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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며느리를 둔 죄

by 정유쾌한씨

나는 게으른 편이다. 지금 눈에 보이는 탁상시계가 한 달째 거실 테이블 위에 누워 있다. 시계 바로 옆에 새 건전지가 있는데도 말이다. 게으른 사람을 가족으로 두면 당사자 만큼 가족들도 고생한다. 결혼 전에는 친정 식구들이 고생을 했다면 지금은 함께 살고 있는 남편과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만나는 시어머니가 고생을 한다.


나는 9년 차 주부인데도 요리책을 보고 김치찌개를 끓일 정도로 요리 실력이 부족하다. 내가 만든 음식 중에서 입맛이 예민한 어머니가 그나마 먹을 만하다고 한 요리가 있다. 미역국과 간장양념꼬막이다. 한 달 전, 그러고 보니 시계도 그렇고 또 한 달 전이네. 어머니가 간장양념꼬막을 먹고 싶다고 지나가는 말로 했다. 70대 중반인 어머니는 아귀힘이 약해 병뚜껑을 열 때마다 고생한다. 그래서 꼬막 껍질을 까는 게 힘들어 2, 3년 전부터는 내가 집에서 만들어 갖다 드렸다.


남편은 매주 주말에 시댁에 간다. 나는 최근에 주말마다 약속이 있어 시댁에 못 갔다. 그래서 간장양념꼬막을 만들어 남편이 시댁에 갈 때 보내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런데 2주 전에 어머니가 장염에 걸려 일주일을 고생하는 바람에 타이밍을 놓쳤다. 지난주 토요일에도 나는 약속이 있어 남편 혼자 시댁에 갔다 왔다.


“자기야, 엄마가 반찬이랑 꼬막 줬어. 꼬막 냉장고에 넣어 놨으니까 화요일에 만들어줘. 수요일에 갖다 드리게.”


감사하게도 어머니가 동태찌개, 미역줄기볶음, 취나물볶음을 만들어 보내 주었다. 나는 냉장고에 있는 반찬보다 꼬막이 더 눈에 들어왔다. 그것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한편으로는 어머니가 기다리다 지쳐서 꼬막을 사다 준 것 같아 민망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억울했다. 까먹은 게 아니라 타이밍이 맞지 않았던 것인데. 학창 시절 방 청소를 하려고 마음먹고 있는데 엄마가 방 청소하라고 잔소리하면 더 하기 싫은 것처럼 내 마음이 그랬다. 내가 먼저 방 청소를 하고 칭찬받는 것과 엄마의 잔소리를 듣고 청소를 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으니까.


화요일이 되었다. 저녁을 간단하게 먹고 인터넷으로 레시피를 찾았다. 꼬막을 3시간 동안 해감해야 했다. 지금이 6시 반이니까 지금부터 해감하면 9시 반. 냉장고에서 꼬막을 꺼내 스텐볼에 부으면서 내 입이 꼬막처럼 벌어졌다. 꼬막이 스텐볼에 한가득이었다. 어이없는 웃음을 짓는 나를 향해 남편은 어머니가 우리도 먹으라고 많이 샀다고 했다. 그렇다고 해도 너무 많은 것 같았다. 남편은 나의 눈치를 보며 자기가 해감을 하겠다고 했다.


3시간 후, 나는 고무장갑을 끼고 꼬막을 물에 넣은 다음 빨래하듯이 헹구었다. 꼬막 양이 많아 헹구기만 했는데도 지치기 시작했다. 큰 냄비에 물을 끓인 다음 꼬막을 넣어 한 방향으로만 저었다. 꼬막이 익는 동안 간장, 고춧가루, 다진 마늘, 다진 파, 깨소금, 참기름을 넣어 양념장을 만들었다. 남편은 다 삶은 꼬막을 건져 숟가락을 이용해 껍질을 까고, 나는 물로 한 번 더 헹구었다. 그리고 일회용 그릇에 꼬막을 한 개씩 한 개씩 열을 맞추어 놓다가 남편에게 한소리 들었다. 나는 힘들게 껍질을 까고 있는데 너는 소꿉놀이하고 있냐고. 꼬막을 질서 없이 놓은 다음 양념장을 티스푼으로 떠서 한 개씩 한개씩 올리다가 남편에게 또 한소리를 들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걸, 음식을 그릇에 예쁘게 담아 사진 찍는 것이 음식에 대한 예의인 걸 남편이 알 리가 없지.


꼬막이 일회용 그릇 두 개에 가득 담겼다. 시계를 보니 11시였다. 뒷정리를 하고 설거지를 하다가 문득 큰엄마와 외숙모의 얼굴이 떠올랐다. 명절이나 제사 때 맛있게 먹었던 그 꼬막이 이렇게 손이 많이 갔다니. 나는 이거 하나만 만들어도 이렇게 힘든데 큰엄마와 외숙모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리고 매주 반찬을 챙겨 주는 어머니의 얼굴도 떠올랐다. 내가 부지런한 며느리였다면 어머니가 꼬막을 먹고 싶다는 말을 듣자마자 그다음 주에 꼬막을 갖다 드리지 않았을까. 아니, 그 전에 미리 만들어서 갖다 드렸을 수도 있다. 게으른 며느리를 둔 죄로 어머니는 한 달 만에 꼬막을 먹게 되었다. 다음 날 아침,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한 달 만에 간장양념꼬막을 만든 이유를 구구절절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고 한 마디만 말했다.


“어머니, 꼬막 맛있게 드세요. 으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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