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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줌마! 쇼핑백 치워요!"
나는 뒤를 돌아봤다. 버스 정류장 의자에 50대 정도로 보이는 A 아주머니와 쇼핑백 주인인 B 아주머니가 앉아있었고, 둘 사이에 검은색 대형 쇼핑백이 있었다. A 아주머니의 말이 끝나자마자 B 아주머니는 구시렁거리며 쇼핑백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A 아주머니는 큰소리를 말했다.
"서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쇼핑백을 의자에 놓으면 어떡해요?"
B 아주머니는 입을 꾹 다문 채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B 아주머니를 바라보던 시선을 자연스럽게 정류장 의자 위에 붙어 있는 버스 정보 안내기로 돌렸다. 기다리고 있는 버스가 5분 후에 도착한다는 글자를 보자마자 앞으로 걸어 나갔다.
"아줌마! 가방을 의자 위에 놓으면 어떡해요?"
나는 놀란 눈을 하고 뒤를 또 돌아봤다. A 아주머니와 B 아주머니 사이에 조금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분홍색 에코백이 눈에 들어왔다. B 아주머니는 자신의 옆에 있는 에코백과 A 아주머니를 번갈아가며 언짢은 표정으로 쳐다봤다.
"가방이 무거워서..."
에코백의 주인은 A 아주머니였다. A 아주머니의 말을 듣자마자 나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자신의 에코백을 의자 위에 올려놓은 A 아주머니가 B 아주머니를 지적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엄마, 오빠네 가족과 함께 점심을 먹기로 약속했다. 우리 부부가 김포에 사는 엄마를 모시고 식당으로 갔다. TV에 나온 맛집이라 식당에 손님이 많았다. 식당 입구에 있는 웨이팅 기계에 핸드폰 번호를 입력하고 차에서 대기했다. 다행히 오빠네 가족이 도착하기 5분 전에 식당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만두전골을 주문했다. 만두전골이 끓기 시작했을 때 오빠와 언니, 조카가 식당에 도착했다. 나는 오빠와 언니에게 만두전골에 기본적으로 청양고추가 들어가서 조카도 먹을 수 있도록 청양고추를 빼고 주문했다고 했다. 오빠는 경주(가명)가 만두를 안 먹어서 상관없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 "경주가 만두를 안 먹는데 왜 만두전골 먹으러 오자고 했어?"
오빠 "경주는 다른 메뉴 먹으면 되니깐."
조카가 편식이 심한 건 알고 있었지만, 만두도 안 먹는다니. 이해하기 어려웠다. 닭발처럼 징그럽게 생긴 음식을 안 먹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이렇게 맛있고 사랑스럽게 생긴 만두를 안 먹는 조카가 안타깝기도 했다. 나는 만두를 한입 베어 물고 조카를 건너보았다. 언니는 내 시선이 신경 쓰였는지 경주가 전에는 만두를 먹었는데 언젠가부터 안 먹는 거라고 했다. 언니에게 조카가 편식이 심해서 걱정이 된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만두와 함께 하고 싶은 말을 꿀꺽 삼켰다.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카페에 갔다. 오빠는 빨대로 음료를 빨아 마시더니 얼굴을 찌푸렸다. 언니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오빠가 계핏가루를 싫어해서 음료 주문할 때 미리 말했어야 했는데 깜박했다고 했다.
나 "오빠도 안 먹는 게 있어?"
언니 "그럼요. 오빠도 안 먹는 거 많아요."
언니는 낮게 한숨을 쉬었다.
"조카가 언니 식성을 닮아서 편식이 심한 줄 알았는데 오빠도 닮았구나?"
그동안 나는 조카가 오빠보다 언니의 식성을 닮아서 편식이 심하다고 오해하고 있었다. 언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오빠는 내 말을 듣고 마음이 언짢았을까.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너는 김치 물에 씻어서 먹잖아."
오빠의 말이 끝나자 남편도 한마디 거들었다.
"현경이는 두 가지 재료 섞여 있는 음식 있잖아요. 오삼불고기, 쭈삼(쭈꾸미 삼겹살 볶음) 안 좋아해요.“
나는 얼굴이 빨개져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라, 둘이 이렇게 나오시겠다?'
빙수를 한입 입에 넣고 감정을 다스렸다. 나는 마음이 넓은 교양인이니까. 번데기를 제외하고 웬만한 음식을 다 먹는 편이라 나는 편식을 하지 않는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나의 특이한 식성과 식습관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속으로는 만두를 못 먹는 조카를 이해하지 못하면서 걱정으로 포장했던 내 눈빛도 결국엔 보이지 않는 지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A 아주머니와 나는 다른 사람을 지적하기 전에 먼저 스스로를 돌아봐야 하지 않았을까. 상대방을 향해 펴려고 했던 검지를 살며시 접어 주먹을 꼭 쥔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