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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해도 즉석 떡볶이는 먹고 싶어

by 정유쾌한씨

2024년 12월 31일 저녁, 남편과 나는 즉석 떡볶이(이하 즉떡)를 먹으러 갔다. 즉떡을 좋아하는 우리는 동네에 있는 즉떡집들을 다 가보았지만, 입맛에 맞는 곳이 없어 아쉬워하고 있었다. 그래서 최근에 오픈한 이곳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상가 주택 1층에 위치해 있는 분식집은 외벽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면서 내부를 볼 수 있었다. 넓은 홀에 직원 두 명 밖에 없었다. 우리는 잠시 멈칫했다. 건너편 돈까스집에는 손님이 많아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눈이 갔지만, 즉떡과의 의리를 지키기로 했다.


손님은 남편과 나, 우리 둘뿐이었다. 최근에 식당에 가면 홀에 우리 부부만 있는 경우가 더러 있어 낯설진 않았다. 개인 사업자인 남편도 불경기로 직격탄을 맞아 남 일 같지 않았다. 경기도 안 좋고, 시국도 시국이고. 국가애도기간이라 어딜 가나 연말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한 마디로 우울했다. 하지만 우울해도 즉떡은 먹고 싶었다.


이곳은 카운터에서 미리 주문을 하고 결제해야 했다. 우리는 고개를 들어 카운터 위에 있는 메뉴판을 보며 즉떡, 김말이, 오징어튀김, 참치마요김밥을 주문했다. 남편은 의자에 앉으면서 밥도 볶아 먹자고 했다. 최근에 본 남편의 모습 중에서 가장 활기찬 모습이었다. 나는 물이 든 종이컵을 들고 남편에게 짠하자고 했다. 우리는 종이컵을 부딪혔다. 서로에게 “올해 수고했어요.”라고 말하며. 남편에게 내년 계획을 물었다.


“경기가 좋아야 내년 계획을 세우지…”


남편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그를 따라 한숨을 쉬었다. 괜한 것을 물어 분위기를 깬 것 같아 민망했다.


참치마요김밥이 먼저 나왔다. 김밥이 정말 맛있어서 다음에 쫄면에 김밥, 김밥에 쫄면. 암튼 김밥과 쫄면을 먹으러 오자고 했다. 우리는 카운터 위에 있는 메뉴판에서 다른 김밥은 뭐가 있는지 확인했다. 김밥을 거의 다 먹을 때쯤 휴대용 가스레인지 위에 즉떡이 담긴 냄비가 올려졌다. 오랜만에 보는 즉떡이라 반가웠다. 즉떡에 기본으로 들어간 쫄면 사리의 양이 아쉬워 라면과 쫄면 사리 중에서 고민하다가 쫄면을 추가했다. 삶은 계란도. 보글보글 국물이 끓기 시작하고 2~3분 후에 쫄면을 먼저 건져 먹었다. 남편과 나는 동시에 ‘으음~’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남편은 김말이와 오징어튀김을 국물에 넣었다. 튀김을 떡볶이 소스에 묻혀 먹는 걸 좋아하는 나는 남편에게 엄지척을 했다. 우리는 즉떡과 관련된 학창 시절 추억을 이야기하며 맛있게 먹었다. 냄비 바닥에 눌어붙은 쫄면을 숟가락으로 긁어먹을 정도로. 배가 너무 불러서 아쉽게도 볶음밥은 먹지 못했다.


2024년 마지막 날, 남편은 내년 계획 대신 메뉴를 계획했다. 다음에 오면 우동이랑 쫄면, 김밥을 먹자고 했다. 남편이 행복한 고민을 하는 동안 나는 후식으로 무슨 아이스크림을 먹을지 고민했다. 배가 불러도, 우울해도 후식은 먹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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