놓칠 틈을 안 주겠다는 듯 가지각색의 수많은 상품들을 심지어 재미나고 멋스럽게도 진열해 놓는다.
하지만 가짓수와 다양함 못지않게 내가 우선순위로 치는 매력은 단연 익명성과 자유로움이다. 그 근사한 것들에 빠져 한참을 머무는 동안에도 나라는 존재를 드러낼 일은 없다. 같은 공간 속 타인의 시선이 내게 머물 일이 없다. 입어보고 써보고 신어보는 등 실컷 구경해도 주인이 점원의 눈치볼 것 없이 빈손으로도 돌아 나올 수 있다. 미안한 내색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구매로 이어지는지 여부와 관계없이(살 수도 있지만 안 살 수는 더 있으니) 쇼핑의 욕구를 채울 수 있는 곳이 그런 매장 아니던가.(아니던가?)
이런 심리의 소비자에게 몹시 우렁차게 방가방가를 던졌다.
킥복싱에서 양팔로 가드를 올림으로써 상대의 잽을 캐치하고 방어할 수 있다. 그럼에도 잽 바로 뒤에 들어오는 뒷손에는 종종 미처 대비하지 못하고 당하기 쉽다.
작정하고서 무엇을 할 때는 어느 정도 경계와 마음의 준비가 수반되는 것과 달리, 대비 없이 들어오는 것에는 아무리 약한 훅일지라도 타격을 입는다. 딱히 필요나 목적 같은 거라고는 없이 입장하다 반강제로 스스로를 인식해버리면서 어쩐지 조금 민망해지고 만다. ‘나만 수줍은’ 등장의 순간은, 물론, 진열된 물건들에 빨려 들어가며 금세 잊는다. 퇴장할 때의 비슷한 상황에서는 한 번 겪어봤다고 또 덜하다.
그런데 어째서 돌아 나오는 뒷맛이 개운하지 않은 걸까.
“어서 오십시오~!” “안녕히 가십시오~!” 여러 명의 점원이 동시에 큰소리로 외치는 인사는, 분명 존재감 없고픈 존재의 드나듦을 일깨울 정도였는데(극 I의 손님은 쓸데없이 부담스러워하고 말았는데)도 불구하고 그 투는 훈련된, 감정 없는(매너리즘은 조금 묻은) 기계음으로 들렸다. 그 바람에 인사의 대상이 누구인가 싶게, 허공에 외치는 듯 느껴졌다. 개운치 않은 뒷맛은 그 간극 때문이었나.
‘아니 그럼 뭐, 십년지기 단골손님 대하듯 하라는 거야 뭐야.’
'언젠 익명이 좋다며.'
‘인사를 해도 지*이야.’
‘교육받은 대로 인사하는 점원은 뭘 잘못?’
‘어우, 꼰대야 뭐야.’
모순은 나인가. 아니 그게... 그곳의 멋과 목적에 어울리지 않는 식의 환영, 그것의 내용과 방식이 하나도 어울리지 않는 데서 오는 어색함이 어색했던 거다.
공공기관에서 민원을 대하는 업무를 했다. ‘진상 민원’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과도한 요구를 하거나 직원을 막 대하는 민원인이 많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사람을 대하는 일이라는 게 참으로 기가 빨리는 일이긴 하다.
이 일이 좋든 아니든 관계없이, 민원인이 진상이든 아니든 무관하게, 직업 정신으로 무장하여 혹은 그저 워낙 오래 한 탓에(‘덕에’라고 할까) 일종의 직업병이 되어 인사를 하곤 한다. 그냥 나온다. 예의를 갖춘 인사를 ‘잘’ 하기도 하지만 영혼 없이 나오기도 한다는 의미다.
손님 입장에서의 경험으로, 행여 내 일터에서의 나의 인사가, 다녀간 민원인에게 같은 느낌이었을지 생각한다. 업무 보고 돌아서는 그들의 뒤를 때때로 개운치 않게 하지는 않았을지. 그들이 원하는 업무를 신속 정확하게 처리하는 것으로 내 할 ‘일’ 다 했다고 털기에는 그 ‘업무’라는 것이 어느 정도 AI로 대체 가능하며 이미 충분하게 대체되고 있는 현실을 안다. AI로 대체되는 일뿐이라면 기계에 다름 없지 않을까.
‘사람이 하는 업무를 하는 사람으로서’라면 사람이 할 수 있는 진심, 감정이라는 행위를 더하고 싶어졌다. 어렵지 않으면서도 모두의 하루를 제법 괜찮게(적어도 '나쁘지 않게'라도) 만들 수 있는 힘이 있는, 인사로 말이다.
추신.
'진심이 없어도 일단 하는 게 낫다'는 글을 언젠가 본 기억이 난다. 물론 저마다 생각이 다를 테지만(많이 다르다) 나라면, 반갑고 고맙고 아쉬운 마음을 표현했을 때 예가 된다는 쪽이다. 허공에 둥둥 뜨는 말뿐이라면, 안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다. 문에 달려 여닫음에 절로 울리는 딸랑이나 바람에 기척하는 풍경이 차라리 정겹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