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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토요일, 조카들이 우리 집에 놀러 왔다. 겨울 방학 때마다 조카들만 와서 하루 자고 간다. 남편과 나는 조카들을 데리고 무한 리필 샤부샤부 집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이곳은 월남쌈과 샐러드 뷔페를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어 남편과 내가 좋아하는 곳이다.
우리는 테이블에 앉자마자 주문을 하고 샐러드 뷔페로 돌진했다. 배가 너무 고팠다. 둘째 조카(이하 둘째)는 샐러드 바를 한 바퀴 둘러본 뒤 빈 접시를 든 채로 자리로 돌아왔다. 그런 둘째를 보고 헛웃음을 치는 나에게 둘째는 원래 편식이 심하다고, 편식이 심한 첫째 조카(이하 첫째)가 말했다. 채소를 싫어하는 둘째는 고기와 밥만 먹었다.
조카들은 월남쌈을 처음 먹어본다고 했다. 나는 라이스페이퍼에 채소를 넣고 돌돌 말아 땅콩소스를 찍어 첫째에게 건넸다. 월남쌈을 입에 넣은 첫째는 우물우물 씹으면서 눈을 찡그렸다. 호기심이 많은 둘째는 라이스페이퍼에 고기와 밥만 넣어 먹었다. 나는 둘째의 엉뚱한 행동을 보고 피식 웃었다. 조카들에게 ‘채소도 먹어야지.’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월남쌈을 입에 넣으며 참았다.
둘째는 배가 부르다며 바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나는 둘째에게 더 먹으라고 했다. 입이 짧은 첫째가 둘째는 원래 입이 짧으니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첫째도 젓가락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남편과 나를 멀뚱멀뚱 바라보기만 했다. 나는 아차 싶었다. 입이 짧은 조카들을 데리고 무한 리필 집을 오다니.
샤부샤부 집을 나와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복도 벽에 영화 포스터가 걸려 있었다. 밥 먹는 동안 조카들을 신경 쓰고 챙기느라 정신없었던 나는 영화 제목을 이렇게 읽었다.
“캡틴 아메리카노가 개봉했네?”
우리 모두는 크게 웃었다. 웃다가 깨달았다. 내가 샐러드 바 음식을 한 접시만 먹었다는 것을.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쉬운 마음에 입맛을 다셨다.
우리는 요거트 아이스크림을 포장하러 아이스크림 가게로 갔다. 집에서 둘째가 하고 싶다는 부루마불을 하며 아이스크림을 먹기로 했다. 아이스크림을 포장하고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남편은 올해 중3이 되는 첫째에게 생뚱맞은 질문을 했다.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은지. 첫째는 어색하게 웃으며 모르겠다고 했다. 이게 부모의 마음일까. 자식과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고모부랑 고모랑 하고 싶은 거 없어?”
조카들은 없다고 했다. 이게 부모의 마음일까. 자식에게 해주고 싶은 건 많은데 무엇을 해줘야 할지 모르는.
우리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부루마불을 했다. 둘째 앞에 보드게임 화폐들이 뒤죽박죽 섞여 있었다. 둘째 맞은편에 앉은 남편은 둘째에게 화폐를 정리하라고 했다. 둘째는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나는 남편에게 그냥 두라고 말했다. 실은 나도 아까부터 눈에 걸렸지만, 아이스크림을 입 안에 넣으며 참았다.
부루마불을 한 시간 정도 하고 우리는 함께 OTT 드라마를 보았다. 소파에 엎드려 누운 채로 휴대폰 게임을 하느라 드라마를 소리로만 들은 둘째는 드라마 한 편이 끝날 때마다 재미있다고 했다. 나는 어이없는 웃음을 터트렸다. 첫째가 둘째는 집에서도 휴대폰 게임만 한다고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게임만 하는 둘째가 신경 쓰여 드라마 한 편이 끝나면 보드게임을 하고, 보드게임이 끝나면 다시 드라마를 봤다. 둘째에게 휴대폰 게임을 그만하라고 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조카들과 자주 만나지 못하는데 잔소리하는 고모로 남고 싶지 않았다. 조카들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너무 참았더니 체한 것처럼 가슴이 답답했다. 내가 고모라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였으면… 음…
다음 날 집에 갈 준비를 하는 조카들을 보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고모 집에 놀러 왔는데 너무 집에서만 시간을 보낸 것 같았다. 나는 재작년에도, 작년에도 했던 결심을 했다.
‘내년에는 더 잘해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