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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들 Apr 11. 2023

요즘은 아베마리아

이 곡을 들으며 부르며 든 단상들

아베마리아, 슈베르트


2006년 성악가 조수미의 '데뷔 20주년' 파리 공연에서 이 곡을 불렀다.

공연 전 아버지의 부고를 받았지만 관객과의 약속을 지키는 게 아버지의 뜻일 거라는 어머니의 말씀에 결국 장례식에 가는 대신 공연을 한다. 그녀는 이 상황을 관객들에게 나누고 아버지를 생각하며 노래를 시작했다. 울컥하는 감정을 애써 누르며 최선을 다해 공연하는 영상을 보며, 그녀를 대신해 내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더랬다.

어두운 무대 위 다홍색 드레스의 그녀는, 음. 마치 천상계의 선녀 같았다. (어휴, 이런 진부한 표현이라니. 송구할 따름이다.)


알고리즘이 점지하는 대로 속수무책으로 이끌리는 편인 나는 우연히(혹은 의도된 대로) 이 영상을 접했다. 그날로 그 곡은 내 인생곡이 되었고, 그녀는 ‘님’이 되었다.  우리 집 구성원들은 눈뜨면서부터 출근 혹은 등교 때까지의 아침 시간을 엄마(아내)의 인생곡들로 충만하게 채우곤 하는데

그렇다. 이번엔 <아베마리아>다.




     


악보를 구해 피아노 연습을 시작했다.

하루 한 시간 남짓 피아노로 연습했고, 나머지 시간에는 성대가 역할을 했다. 매일매일 귓구멍으로 들어온 음악의 선율은 피가 흐르듯 내 몸 구석구석을 통과하고 결국 넘쳐흘렀다. 목과 입술로. 일단 그렇게 튀어나오고 나면 그 후는, '연주'하는 거다. 무의식으로 일은 벌어지지만 의식하는 순간부터는 최선을 다하는 게 예의.



목소리가 피아노보다 표현하기 수월한데?

잡을 사람 없어 천만다행인 선무당이 일말의 부담이라는 것 없이 결론짓는다(부담이라 쓰고 양심이라 읽히던가). 내 피아노 수준을 말하자면, 걸음마를 막 떼고 자신은 날아갈 듯한데 넘어질 듯 넘어질 듯 보는 어른 애타게 만드는 돌 지난 아이 수준 정도겠다. 하지만 자부하건대, 몸에 타고난 게 절대 음감에 박자감, 리듬감이랄까.


워워. 슬금 뻔뻔해지려는 찰나를 못 견디고 옷자락을 잡아 앉히는 또 다른 자아가 이른다. '얘 고음 불가예요.'

아 진짜... 인정. 모른척하기엔 치명적인. 이놈의 옥에 티 때문에 피아노를 치는 것이라 할 수도 있겠다. 내 성대로는 구현하기 어려운 높은 음의 멜로디를 원하는 만큼, 마음껏 표현할 수 있으니 목마름이 조금 해소되긴 한다. 지금의 걸음마 실력으로는 ‘희열’까지는 아닌 현실이지만. 갈증 나니 쯤에서 나의 ‘또 다른 님’ 조성진 님의 연주를 한 번 듣고 와야겠다.


어쨌든, 게다가 목은 휴대가 가능하니 이보다 이용이 자유로울 수 없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무엇엔가 잘 빠지고, 빠진 것에 열심인 성대 연주자는 설거지를 하든 식탁을 닦든 아이들의 부름에 이 방에서 저 방으로 경보하는 동안이든 수시로 노래한다. 혼신을 다한다.

“으아~~ v에 마 리~이~이아~~~”     


피식. 어디서 콧바람이 들렸는데. 어디서긴, 두말하면 잔소리지. 저기 저, 고개를 가로젓고 있는 사람. 사마씨는 이제는 콧방귀나 절레절레 고갯짓 같은 바디랭귀지로 두말 잔소리를 대신하려나 보다. 아닌가, 욕을 하는 건가.


그때 속 시원한 음성언어가 거실에서 들려온다. “엄마, 그 노래가 그렇게 좋아요?” 틈나는 대로 그림을 그리는 딸아이가 스케치하던 이면지에서 시선을 잠깐 떼 묻고는 다시 연필 끝으로 옮긴다. 아이는 꼬임이 없다. '또 시작이군’, ‘노래방을 가지 그래’ 같은, 작가의 뜻을 숨겨놓은 질문이 아니다. 아이는 진짜 묻는다.


요즘 감정이 부지런히 오르락내리락하는 중인 십 대 소녀. 그래도 아직은 엄마가 노래를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그녀는, '기분이 괜찮을 때면' 님을 따라 하는 엄마를 따라 한다. 흥이 최고조에 달하면 나는 종종 곡에 맞추어 춤을 추곤 하는데 장르는 가리지 않는다. 그저 필 충만하여 몸짓하는 엄마에게 아이는 다가와 바알간  볼을 하고는 까르르 스텝을 따라 밟는다.






열심히 흔들며 생각한다.

사춘기 막 입문한 이 소녀가 엄마의 가무(歌舞)를 대하는 데 있어, 머지않은 시일 안에 제 아빠와 닮은 반응을 보이게 되더라도 너무 실망하지 않아야지.

나는 내 길을 가야지. 앞으로도 변화무궁하게 더해질 내 인생곡들과 그걸 즐길 감성이 딱딱해지지 않게, 성대도 손가락도 춤사위도 유들유들하게 두거나 다듬어야지. 어쩌면 내 인생곡들보다 더 변화무쌍할 아이와 우리가, 서로에게 혹은 스스로에게 뾰족하거나 돌아서지 않게 유연해지자고, 마음을 단단히 먹는다.



사진 출처 : 픽사베이



소녀가 아버지를 위해 기도하는 곡 <아베마리아>를 들으며 부르며 춤추며, 우리 집 소녀와 나를 위해 기도해 본다. 절절하고 아름다운 곡에 맞는 몸짓으로 총총 춤을 추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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