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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유쾌한씨 Nov 29. 2024

극성스러운 시어머니의 김장

시댁은 1박 2일 동안 김장을 한다. 첫째 날에 배추를 소금에 절이고, 둘째 날에 김장을 담근다.

남편과 나는 새벽 7시에 김장을 하러 시댁으로 출발했다. 휴일 아침 7시는 나에게 새벽과 같다. 8시에 시댁에 도착하니 어머니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숨을 헐떡이고 있는 어머니 뒤로 보이는 마당에는 대형 고무 통 3개에 배추가 담겨 있었다. 어머니와 삼촌이 배추 150포기를 반으로 잘라 소금에 절여 놓았다. 창고에서는 큰솥에서 다시다, 무, 양파, 표고버섯, 황태머리를 넣은 김장 육수가 끓고 있었다.

남편은 뭐가 그리 급해서 우리가 도착하기도 전에 일을 시작했냐고 어머니에게 말했다. 나는 어머니의 눈치를 살피며 잽싸게 고무장갑을 꼈다. 어머니와 나는 갓과 쪽파를 다듬고 손가락 두 마디 길이로 잘랐다. 남편과 삼촌은 포대 자루에 무를 넣어 트럭에 싣고, 무채 썰어 주는 기계가 있는 곳으로 가서 채를 썰어왔다. 삼촌은 포대 자루를 바닥에 내려놓고 농사일을 하러 갔다.

김칫소 재료를 다 준비한 다음 타원형 고무 통에 무채를 담았다. 어머니는 눈대중으로 고춧가루, 뉴슈가, 다진 마늘, 다진 생강, 미원, 새우젓, 소금을 넣었다. 남편은 고무장갑을 낀 손으로 김칫소를 버무렸다. 김칫소 마사지가 끝나고 어머니는 맛을 본 후 부족한 재료를 추가했다. 다시 버무린 후 남편과 나는 맛을 보고 어머니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뒷정리를 한 다음 소금에 절인 배추를 고무 통에서 모두 꺼내 위에 있던 배추와 아래에 있던 배추의 위치를 바꿔주었다.

어머니는 내일 새벽 6시에 일어나 소금에 절인 배추를 물로 헹구자고 했다. 남편은 7시에 시작하자고 했지만, 어머니는 6시에 시작해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다음 날 새벽 4시에 부엌에서 달가닥거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일어나야 할지 5초 정도 고민하고 다시 잠이 들었다. 6시에 일어나 밖으로 나가니 어둠 속에서 알전구 불빛에 의지하며 삼촌과 남편이 배추를 물로 헹구고 있었다. 어머니는 한 쪽에서 깍두기를 담그고 있었다. 나는 소금물에서 배추를 꺼내며 생각했다.


‘해가 뜬 다음에 배추를 헹구면 안 되는 걸까?‘


배추에서 떨어져 소금물 위로 둥둥 떠 있는 잎들처럼 내 마음속에도 불만이 떠다니고 있었다. 그때 한 아주머니가 우리를 향해 걸어오며 어머니를 향해 큰소리로 말했다.


“이 언니가 이렇게 극성스럽다니까. 사람들 다 모인 다음에 시작하면 되지, 벌써 배추를 헹구고 있어?”


나는 내 마음 속 대변인 아주머니의 말에 속웃음을 웃었다. 우리는 목욕을 끝낸 배추를 마당에 차곡차곡 쌓았다. 배추가 물이 빠지길 기다리는 동안 아침을 먹기로 했다. 부엌에 고소한 냄새가 가득했다. 대형 스텐 양푼에 어머니가 새벽에 일어나 만든 잡채가 한가득 담겨 있었다. 나는 잡채를 엄지와 검지로 집어 맛을 봤다. 마음 속 불만이 소금 녹듯이 사라졌다. 밥을 다 먹었을 때쯤 아주머니 세 분이 왔다. 아주머니들은 잡채가 가득 담긴 양푼을 보고 김장 준비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잡채까지 준비했냐고 말하며 혀를 내둘렀다.

우리는 고무장갑을 끼고 밖으로 나갔다. 아주머니들의 수다를 BGM 삼아 김칫소를 절인 배추에 넣었다. 배추와 김칫소를 맛본 아주머니들은 배추가 어쩜 이렇게 달고, 김칫소는 감칠맛이 돌아 매운데도 계속 먹게 된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머니와 삼촌이 농사지은 작물들로 만들었으니 맛이 없을 수가 없다.

나는 배추 한 잎을 떼어내 그 위에 김칫소를 조금 올려 입에 넣었다. 극성스러운 어머니의 김칫소는 고단했던 김장 준비 과정을 잊을 만큼 정말 정말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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