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옷은 6개월에서 1년 사이에 교체하는 것이 좋다고 들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지금 입고 있는 속옷을 언제 샀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오래 입었다. 그래서 올해는 꼭 속옷을 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막상 속옷을 사려고 하니 어디에서 사야 할지 막막했다. 천 원짜리 손톱깎이도 신중히 고르는 나는 다른 사람들은 어디서 속옷을 사는지 궁금해졌다. 지인들에게 물었더니 대부분 홈쇼핑에서 산다고 했다.
생각해 보니 나도 20~30대 때는 홈쇼핑에서 속옷을 샀다. 10~15종으로 구성된 속옷 세트를 착한 가격에 살 수 있었다. 그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 몇 개만 입고 나머지는 엄마가 입었다.
지금 입고 있는 속옷은 내가 딱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오래 입었다. 민망해서 괜히 핑계를 대어 본다.
속옷을 샀던 온라인 쇼핑몰에 들어가 보니 내가 찾는 속옷은 품절되고 없었다. 그런데 다음날부터 SNS에 속옷 광고가 뜨기 시작했다. 전에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한 물건이 SNS에 광고로 뜨는 게 신기했는데, 이젠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속옷 광고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게 눈에 들어왔다. 호기심에 더 알아보기를 누르니 자연스럽게 쇼핑몰로 연결됐다. 그런데 속옷을 오랜만에 사는 거라 그런지 사이즈 선택이 어려웠다. 고민 끝에 창을 닫았다.
그 뒤로 속옷 광고가 전보다 더 자주 등장했다. 웬만한 영업 사원보다 내 마음의 문을 자주 두드렸다. 이 정도면 팬티 한 장이라도 사줘야 할 판이었다. SNS 광고를 통해 속옷을 사면 더 이상 광고가 뜨지 않을까. 속옷만 입은 여자 모델들의 사진과 동영상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자주 떴다. 누군가가 내 휴대폰 화면을 보면 ‘이 사람 변태 아냐?’라고 오해할 정도로.
학창 시절에 엄마가 공부하라고 하면 더 하기 싫었던 것처럼 청개구리 심리가 발동했다. 갑자기 속옷이 사기 싫어졌다. 속옷 광고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그때 어디선가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휴대폰이 내 말을 듣고 있다는. 휴대폰에 대고 속옷을 샀다고 말해야 하나... 잠깐 고민했다.
아뿔싸, 며칠 뒤 나는 SNS에 뜬 스텐팬 광고를 누르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