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고등학교 친구들이랑 애들 데리고 여행 가요.”
“친구들 중에 아이 없는 애는 너밖에 없어?”
“응...”
“너만 없어?”
우리 부부는 결혼 전부터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다. 시어머니와 엄마도 우리의 결정을 존중해 주었지만, 엄마는 시어머니보다 더 아쉬워했고 아쉬워하고 있다. 엄마의 “너만 없어?”라는 말에 가슴이 찌릿했다. 속상함이 묻어 있는 엄마의 표정 때문이었을까.
고등학교 때부터 20년 넘게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 셋과 그들의 아이들 넷, 그리고 나까지 포함해서 여덟 명이 함께 2박 3일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나만 아이 없이, 가뿐하게. 그러고 보니 친구들은 있고, 나만 없이 떠나는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10여 년 전에 친구들과 친구들의 남편들, 아기 한 명을 데리고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솔로였던 나도 함께.
우리는 20대 때부터 곗돈을 모았다. 모은 돈은 함께 모였을 때나 여행 갈 때, 경조사비로 사용했다. 친구들 모두 출산하고 육아를 시작하면서 우리는 일 년에 한 번도 모이기 힘들었다. 사람은 모이지 못하는데 돈만 모이고 있었다. 2년 전에 내가 먼저 곗돈 모으는 것을 잠깐 쉬자고 했다. 목돈을 모으기도 했고 적은 금액이었지만 매달 나가는 돈이 부담스러웠다.
각자 힘들었던 시기도 어느 정도 지나가고 작년부터 우리는 아이들을 데리고 만나기 시작했다.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라 그런지 서로 잘 어울려 놀았다. 덕분에 우리는 몇 년 동안 묵힌 수다를 떨 수 있었다.
“우리, 아이들 데리고 여행도 가자!”
기억이 정확하진 않지만 내가 먼저 여행을 가자고 했었던 것 같다. 친구들은 나에게 괜찮겠냐고 물었다. 솔직히 아이들과 함께 가는 여행은 조금 걱정되었지만,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가고 싶었다. 10여 년 전에 나만 남편 없이 여행을 갔을 때도 같은 마음이었다.
친구들과 7년 만에 여행을 떠났다. 10여 년 전에 남편들과 여행 갔을 때 아기였던 아이가 올해 열세 살이 되었다. 우리는 어른 무릎 높이 정도로 수심이 얕은 미온수 수영장이 있는 풀 빌라에 묵었다. 날씨가 너무 추워서 장을 보거나 외식할 때만 외출하고 숙소에만 머물렀다. 아이들끼리 놀고 또 놀았다. 색칠 공부부터 술래잡기까지 다양했다. 놀다가 지겨워지면 수영장에서 놀았다. 어른들은 테이블에 앉아 수다를 떨고 또 떨었다.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아이들의 장기자랑 시간이었다. 아이들이 한 명씩 돌아가면서 노래, 랩, 춤 실력을 뽐냈고, 어른들은 방청객이 되었다.
엄마가 된 친구들의 모습이 생경했지만, 존경스러웠다. 내 눈에는 아직도 교복 치마 안에 체육복 바지를 입고 있는 친구들의 모습이 선한데, 아이에게 밥을 먹이고 씻기고 머리를 말려 주고 옷을 입히고 있다니. 아이가 예뻐서 어쩔 줄 모르는 친구의 모습을 보면서 엄마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우리 엄마도 나를 저렇게 키웠겠구나. 나는 절대로 알 수 없는 엄마의 마음을 쌀 한 톨 만큼은 알 수 있었다. 친구는 자기도 배고플 텐데 아이의 밥을 먼저 먹이고, 아이가 배부르다고 그만 먹는다고 하면 그제서야 식은 음식을 먹었다. 나는 친구들보다 먼저 마음 불편하게, 맛있게 먹었다. 친구들이 자식 농사를 열심히 짓는 동안 나는 일 농사를 열심히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글 농사도.
아이들을 먼저 재우고 우리는 밤늦은 시간까지 대화를 나누었다. 무알코올 맥주와 차를 마시며. 우리는 서로의 걱정과 불안을 이야기했다. 서로의 이유를 알 수 있었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다. 서로를 부러워했고, 서로를 응원했다.
그렇게 2박 3일이 월급날 월급이 통장에 스치듯이 지나갔다. 2박 3일은 너무 짧았다. 모두 아쉬워했다. 내년에는 아이들과 함께 해외여행을 가자고 누군가 말했다. 우리는 돈을 다시 모으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