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글을 쓰면서 서서히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왜 못나 보였는지, 잘하는 게 있는데도 왜 무능해 보였는지, 심통 맞은 성격은 왜 갖게 되었는지. 내가 나를 이해한다는 것은 나에게 위로를 건네고, 나를 보듬는 일이다. 그 덕분에 남들이 아무리 칭찬해도 채워지지 않던 내 마음이 비로소 채워지기 시작했고, 남들의 평가에도 그리 연연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과 잘 지내고 싶었던 오랜 바람이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다. 거창한 변화 대신 소소한 변화를, 외적인 성과 대신 내적인 성과를 기대하며 글을 써보면 어떨까?
- 92p.
'... 를 기대하며 글을 써보면 어떨까?
책장을 막 뒤졌어요. '마흔' 비스무리한 뭐시기가 키워드였던 것 같은데... <김미경의 마흔 수업>? 이건 아니고. (뒤적뒤적) 아, 이거였나. <80년대생 학부모, 당신은 누구십니까>를 집어 들었어요. 그다지 육감적이지는 않은 나의 육감이 이번엔 강하게 끌렸죠.
Q. 1980년대생 학부모의 대표적인 성향을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A. (...) 이들은 수평적 관계를 지향하기 때문에, 직장이든, 식당이든 어디서든 반말하는 사람을 싫어합니다. 툭하면 가르치려 드는 사람도 싫어합니다. 이들은 서로 존중하고 존중받는 것을 기본으로 삼습니다.
49p.
비슷한 내용이 또 있어요.
기존 언니세대는 "이렇게 하세요", "이렇게 하지 마세요"라고 짚어주는 것을 좋아하고 잘 따릅니다. 반면 동생 세대는 잔소리나 지시에 거부반응을 보이는 성향이 있습니다. 동생 세대를 움직이는 건 "나를 따르세요"나 "반성하세요"가 아닙니다. 동생 세대에게는 인플루언서 또는 서비스 제공자와의 소통과 공감을 통해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동기가 있습니다. 이 동기가 깊은 관여를 일으키고 장기적 관계를 구축하는 중심으로 작용합니다.
246p.
이 두꺼운 책 중 딱 요 부분에 포스트잇이 붙어 있네요. 밑줄도 그어져 있고요. 지금의 나와 다르지 않은 작년 봄 나의 흔적을 보니 픽 웃음이 나는군요.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당시에는 이 부분에 대한 공감의 원천은 주로 '직장'과 '가족'이었던 기억이 나요. 지금은 추가로 '책'이 떠오르네요. 각종 자기 계발서 분야의 책들.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어요. 특정 분야에 편중되긴 했지만요. 주로 소설이나 역사서, 에세이 류를 편독했거든요. 출산하고 아이를 키우면서부터 육아서, 교육서에 눈을 떴고요. 자기 계발서,라는 것을 찾은 것은 마흔이 넘어서요. 순수 문학을 제외하면 필요에 의해 읽은 셈이죠. (순수하지 않네요.) 그런데 자기 계발서가 가장 나중의 선택인 이유가 사실 있어요. 그게 글쎄.
자기 계발서가 잔소리로 느껴졌거든요.
그죠. 아마도, 그때까지는 내게 필요하지 않아서겠죠. 그러니 관심 밖이었고, 그러니 꼰대들이 잘난 척하며 이래라저래라 늘어놓은 잔소리 책,으로 여길 수밖에요.
마흔부터 시작한 나의 진로 고민이 여전히 진행 중이에요. 진지하고 열렬합니다. 내 마음이 동하여 집어 드는 자기 계발서의 구절구절이 뼈를 스치고 심장까지 스미는 감각으로 다가옵니다. 이제는요.
그런데, 심지어 이런 지금의 나에게도, 소화가 안되고 튕겨나가는 혹은 뱉어낼 수밖에 없는 책이나 문장들이 있는 겁니다. 위의 일명 '블로그 책'처럼 말이죠. 내용은 실컷 좋아해 놓고, '써보면 어떨까?' 때문에 쓰기 싫다니요.
이게요 정말,
가르치려 드는 게 싫은 80년대생 학부모의 특징인 건지,
INFP의 구속되기를 거부하는 자유로운 성향 때문인 건지,
어릴 적 엄마의 지시적인 말투에 반항감을 품고 자라와서인지,
'그 승질 머리' 때문인 건지,
나도 나를 모르겠어요.(님아 마지막이 가장 강력하다 말하지 마오.)
고백하자면 이 글의 머리를 시작한 후로 벌써 며칠 째예요. 도통 마무리가 되지 않고 지지부진해서요. 또렷하지 않고 뿌연 내 마음이 문제겠지요. 그렇게 몇 날 며칠을 들여다보며 겨우 몇 줄 끄적이고 지우고를 반복하던 차에, 그러니까 오늘, 롸잇 냐우, 그분이 왔지 뭐예요. 내게 이렇게 말하네요.
"승질 머리 플러스, 내심 쓰기 싫었음."
아.
깊은 깨달음을 얻으며 이렇게 겨우 마무리하네요.
*사진 출처 :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