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행복했던 순간
사진 출처 김경희, 《아버지는 변명하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 공명, 2021.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라. 그 순간을 기억하려고 지난날을 되짚어보니, 감사하게도 행복했던 순간들이 많았더라고요. 그 수많았던 순간들 중에서 2년 전에 돌아가신 아빠와 함께했던 추억이 떠올랐어요.
어렸을 때 아빠는 제가 덮고 있는 이불 아래로 손을 넣어 저의 발바닥을 간지럼 태우곤 했어요. 간지럼을 못 참고 발버둥 치며 자지러지게 웃는 저를 보고 아빠도 함께 웃었어요. 짓궂은 장난이었지만 아빠의 눈빛과 손길, 아빠와 저의 웃음소리를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오징어를 정말 좋아했어요. 아빠가 “너는 나중에 커서 오징어 장수에게 시집을 가야겠다.”라고 말했을 정도로요. 아빠는 짬뽕을 먹기 전에 그 안에 들어있는 오징어를 젓가락으로 집어 제 짜장면 위에 올려주었어요. 오징어를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는 저를 바라보던 아빠의 얼굴이 떠오르네요. 사랑 표현이 서툴렀던 아빠는 말보다는 행동으로 딸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었던 것 같아요.
아빠와 함께 했던 추억들 중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꼽자면 학창 시절에 아빠, 엄마, 오빠와 함께 안방에서 치킨을 먹던 장면이 떠올라요. 네 명이 둥그런 상에 둘러앉아 치킨을 먹으며 텔레비전 화면을 바라보았죠. 웃긴 장면이 나오면 함께 웃기도 했어요. 이 추억을 떠올리면 행복하기도 하지만, 혼자 외롭게 돌아가신 아빠에 대한 죄송한 마음이 함께 떠올라 슬프기도 해요. 20년 가까이 남처럼 지냈던 아빠가 2년 전에 코로나로 돌아가셨거든요.
1990년대 후반 IMF를 겪으면서 우리 집안 형편은 어려워졌어요. 부모님은 10년 동안 운영하던 건재상을 정리하고, 아빠는 빚만 남기고 지방으로 내려갔어요. 그때 느꼈던 상실감과 혼란은 이루 말할 수 없었어요. 결국 부모님은 이혼하고 오빠와 저는 엄마와 함께 살게 되었어요. 엄마는 공장에서 받은 월급으로 빚을 갚았고, 저와 일곱 살 터울의 오빠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생활비를 보탰어요. 오빠의 도움 덕분에 대학 등록금을 낸 저는 대학 입학식 다음날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용돈을 벌었어요. 그때부터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20여 년 동안 아빠를 미워하고 원망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아빠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이 글을 쓰며 아빠와 함께했던 순간들을 기억하는 일도 그 노력 중 하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