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하고 로맨틱한, 풋풋하지만 애송이 같지는 않은, 뒤늦게 철든 것 같은 이 목소리는, 틀림없이 저스틴 비버인데. 제목이... 제목이... 아, 안 되겠다. 들리는 가사 하나 잡아서 검색해야겠다. 외국어 영역 듣기평가하듯 귀에 정신집중 해보자. 아니 그런데 가슴 한편에서는 아니란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단다. 뇌 회로를 가열차게 돌려 검색창이 아닌 내 힘으로 기억해 내고야 말겠다는 오기가 동시에 났다.
불현듯 떠오르는, 불과 삼십여 분 전에 겪은 데자뷔 같은 일.
딸아이 피아노 레슨이 있어 태우고 가는 길이었다.
차에서는 종종 영어음성을 틀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말이다.
오늘은 일요일. 쉴 휴 날 일, 휴일에는 엄마표영어 하는 엄마도 조금 풀어지고 싶다 이거다. 마침 눈송이가 한 송이 두 송이 날리기 시작하니 소녀감성 아줌마 센티해지고. 암만 겨울이라 해도 너무하다 싶게 추운 하필 올겨울에 입대해 군 생활 중인 진이 걱정되고, 진 생각하니 우리 탄이들 다 보고 싶고, 볼 수 없으니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 그리하여 오늘은 방탄소년단 노래 리스트를 재생한다(영어 소리 대신 방탄소년단 노래를 트는데 왜 이리 변명이 길어져야 하는가).
한 곡 한 곡 재생될 때마다 그들의 무대가 생생하게 그려지며 그리움에 그만 닭살이 돋는다. 아미인 엄마가 좋아하니 덩달아 저도 좋아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세령이 한참 흥얼흥얼 따라 부르다, 새 곡이 나오자 묻는다.
“엄마, 이거 같이 부른 그룹이 뭐랬죠? 이름이.”
“아, 이거 유니벌스! 그, 영국 밴드 있잖아. 그, 저기, 그...”
하아. 어사무사한데. 밴드 이름이 기억이 왜 안 나지. 운전에 집중하느라 이러는 걸 수도 있어. 자자. 찬찬히 떠올려보자.
아니, 그 보컬 얼굴은 이렇게 또렷할 수가 없다고. 탄이들과 함께한 뮤비도 눈앞에 훤히 그려지고. 아, 전설의 내한 공연도 있잖아. 공연 마치고 여운에 젖은 관객들이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에 한마음 한뜻으로 떼창을 했다는 그 유명한 곡도 알겠는데 말이야. 그니까 그 밴드 이름이 뭐냐. 그 있잖아. 저기 그...
"콜드플레이!"
“아, 그렇지.”
추억의 가족오락관 스피드게임 하듯 혼자 요란한 엄마의 라떼 설명에 공감할 리가 없는 세령이 건조하게 대꾸하고 만다. 퀴즈 하나를 풀어낸 나는 속이 잠깐 시원하다. 해냈쓰!
그런데 곧이어 박차고 들어오는 답답함. 왜지.
사실 '왜지'라고 자문하는 동시에, 그러니까 별로 애쓰지 않고 그 답은 알 수 있다. 이러는 게 하루 이틀 아니니까. 아닌 게 아니라 요즘 부쩍 잦다.
오늘만 해도 조금 전 차 안에서 콜드플레이가 날 시험에 들게 하더니, 이번에는 저스틴 비버가 솜사탕 같은 음성으로 ‘내 노래 제목이 뭐게?’ 하잖아. 아이 레슨 들여보내고 막간을 이용해 글을 좀 써보려 카페에 들어왔건만 예상하지 못한 데에 집중하며 안간힘을 쓰고 있다니. 누나가 저스틴이니 봐준다.
재작년 이맘때인가. 해가 바뀔 즈음인 건 확실하다. 이런 대화를 했으니까.
안 지 오래된 선배들을 사무실 복도에서 마주쳤다.
“어, 문박사 이제 몇이지?”
“올해 서른아홉이에요.”
“벌써! 아직도 애기 같은데.”
“아이구, 마흔 돼 봐. 훅 간다.”
신입 때 만나 알고 지낸 사람들은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딱 처음 그 시절에 머물러있는 것 같다. 서로에 대한 감정이 투영된 꺼풀 한 겹이 내내 씌워진 채 같은 세월을 보낸다. 갓 입사해 내가 막내, 그러니까 말(末)석으로 있을 때 같은 담당자 직위이던 차(次)석님이 십몇 년 후 과장님이나 팀장님이 되었다. 물론 그에 따라 호칭은 바뀌었지만 지금 다 커서 상사로 처음 만난 사람들과는 다른 애틋함이 있다. 그들 역시 강산이 한 번 변하고 또 몰라보게 변하고 있는 지금, 여전히 갓 발령받은 스물몇 살 문박사로 나를 대한다. 희한하게 그들은 세월이 지날수록, 내가 나이를 더 먹을수록 귀엽게 보는 듯하다. 착각이라기엔, 느끼는 감정과 시선이 일방이 아닌 쌍방이라는 확신을 주는 따스함이 있다. 이 대가 없는 내리사랑을 나이 들어도 오롯이 받고 싶다.
이런 관계에서 오가는 저 대화는 정감 있다.
‘네가 마흔이 되어도, 그래서 훅 가도, 여전히 애기란다.’ 혹은 ‘같이 늙어가는 거 환영한다.’ 아니면 그들끼리의 그저 ‘공감 공유’ 일 수도 있는 저 대화가 이렇게든 저렇게든 가볍고 유쾌하다.
마흔 되면 몸이 예전 같지 않지, 식의 말은 비단 그들에게서만 들은 것은 아니다. 여기저기서 주는 겁을 하도 들어먹다 보니 드디어 아니 결국 그 나이가 되어 이런저런 몸의 신호를 느꼈을 때 그 원인이 다 ‘마흔’인 것 같더라. 왠지 살이 쉽게 찌는 것 같고, 생리통도 더 심한 것 같고, 흰머리도 부쩍 는 것 같고, 뭐가 잘 외워지지 않는 것 같고 그래서 적지 않으면 안 되고.
하필 그때, 마흔에(두둥) 바쁜 부서로 이동했고, 힘든 업무에 치여 휴일도 없이 가정도 없이 일했다. 덕분에 만병의 근원인 스트레스를 푸지게 받았고, 그 결과로써 저러저러한 만병을 얻었으리라는 것은 그 업무에서 벗어나고 마흔에서도 벗어나서야 비로소 돌아보며 깨달은 것이었다.
서른아홉 살의 12월 31일과 마흔 살의 1월 1일 사이에 금이라도 있어서 요이-땅! 하고 ‘자 이제 너의 몸은 달라지고 말 거야!’ 하겠는가 말이다.
노화를 거스르고 부정할 재간은 없다. 슬금슬금 다가오겠지. 눈 꾹 감아 모른 척할 수 없을 정도로 빤히 드러나는 것들도 사실 이미 있고. 그런데 뭐. 마흔이 별거야?
인간이 어찌할 수 없이 이리 설계되었다 해도 미리 납작 엎드리고 설설 기고 싶지는 않은 마음이다. 가끔 필요에 따라 나이를 떠올릴 때 ‘마흔이던가? 마흔 하나던가, 둘이던가?(서른아홉은 확실히 아니니 그 밑으로 내려갈 생각도 안 하는 건 씁쓸하군)’ 잠시 헤아려야 하지만 그냥 그 언저리라고 하면 그만.
놀러 다니기 위해 일해 돈 벌고, 함께 행복하기 위해 소중한 사람들 챙기고, 멋진 옷 폼나게 입기 위해 운동하고, 걷기, 책 읽기, 공부 등등 나를 설레게 하는 것들 찾아 하면서 그렇게 살 거다.
간질간질 간지럼만 태우던 그 노래 제목은 결국 스스로 떠오르지 않았다.
문명의 이기를 잘 이용할 줄 아는 마흔 언저리는 인터넷 검색 기능으로 문제의 그 제목 <off my face>를 찾았다. 끝내 내 힘으로 기억해 냈을 때의 ‘해냈쓰’와 결은 다르지만, 뭐 그만하면 유연한 해결이었다, 쓸만하다 자평하며 만족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