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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덜 열심히 살기로 했다

by 정유쾌한씨

2024년 12월 어느 날이었다. 설거지를 하는 동안 이런저런 잡생각이 세제 거품처럼 뽀글대며 일었다. 내년에는 이렇게 해야지, 저렇게 해야지. 지금 이 순간부터 시작해도 되는데 내년부터 하기로 결심했다. 매일 그림책 한 권씩 읽고, 교육 관련 기사도 한 편씩 읽고... 5분 명상도 시작해 보자. 유튜브에서 5분 명상으로 검색하면 영상이 나오겠지. 설거지를 멈추고 고무장갑을 벗은 다음 휴대폰 메모장 앱을 열어 메모를 했다. 매일 물건 한 개씩 버리기도 하다가 말았잖아. 내년에 다시 시작하자. 계획이 많으면 못써. 지키지 못하면 스트레스 받잖아. 여기까지만 하자.


작년에는 정말 바쁘게 달렸다. 매일 100미터 달리기를 하는 것처럼. 결승점에 도착해서 잠깐 숨을 돌리려고 하면 어디선가 총소리가 들렸다. 그럼 나는 반사적으로 다시 달렸다. 숨을 헐떡이며 ‘왜 이렇게 바쁘지?’를 속으로 외치며. 멈출 수가 없었다. 새로운 것들을 접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글쓰기, 독서, 보드게임 등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채운 한 해였지만 달리는 것이 버거울 때도 있었다. 지난주에 너무 달리기만 했던 2024년을 글로 정리하면서 돌아보게 되었다. 키보드를 누르는 손이 가쁠 정도로 바쁘게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앞만 보고 달리느라 옆과 뒤를 보지 못했다. 가족을, 본업을. 그래, 작년에 열심히 살았으니 내년에는 덜 열심히 살아도 될 것 같아.


올해는 작년보다 덜 열심히 살기로 했다. 공원을 산책하듯이. 이렇게 다짐을 했어도 퇴근하고 이 글을 쓰고 있지 않은가. 오늘도 너무 열심히 달렸어. 몇 줄 더 쓰고 싶지만, 여기에서 멈출 거야. 의자에 앉아서 산책 나온 강아지들을 구경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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