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시작해 2년째 다니고 있는 축구교실은 아이들이 원해서 시작했고, 여전히 무척 좋아한다. 매일 가는 피아노 학원은 안 가고 싶다고 말하는 날이 종종 있지만, 주 2회 가는 축구는 단 한 번도 가기 싫다고 한 적이 없다. 피아노 선생님한테 이런 말도 했단다.
"피아노는 엄마가 좋아해서 다니는 거고요, 축구는 우리가 좋아서 가는 거예요." (슨생님 죄송합니다.)
그만큼 애착을 가지고 꾸준히 잘 다녔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에 그저 기특하고 흐뭇했다.
작은 지역에서 유일한 축구 교실이다. 축구의 인기만큼 수요는 점점 커졌고, 들어가려면 대기를 하는 상황이다. 그 아이들이 일 년에 한 번, 딱 이맘때 모두 모여 <축구 페스티벌>을 한다. 하루 동안 야외 축구경기장에서 학년별, 학교별로 팀을 나누어 경기를 한다. 유치부, 1~2학년, 3~4학년, 5~6학년, 선수부로 나뉘고 그 안에서도 학교별로 나뉜다. 총 열여덟 팀에, 팀명 또한 화려하다. 토트넘, 레알마드리드, 리버풀, 바르셀로나, 맨유, 아스널 등 유럽 프리미어리그의 팀부터 울산현대, FC서울, 유벤투스, 수원삼성 등 K리그 팀까지 그야말로 총출동이다.
돗자리와 물, 간식거리를 챙겨 소풍 가는 가벼운 마음으로 나섰다.
우리 집 두 선수는 아스널 소속.(너희들, 아스널을 아시나?)( 죄송...) 팀별로원정팀으로 한 번, 홈팀으로 한 번, 이렇게 두 번의 경기를 치렀다. 1시 반에 한 경기, 그리고 4시에 나머지 한 경기를 했다.
오늘 경기를 통해 우리 부부는 깨달았다.
유전자는 과학이라는 것을.
종교의 율법, 우주의 섭리라는 것을. 너희에게 주어진 운명의 증거라는 것을.
또한 우리는 확인했다. 유전자 감식 따위 필요 없다.
엄마인 나는 학창 시절 내내 100미터 달리기에서 꼴찌를 놓친 적 없고, 체력장에서 철봉 매달리기를 단 1초도 넘어본 일 없는, 운동 감각에 있어서라면 일관되게 저질인 사람이다. 아울러 나의 전우로 말할 것 같으면 '스포츠는 관람할 때 즐거운 것'이라는 철학을 가진 사람이다. 사실 나는 이제껏, 남자는 다 운동을 좋아하며, 잘하는 줄 알았다. 남편이 어린 아들들과 공을 가지고 놀 때 심상치 않은 발재간을 보며, 이 사람도 운동을 꽤 하네, 생각했다.(발재간'만' 있는 사람도 있더라.) 짬 날 때마다 프로야구 중계를 그렇-게 보기에 더욱 확신했다. 직장과 육아에 쫓겨, 즉 시간이 없어 '못'하는 것이라 믿었다. 뒤늦게 더듬어 보면, 축구하듯 야구하듯 힘차게 달리는 걸 본 적이 없는데 말이다.
보는 것'과 '하는 것'은 무관하다는 것을 오랫동안 생각지 못했다. 운동신경 제로인 나도, 우지원 오빠에 빠졌던 대학 시절, 오빠 경기 직관에 용돈을 몰빵 하던 농구장 죽순이었으면서.
작년 이맘 때도 오늘처럼 페스티벌에서 경기를 했었다. 당시 우리 아이들은 1학년. 1~2학년이 섞여 한 팀을 이룬 경기에서 일 년 더 산 형님들이 잘하는 게 당연하지, 여겼다. 상대적으로 쪼그마한 그 애들을 귀엽게, 마냥 편안한 마음으로 관람했던 것이다. 이번엔 우리 아이들이 형님이다.
학년이 문제가 아니었구나.
축구에서는 각 역할이 있으며,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해냄으로써 팀이 승리하면 그것이 곧 나와 모두의 승리인 스포츠다. 허나 어린이 취미 축구가 어디 그러랴. 아직 어린아이들에게 공격, 미드, 수비 등 선수들이 하듯 체계적인 역할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코치님은 아이들 이름을 골고루 언급하며 진두지휘하느라 애쓰고 있었다. 그럼에도, 상대적으로 빠르고 감각이 있고 힘이 좋은 두어 명의 아이가 경기를 이끌어간다. 그 아이들이 공격도 하고 수비도 한다. 골키퍼 빼고 다 한다. 나머지 아이들은 공에 발을 대는 기회도 몇 번 되지 않는다. 나머지 아이들 중에 돌아가며 골키퍼를 맡는다.
자명하게도 우리 집 두 선수는 두어 명 쪽 아니고 우르르 몰려다니는 나머지 쪽이다.
공을 따라 열심히 달려가긴 하는데, 공을 쟁취하려 한다든지, 패스를 받기 위해 욕심 내는 기색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적당히 달려간 다음 멈추기 일쑤다. 여기까지 오는 게 목적이었어, 하는 듯이. 상대편이 골대로 향하는 위험 상황에서도 '막아야지'하는 의지는 엿보이지 않는다. 우르르 몰려다니기만 하는 우리 집 두 선수를 보니 그만 실소가 터졌다.(그 덕에 엄마 계속 웃었다?)
빼박 내 새끼들. 아이들에게서 내가 보이고 남편이 보인다.
공은 차고 싶지만, 상대와 부딪쳐서까지 겨루고 싶지 않은 마음이 보인다. 몸싸움을 한다거나 상대의 공을 뺏을 정도의 집념까지는 아닌 것도 공감한다. 때로 기회가 와 슛까지 날려보지만 '왜 이러지' 싶게 마음 같지 않은 두 발, 내 몸도 당연히 절절히 안다.
어찌 부정하오리까. 나와 우리를 새삼 마주하며 자꾸만 빵 터질 따름이다.
한 경기를 마치고. 싸 온 간식을 먹을 때였다. 슬며시 아이들에게 물었다.
"축구 재밌어?"
"네!"
"그렇구나. 축구는 어떤 매력이 있어? 어떤 점이 재밌는 거야?"
그러자 아이가 잠시 생각을 고르는 듯 저어기 경기장을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밧줄로 몸을 꽁꽁 묶고 있던 게 확 풀어지는 기분이에요."
단번에 이해하지 못한 내가 되물었다.
"그건 어떤 느낌일까. 어떤 순간에 그걸 느끼는 거야?"
"골 넣었을 때요."
그러면서 작게 웃으며 덧붙였다. "자주는 아니지만."
"그렇구나. 혹시 골 못 넣을 때 속상하진 않아?"
"네. 그때는 달리니까 좋아요."
우문현답이다.
솔직하자면, 아무렇지 않지 못했다.
비슷한 시기에 시작해서 함께 다니는 친한 친구가 같은 팀에서 '두어 명' 중 한 명이다. 1학년 때부터도 눈에 띄게 잘한 것을 모르지 않았으면서도 새삼 부러웠다. 얼마나 자주 짜릿하고 자신감 넘칠까. 그러면서 생각했다. 우리 두 아이도 저렇게 잘하는 선수이고 싶지 않을까. 코치님이 마음 놓고 공격도 시키고 수비도 시키는, 그런 선수이고 싶지 않을까. 그 사이에서 주눅 들지 않을까. 그렇지 못한 자신에 속상하지 않을까.
아이를 너무도 사랑하는 나머지, 엄마들은 종종 나약해진다. 어리석은 생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느라 뒤늦게 깨닫곤 한다. 아이들은 부모가 걱정하는 것보다 더 단단하다는 것을 말이다. 아까 아이의 철학적인 대답 또한 생각지 못한 것이어서, 엄마의 염려를 신선한 충격과 감동으로 바꾸어 주었다.
'축구를 계속 시켜 말어?' 하는 고민부터가 잘못되었다.
축구를 계속할지 말지는 아이가 택하는 것이다. 힘들고 싫었으면 진즉에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엄마의 가치관에 따라 '시킬' 수는 있겠으나) 힘들고 싫은 것을 묵묵히 하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가능하지 않다.
드물지만 작은 성공을 아이는 경험했고 그 기억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또 해낼 수 있다는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어 보였다. 무엇보다 아이는 공을 따라 이리저리 달리는 것 자체를 즐기고 있었다. 그래서 좋아하는 거고, 좋으니까 꾸준히 할 수 있다. 그거면 충분하지 않은가.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이었다. 나의 경험과 나의 인생이라는 틀 안에서만 아이를 바라본 것 같아 부끄럽다. (엄마도 이렇게 배우고 있어.)
아이는 자신만의 경험을 쌓으며 그의 세상을 살 것이다.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손흥민 선수의 소식으로 연일 축구계가 뜨겁다. 소속팀 토트넘에서 최초의 아시아인 주장으로 지명된 것에 이어, 거의 매 경기마다 득점을 하는 등 눈부신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인종차별 심한 유럽에서도 안티 없기로 유명한 손흥민 선수가 찬사를 받는 요인은 뛰어난 실력은 말할 것도 없고, 겸손한 인성으로 리더십까지 발휘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으며, 못난 사람을 일컬으면서도 "그래도 아(애)는 착햐~" 하는 게 우리네 사람이다. 손흥민 선수를 '인정'한다는 말로도 부족하고, 그를 보면 누구나 마음으로부터 예뻐하고 축복한다. 그가 축구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축구팬들은 덩달아 행복해한다. 손흥민을 훌륭한 축구선수이자 근사한 한 '사람'으로 길러낸 그의 아버지 손웅정 감독은 한 방송에서, 무엇보다 아들이 축구를 하며 행복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아버지 말의 영향인지, 아니면 손흥민 선수 자신이 그런 모습을 보여서인지, 유독 그에게는 '행복 축구'라는 말이 따라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