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anh Phong, 출처 Pixabay
사람마다 목숨을 거는 절약이 있다.
나는 푼돈에 집착한다.
푼돈을 아끼기 위해서 마트 가기 전에 장바구니를 챙기거나 스타벅스 갈 때 텀블러를 챙긴다.
가족, 지인들은 신기해하며 귀찮지 않냐고 묻지만 하나도 귀찮지 않다.
남편은 실밥이 터진 낡은 가죽 지갑과 밑바닥 모서리가 닳아 해진 서류 가방을 들고 다닌다.
서랍장에 고이 모셔둔 새 지갑이 남편을 기다리다 지쳤다고 한다.
엄마는 물티슈 한 장을 뽑으면 한 번 사용하고 버리기 아깝다고 걸레처럼 빨아서 쓰고 또 쓴다.
보풀이 나고 구멍이 송송 난 물티슈를 볼 때마다 몰래 버리고 싶은 마음을 물티슈 봉지에 넣어 뚜껑을 닫는다.
시어머니는 수도세와 전기세 중에서 수도세로 나가는 돈을 아까워한다.
부엌 형광등 불은 대낮에도 켜놓는데 말이다.
아무도 없는 부엌에 불이 켜져 있을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다.
손이 느린 며느리는 시댁에서 설거지할 때 가끔 어머니의 시선이 느껴져 뒤통수가 따가워질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손놀림이 아웃사이더의 랩처럼 빨라진다.
상대방의 절약관(절약에 대한 관점이나 견해)에 태클을 거는 경우가 있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삼촌은 절약이 몸에 배어있었다.
겨울에 삼촌 집에 가면 한겨울에도 반팔, 반바지를 입고 지내는 우리 집과 달리 한기가 느껴졌다.
엄마가 삼촌 집에 갈 때마다 잔소리를 했지만, 집안 공기만 더 추워질 뿐 바뀌는 건 없었다.
나도 전에는 남편의 낡은 지갑을 바꾸라고 하고 엄마의 물티슈를 몰래 버렸지만, 다음날, 한 달 뒤에도 지갑은 남편 바지 뒷주머니에 있었고 말라 비틀어진 물티슈는 거실 바닥에 굴러다니고 있었다.
바뀌는 건 없이 서로의 마음만 상했다.
사람마다 인생관이 다르듯이 절약관도 다를 수밖에 없다.
상대방의 절약관을 바꾸려고 하거나 태클을 걸기보다는 눈과 입을 닫고 서로 존중을 해주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