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정류장 유리 벽면에 붙어 있는 종이가 눈에 들어왔다. 지금 기다리고 있는 773번 버스가 11월 30일까지 운행한다는 안내문이었다. 일 년에 한두 번 타는 버스지만, 막상 노선이 폐선된다고 하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 아쉬움의 이유를 곱씹어 보았다.
773번 버스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오늘은 수세미가 다 팔렸으면 좋겠다.’
결혼식 한 달 전에 3년간 몸담았던 학원에서 퇴사했다. 신혼여행을 다녀오고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백수였다. 남편 월급으로는 생활이 빠듯했다. 나도 돈을 벌어야 했다. 그때 우리는 임대 아파트 입주 순번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남편 회사 근처에 있는 원룸 월세방에서 신혼살림을 차렸다. 이사 가기 전까지 무슨 일을 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어느 날이었다. 엄마가 뜬 수세미로 설거지를 하다가 이 수세미를 팔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엄마와 동업하기로 했다. 엄마가 수세미를 만들고 내가 판매하기로 했다.
카트 안에 캠핑용 테이블과 수세미를 챙겨 밖으로 나갔다. 집에서 1km 정도 떨어진 한적한 골목에 돗자리를 깔고 테이블을 펼친 다음 그 위에 알록달록한 수세미를 올려놓았다. 지나가는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성냥팔이 소녀, 아니 수세미팔이 아줌마로 변신했다. 용기를 내어 염소가 우는 소리와 흡사한 목소리로 “수세미 사세요.”라고 외쳤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을까. 그때는 하루에 두세 개 정도만 팔아도 기뻤다. 엄마는 자신이 뜬 수세미가 팔리는 것을 뿌듯해했고, 나는 그런 엄마를 보며 힘을 얻었다. 골목에서 한 달 정도 팔다가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으로 이동했다. 대형마트 바로 옆 버스정류장 근처에 테이블을 펼치고 수세미를 팔았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민망했지만, 정류장 뒤에 있는 나무들처럼 자연스럽게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여름부터 수세미를 팔다가 가을에 파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수세미를 판매하던 곳이 일산이라 파주에서 일산으로 가려면 773번을 타야 했다. 집 앞에서 대형 마트 옆 버스 정류장까지 한 번에 갈 수 있었다. 버스로 대략 한 시간 걸렸다. 그렇게 파주에서 일산으로 한 달 정도 오가다가 나는 테이블을 접었다. 수세미는 들이는 품에 비해 수입이 너무 적었다. 엄마는 다시 예전처럼 취미로 수세미를 떴고 나는 공부방을 오픈했다.
수세미를 팔러 가는 773번 버스 안에서 나는 미래에 대한 고민만 하느라 창문 바깥의 풍경을 즐기지 못했다. 그래서 773번 노선의 폐선 소식이 아쉬웠을까.
기다리던 773번 버스가 도착했다. 나는 버스 안을 구석구석 둘러본 다음 창밖에 보이는 풍경도 바라보았다.
그동안 파주에서 일산을 거쳐 서울까지 오가느라 고생한 773번 버스와 운전기사님 모두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