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이 딱 한 곳 있다. 공공체육관이라 가격도 싸지만, 싸고 말고를 떠나 지역에 단 한 곳이니 뜨거운경쟁률은 필연적이다.
수영을 가르쳐야겠다 마음먹은 여름 초입.
일단 올림픽체육관 홈페이지에서 세 아이 회원 가입을 해야 했는데, 특히 휴대폰이 아직 없는 아홉 살 쌍둥이는 여간 복잡한 게 아니었다. 별도로 '아이핀'을 받은 후 그것으로 본인 인증을 하여야 회원가입이 되었다. 그러나 엄마는 열증! 하나로 차근차근 절차를 거쳐 세 아이 모두 가입을 해두었다.
온라인 신청이 열리는 날 아침 9시. 남편과 나는 열리기 20분 전부터 각각 노트북과 휴대폰으로 미리 로그인을 한 뒤 대기했다. 3초 컷이라는 소문을 익히 들은 나도, 내게 그 말을 들은 남편도 잔뜩 긴장한 채였다. 엄마 아빠가 시계와 화면을 번갈아 노려보고 있자 막 일어난 첫째도 돕겠다며 가세하였다. 그 덕에 한 사람당 한 아이의 신청을 맡았다. 1분 전부터 새로고침을 반복하던 중 누군가 "열렸다!"하고 외쳤다. 순간 우리의 승모근은 더욱더 바짝 올라갔다. 이용자가 몰려 서버가 불안한 지 화면이 멈추거나 더디게 열려 진행이 순탄하지 않았다. 수영 > 학생반 > 기초반 > 등록 순서대로 선택, 선택하며 넘어가야 가는데 어느 순간 먹통이 되는 게 아닌가. 시간을 보니 어느새 3분이 넘어 있었다.
"이 정도면 끝난 것 같은데."
야속할 정도로 현실파악이 빠른 남편이 폰을 두고 자리를 떴고, 딸도 안타깝다는 듯 엄마를 보더니 방을 나섰다. 하...... 너무하잖아. 이보다 어떻게 더 빨라? 이거 완전 운이네, 운.
지지리 운도 없어, 증말.
뭐 사실, 한 두 번 겪는 일도 아니다. 사사로운 당첨운은 기대 안 한 지 오래다. 가까이는, 얼마 전에 있었던 임영웅 콘서트에서 트롯을 사랑하는 친정 엄마를 위해 남편과 두 시간을 매달렸지만 결국 소득 없이 현생으로 돌아와야 했다. 다음에는 피시방에서 하자 다짐했지만, 당장 K-효녀는 물 건너갔다.
무엇보다 BTS콘서트 티켓팅에서 매번 고배를 마신 게 꽤 쓰라리다. 직장 내 아미 소모임 '에미'들 중에도 방탄 콘서트에 단 한 번도 가지 못한 건 내가 유일하다. 다들 한 번 이상 다녀왔다. '죽기 전에 한 번 갈 수 있을까.' 농담처럼 말하지만, 농담 아니다.
우리 집 초딩들은 2025년에 백두산이 폭발한다는 뉴스를 듣고 와서는, 잊을 만하면 상기하며 두려움에 떨곤 한다. 그런 그들에게 말한다.
"얘들아? 백두산은 안 터져. 2025년은 방탄이 다시 활동하는 해거든. 엄마 콘서트 가야 해."
'백두산은 폭발하지 않을 거야. 왜냐하면 폭발하면 안 되니까.'라는.책을 좋아하나 별로 논리적이지는 못한 엄마구나.
혼잣말한 걸로 쳐야겠다.
몇 달 동안 계속되었다. '지지리 운 없음'을 월 1회 정기대면해야 했다.
초여름에 첫 도전한 이래로 매번 떨어졌고, 그럼에도 매 달마다 신청을 이어갔다. 온라인 접수에 실패하고 나면, 며칠 후에 열리는 오프라인(방문) 접수도 놓지 않았다. 어르신 등 온라인 신청이 어려운 주민을 위해 열어두는 방문 접수에는 온라인 접수의 3분의 1 정도의 적은 인원이 배정된다. 그 작은 희망을 걸고 매월 체육관에 가서 신청서를 쓰고 왔다. 방문 접수의 추첨 결과는 문자로 개별 통지되는데, 한 번은, 세 아이 중 한 명으로만 당첨 문자가 왔다. 망설이던 아이는, 혼자서는 안 가겠단다. 형제자매라도 양도가 안 되는 규정으로 그 기회는 그렇게 날리고 말았다. 그리고 계속 도전.
여름에서 가을로 가는 길고 짧은 시간 사이에 5학년 딸은 불특정 다수 사이에서 수영복을 입어야 함을 저어하는 시기를 맞이하였다. 생리 시작 전 배우면 좋겠는 엄마 마음에 너무 안타까웠지만, 아이가 그렇다는 걸 어쩌랴.
11월 강습을 위하여 10월 말에도 월례 행사를 치렀다. 온라인, 오프라인 다 떨어졌다. 아하하하.
그러던 시월의 마지막 날, 그러니까 11월 강습 시작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무슨 생각인가 번뜩 들었다. 즉시 체육관에 전화를 걸었다.
"혹시...... 학생부 기초반 인원이 다 찼나요?"
"아, 자리가 있어요. 음...... 잠시만요."
창구 직원은 담당자와 따로 이야기하더니 말한다.
"오늘 오셔서 결제하세요."
결제! 등록보다 더 확실한 말 아닌가!
"엇, 그런데 두 명인데 가능한가요?"
"두 명이요~ 네, 두 명 자리 있어요."
"어머,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휴대폰을 양손으로 귀에 댄 채 넙죽넙죽 인사를 올렸다. 엄마 해냈어.
그날은 유독 흐렸다. 몸이 으슬으슬했다. 역시 날씨의 노예라서 인가, 아니면 주말 내내 아이들과, 그 애들만큼 뛰어논 게 화근일까. 그러면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흘러갔다. 요즘 수영 생각에 유독 골몰해서일까, 느닷없이 머리에 수영이 떠올랐다.
'수영하기에 이제 좀 추우려나. 아무래도 여름보다는 그렇겠지. 물이 차게 느껴질 수 있겠어.'
'응? 그럼 수영하려는 아이들이 조금 줄지 않을까?'
그렇게 제멋대로 흐르던 생각이 수렴한 곳은, '호옥시?'
의구심의'설마'와희망의 '혹시'가 비슷한 비중으로 두둥실 떠올랐다. 홀린 듯 전화를 걸었고, 따냈다(!).
누군가 채가기라도 할 듯이, 꿈처럼 흔적도 없이 사그라지기라도 할 듯이, 체육관으로 향했다. 등록을 마치고 결제를 하고 나니 비로소 편~안~.
준비물이 필요했다. 바로 다음 날 시작이니 인터넷 구입은 어려웠다. 체육관 내에 있는 수영복 매장에 가서 수영복을 비롯하여 수경, 수모, 가방까지 장만했다. 수많은 수영복들을 구경하며 마치 내가 수영을 시작하는 것처럼 설렌다. 오후에 집에서 만난 아이들에게 "짜잔~!!" 하고 내밀었다. 아이들이 "와아~!!" 외치며 뛰어와 안긴다. 래시가드 아닌 '그런' 수영복을 처음 입어 본 우리 집 촌놈들은 한편 어색해하면서도 '올림픽에서 본 수영복'이라며 신나 했다. 두 아이는 자기 전까지 수영복에 수모 차림이었다.
집념인가, 집착인가.
이곳 체육관 수영장은 다른 학원들과 달리, 보호자가 태워주고 데려와야 한다. 일할 때도 아이들이 수영을 배우면 좋겠다 생각했지만, 퇴근 전까지 아이들을 돌봐주러 오시는 친정엄마에게 수영장 라이딩까지 부탁하기는 어려웠다. 체육관 셔틀이 있지만 그것을 태우기에는 너무 어렸고 좀처럼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마음을 접어야 했다.
막 휴직했을 때는 코로나의 여파로 아직 장기 휴관 중이었다. 강습을 재개했을 때, 지금 뿐이라 생각했다. 놓치지 말아야지 마음먹었다. 휴직은 정해진 '기간'이 있다. 내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공을 들이는 것이 이, 유한한 시간을 귀하게 쓰는 방법이었다.태우고 데리고 다녀야만 배울 수 있는 것을, 내가 할 수 있는 지금, 기회가 주어진 것만으로 그저 감사하다. '이건 해야 해', 하고 마음먹은 대상에 대한 흔들리지 않은 의지가 가능하게 하지 않았을지.
과연,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나니. 신이시여.
처음이라 떨린다는 귀여운 고백을 하는 아이들을 태우고 시간 넉넉하게 도착했다. 이미 스스로 곧잘 샤워하는 두 아이를 두고 이런저런 괜한 걱정을 한 다발 쏟고야 탈의실로 들여보냈다. 강습이 끝난 시간에서 30분은 더 지나서야 깡충깡충 뛰어나온 아이들은 온몸으로 싱글벙글하다.
"너무 빨리 끝나서 아쉬웠어요!"
"엄마, 샤워까지 잘했어요. 우리 다 컸죠!"
아이들의 주체할 수 없는 재잘거림을 듣는 내 얼굴은 두 아이만큼 상기되어 있었을 게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