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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들 Aug 09. 2023

17점이었지만 수포자였던 적은 없어(1)

수학 집공부 시작하기

지이잉.

마침 저녁 설거지를 마칠 무렵 메시지 알림이 울렸다.


손을 닦고 열어보니 중, 고등학교 동창이자 삼십년지기인 세 친구가 참여자인 단톡방에 사진이 올라와 있다. 세로셈으로 적힌 곱셈 문제 예닐곱 개를 빨간 색연필로 채점한 공책을 찍은 사진이었다. 사진에 대해 이어진 말풍선은 이랬다.     

"4학년 둘째가 곱셈 나눗셈 숙제를 하는데 20개 중에 2개를 맞네. 이제 보니 개념이 아예 없는 거야. 그런데 내일이 시험이라네? 악. 내가 비록 수학 똥멍청이였지만 이대로 방임 엄마는 아니 될 듯!"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끼쟁이인 이 친구는 학창 시절 스스로에게 그랬듯 자녀들에게도 '공부, 공부'하지 않았다. 즐겁게, 건강하게 보내는 것이 더 중요했다. 자유롭고 선하고 성실한 친구 부부의 미니미들은 그런 가정에서 더없이 착하고 유쾌한 아이들로 자랐다. 그런데 이놈의 현실은 착하게, 건강하게만 두지 않는다. 암만 공부 관심 없는 학생도 내 시험지 혹은 점수를 받아 들었을 때만큼은 아무렇지 않지 않다. 열심히 준비했는데 결과가 못 미쳤을 때의 속상함과는 종류가 다른 감정이겠으나, 공부를 했든 안 했든 기분이 안 좋기는 매한가지다.

그런 현타가, 친구에게 온 거다. 자식 시험지로 대신.   


       

어느새 옆에 착 붙어 엄마의 폰 화면을 같이 들여다보던 우리 집 아이가 "뭐예요? 나도 풀어볼래.' 한다. 4학년 문제라고 하니 만만하게 본 말투다. "그래? 그래 그럼." 일어나서는 빈 종이에 친구 집의 그 수학 문제를 똑같이 베껴 적은 후 아이에게 건넸다. 아이는 식탁에 자리 잡고 앉아 풀기 시작했다. 문제 풀이는 금방 끝이 났다.      

못 풀었기 때문이다.     


                





하아.     

아까 친구의 흥분체 톡 대화가 떠올랐다. 그 메시지는 폰을 빠져나와 내 머리 위에 활자로 둥둥 뜨더니 그대로 내게 들어왔다. 우리, 친구 아니랄까 봐.     

     



첫째인 우리 딸은 5학년이다.     

그리고 내가 육아휴직을 한 것은 일 년 전 그러니까 아이가 4학년 1학기를 마친 여름방학 때였다. 4년을 내내 바쁜 부서로만 돌면서 아이들 교육은 안중에도 두지 못했다.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날들이었다. 셋 중 한 명이라도 아프기 시작하면 동시에도 아니고 릴레이로 옮아 앓으니 초비상이 되기 십상이다. 미안하게도, 아이들이 아픈 기미가 보이거나 직장에서 아이 관련 연락을 받으면 지금 바쁜 일을 두고 당장 자리를 비울 일을 먼저 걱정하였고, 아이들이 아파서 얼마나 힘들지는 그다음 순번이 되고 말았다.     

그런 상황에서 공부까지 신경 쓸 겨를이 내겐 없었다. 몇 학년 때였는지 친정엄마가 문제집을 사 아이에게 풀리는 것을 보고도 울 엄마 대단해, 하고 말았지 큰 관심도 경각심도 가지지 않았다. 모름지기 초등학생이라면 피아노나 태권도 정도 하면서 별 탈 없이 학교 잘 다니고 건강하면 되지, 하는 생각이었다. 확고한 내 가치관이라기보다 상황 때문에 흐린 눈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게 진실이겠다.     


아기 때부터 해온 잠자리에서 책 읽어주기는 퇴근하고 꿈뻑꿈뻑 눈이 감기면서도 놓지 않고 꾸준히 해오고, 티브이 안보는 우리 집에서 매일 영어영상 한 시간씩 보는 것도 이 년 전쯤 시작하여 역시 지속하고 있는 루틴이지만 이것들은 그저 육아의 한 줄기요, 우리 집 문화 같은 것이다. 교육이라 하면 뭔가 으악 교육! 교육! 이렇게 본격적이어야 할 것만 같아 '아직'이라고 미루어 두었더랬다.       

                  

휴직을 하면서 아이들에 대한 나의 목표는 두 가지였다. 아이들과 많은 시간 함께하기. 그리고 혼자 공부하는 아이로 클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육아 적령기'라고 법에서 정한 연령의 아이에 맞추어 간당간당하게 낸 마지막 기회다. 

기한이 있고 나는 필연적으로 돌아가야 한다. 정해진 시간 안에 해두어야 할 과제가 있었다.   



       





휴직 첫날부터 온라인서점을 훑었다. 교육 관련 책을 다양하지만 신중하게 사들였고 흡사 취업 준비하던 시절처럼 초집중하여 많은 양을 읽었다. 여러 책의 저자들로부터 내가 따르고 싶고 따를 수 있는 내용을 엄선해 줄 치고 정리했다. 점차 나의 교육관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학령에 따라 두 갈래로 나누었다. 초1 쌍둥이는 일단 영어책, 한글책 가리지 않고 많이 읽어주며 독서에 중점을 두기로 했다. 초4 첫째는 한글, 영어 독서는 기본으로 하되 수학에 신경을 써야지 싶었다. 엄마의 성향을 똑 닮은 내 딸이니 수학을 절로 잘하리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었다. 합리적인 결론이었다.     

다만 아직 '공부' '학원을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공부는 혼자 하는 거라는 신념이 있었고, 그걸 아이가 최소한 경험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싶었다. 상황에 따라 나중에는 선택적으로 학원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집에서!'를 고집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지금은 아니라 여겼다. 할 수 있을 때까지는 최선을 다해 함께 해보고 싶었다. 

수많은 교육 관련 도서, 특히 수학 관련 책들과 유튜브 '유 선생님'들의 양질의 조언을 취사 선택해 가며 나의 도전을 시작했다. 작정하고 책을 읽어 들인 지 한 달 만에 우리의 집 공부가 시작되었다.       



                





마침 2학기에 들어서는 때였다. 우리도 새로운 준비에 들어갔다. 검인정 교과서 홈페이지에서 4학년 2학기 수학 교과서를 주문했다. 시간표에 주 3일 수학 수업이 있는 날은 집에 와서 그날 배운 것을 복습한다. 집에 사둔 교과서를 가지고 엄마에게 설명을 하는 방식이다.

이는 앞서 정독했던 책들에서 전수받은 방법이었는데, 이 팁을 처음 접했을 때 '이거지!' 하고 이마를 탁 친 사연이 있었다.     



바야흐로 한 달 전 여름 방학식을 앞둔 날이었다. 1학기 교과서를 원하는 경우 가져가고 나머지는 학교에서 일괄 처분한다는 학교 공지가 있었다. 방학에 한 번 훑자는 생각으로 아이에게 이 과목, 이 과목은 가져오렴 주문했고, '엄마가 원하시니 배달해 드립니다' 남 일 같은 얼굴로 아이는 교과서를 가져왔다. '귀여운 초딩 교과서~' 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긴 나는 생각지 못한 장면을 목격한다. 교과서의 미(美)인 많은 여백을 허하지 못하고 빈틈없이 채워진 그림들이었다. 



수업 시간에 얼마나 부지런히 연필을 놀렸을지 그려졌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면서 동시에 어쩐지 낯설지 않은 장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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