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참여하게 된 독서 모임의 이번 달 발제 도서명이 낯설다. 요즘 애용하는 도서관에서 찾아본다.
검색 결과 없음.
잔잔한 음악이 깔리는 카페 같은 분위기도 좋고, 큐레이션 된 책들도 훌륭하다. 시험 공부할 때 소설이 그리 짜릿하고 신문이 그리 흥미진진하듯, 내 할 일이 있어 가면서도 자꾸 꽂힌 수많은 책들을 기웃기웃하게 되곤 한다. 세상에는 어쩜 그리 재미난 책이 많은지!
휴관일을 제외하고 출근하다시피 하는 이 도서관은, 그러나 생긴 지 3년이 채 되지 않은 짧은 연륜 때문인지, 찾는 책이 없는 경우가 많다.
여러 계기로 문득문득 찾는 책이 이 도서관에 없을 때는 어떻게 하느냐.
다음 스텝으로 진행되지 않기도 한다. '아...... 없네.' 끝. 사실, 절반의 확률로 그러하다. '굳이' 다음 스텝을 모색할 의미와 의욕이 없는 거지, 뭐. 그 책과 나의 인연은 여기까지 인 거다. 일단은.
좌절하지 않고 즉시 다른 방법을 모색하게 되는 책(살아남았다고 하겠다)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은 방법을 취한다.
일단 희망도서 신청을 한다. 당장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평생에 한 번은 내 꼭 읽고 싶다, 하는 책의 경우 유용하다. 이때 여유가 중요하다. 내가 필요한 책을 도서관에서 우쭈쭈 다 제공할 줄 수는 없다. 아닌 게 아니라 엊그제 안내 문자를 받았다. "도서관 예산 소진으로 희망도서는 마감되었습니다." 그 참에 조회해 보니 내가 올해 희망도서로 신청한 책은 다섯 권이더라. 그중 한 권은 신착도서로 들어왔지만, 나머지는 끝내 연이 닿지 않게 되었다. 설령 예산 문제가 아니더라도 도서관의 업무 프로세스상 신청한 즉시 책이 들어오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우니, 마음을 비우고 신청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잊고 지내다 보면 선물처럼 연락이 온다. 역시 내 얘기를 하자면, 오늘 도서관으로부터 또 다른 문자를 받았다. '문박사님 예약 도서 대출 가능'
잠시 생각한다. '내가? 언제...'
희망도서까지 못 기다려, 하는 경우는 서점으로 눈을 돌린다. 그 책을 내가 두고두고 볼 가능성이 높을 때 택하는 방법이다. 필요에 의해서든, 추천을 받았든, 처음 접했을 때 사실 어느 정도 느낌이 온다. 내 사람, 아니 내 책이라는 걸. 내 코 묻은 돈을 지불할 가치가 있다는 걸.(안목 부족으로 속아 넘을 때도 왕왕 있음을 고백한다.) 매우 주관적인 기준으로(기준이 있긴 있더냐. 기분이 기준 아니더냐~) 우선 온라인 중고 서점을 뒤지긴 하지만 때때로 새 것으로 구입하기도 한다. 책 사는 속도를 책 읽는 속도가 따라가지 못할 때도 있다. 가지고 싶은 책은 야속하도록 넘쳐난다. 그럼에도, 신중히 책을 고를 때와 새 책을 손에 넣었을 때의 기분은 놓지 못하겠다. 마치 내가 만수르라도 된 듯한 부자 기분.(아니지, 진짜 부자가 이 짜릿한 행복감을 느낄까. 습. 진짜 부자가 아니어서 모르겠다.) 이 행위와 순간이 가히 중독적이다만, 뭐 요즘 시끄러운 마약에야 비할 데 없이 건강한 중독 아니던가.
미처 먼저 거두지 못한 택배 상자를 남편이 보고 무심히 말한다.
"책, 많이 사네?"
잘못한 것도 아닌데, 이 택배 상자가 (또) 여기 있는 이유 따위를 열한 가지는 댈 수 있는데, 다 생략한 채 비겁한 변명을 서둘러 붙인다.
"벼, 병렬독서 중이야!"
무급 휴직 중인 처지니만큼 신간 '구입'은 자제하려 애쓰는 중이다. (집 정리의 필요성을 느끼며 수납정리책을 또 사긴 했지만 말이다.)
독서 모임 발제 도서가 이 도서관에 없는 것을 확인했을 때, 그래서 혹시나 하며 시립도서관에 전화를 걸었다. 여름 전에 시작한 리모델링 공사가 이제 막 끝났다는 답변이 그래서 반가웠다. 그것도 무려 바로 어제, 재개관을 했다니, 이런 행운이! 평소 일희일비하는 나답게, 기분 좋게 맞아떨어지는 이 소소한 우연의 일치를 보아하니 세상의 기운이 나를 향하고 있다며, 좋을 대로 생각한다. 전화기 너머로 "그러니 어서 오세요~" 말하는 도서관 직원의 목소리가 막 새집으로 이사를 마친 집주인의 그것처럼 경쾌하여 덩달아 신이 난다.
도서관 통합 어플로, 시립도서관에 찾는 책이 있음을 확인한 터였다. 역시 믿을 만한 구석이다. 예로부터 시립도서관에는 없는 책이 없다. 도서관계의 화개장터랄까. 찾는 책을 도서관 통합 어플로 검색했을 때 높은 확률로 이곳에 있다. 리모델링 공사로 인한 몇 달간의 공백이 적이 아쉬웠던 이유다.
"후! 책 사는 취미를 이제 조금 넣어둘 수 있겠구먼."
혼자 있지만 누군가를 의식하듯 씩씩하게 혼잣말하며 도서관으로 차를 몬다.
새 단장한 시립 도서관은, 재개관 소식을 듣지 않은 누구라도 알 수 있을 듯이 새 거 냄새로 가득했다. 전체적으로 화사하게 밝아졌고, 트렌디하면서 깔끔한 요즘 인테리어로 바꾼 노력이 엿보인다. 열람실이든 자료실이든 많은 부분 디지털화되었다.
오랜만에 만난 동창 사이처럼, 반가운 한편 낯설어하며 어색하게 둘러보고 있었다.
아앗. 휴게길 입구 쪽에 눈길을 사로잡는 무엇이 있다.
자판기. 내 사랑 커피 자판기다.
그래. 이거지. 그만 콧잔등이 찌릿한다.
극 I 인간이 아까 그 동창회에서 쭈뼛거리다, '아, 괜히 왔나. 집에 갈까...' 망설이던 중, 뒤늦게 모습을 드러낸 베프가 나를 향하여 반가움의 등짝 스매싱과 뜨거운 포옹을 동시에 날릴 때의 감정이랄까.
요즘 가는 예의 그 도서관에는 아메리카노를 단 돈 천 원에 판매한다. 아메리카노랄지 카페라테 같은 '요즘 커피'를 제공하는 곳이 그 도서관뿐 아니라 흔해졌다. 사계절 가릴 것 없이 뜨아를 섭취하는 나는 그 또한 사랑한다. 그러나 한 편, 이 커피 자판기 역시 다른 의미로 내게 사랑이다. (사랑하는 게 죄는 아니좌나)
새 거 냄새 풍기며 온통 반짝반짝 화사한 그곳에서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낡은 자판기에 괜히 애틋하게 다가가 본다.
역시 메뉴가 익다.
설탕크림커피, 설탕커피, 크림커피. 설탕과 크림(프림을 크림으로 표현한 고급스러움)의 유무에 따른 구분. 개인 취향을 고려하는 세심함이 엿보인다.
같은 메뉴인데 분리되어 있고 300원과 400원으로 가격에 차등을 두고 있는 점이 특이할 만하다. 사실 난 둘 다 마셔보았다. 학생 때는 아묻따 3백 원짜리였고, 직장인이 되어 왔을 때는 '당당함으로'& '당당하므로' 4백 원짜리를 눌렀더랬다. 맛에 100원어치의 차이가 있던가? 어떤 차이가 있었더라? 100원의 가격 차등은 각기 다른 원재료로 인한 것일까? 새삼스러운 궁금증을 자아낸다.
당연한 존재에는 호기심이 일지 않는다. 아쉽고 반가울 때에야 비로소 대상이 또렷이 궁금해진다. 사람이, 사랑이, 그러하듯.
그리고 율무차와 코코아. 커피를 마시지 않거나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가 아닌가.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이미 커피맛을 모르던 왕년에 당연히 둘 다 즐겨 먹었고, 당연히 둘 다 맛나다. 둘은 친절하고 다정한 맛이다.
율무차와 코코아 아닌 칸에 '영업 안 함'의 의미로 까만 테이프로 막아놓은 곳은 기억하건대 '우유'의 자리임이 확실하다. 자판기의 우유는 나의 최애 메뉴였기 때문이다. 이 우유는 우리가 마시는 팩우유가 아니다. 차원이 다르다. 차원이 다르게 맛나다. 지금 생각하면 프림가루가 아니었을까 싶게 그 맛과 흡사하다. 고소하고 적당히 느끼하며 달달한 가루가 뜨거운 물과 걸쭉~하게 섞여 종이컵에 담겨 나온 '자판기 우유'는 내 학창 시절을 따땃하게 덥혀주곤 했다.
나의 최애가 까만 테이프로 단호하게 막혀 있으니 쩝. 못내 아쉽다.
오래된 나무의 나이테처럼 낡았지만 초라하지 않게 자리를 지키는 이 자판기는 카드는 허하지 않는다. 카드 대신 실제 돈을 사용하던 시절의 유물이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지금으로서는 그다지 편의적이라 할 수 없는 유물을 업데이트하지 않고 보존해 준 도서관측에 감사한 마음마저 든다.)
다음에 이 책을 반납하러 올 때는 짤랑짤랑 잔돈을 챙겨 오리라 다짐한다.
교복차림으로 깔깔거리며 수없이 그 앞을 왔다 갔다 하던 시절부터, 오래 보아온 이에 대한 애틋함과 책임감일지 모르겠다.
덕분에 마주한 채 시간 여행하는 기분이 묘하며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