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동아리에서 시를 배우고 있다. 한 달에 두 번 모임을 갖는다. 자신이 쓴 시를 낭독하고 선생님에게 첨삭을 받는다.
나는 성격이 내향적인 편이어서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싫어한다. 사람들 앞에만 서면 얼굴이 붉어지고 목소리가 떨린다. 시는 배우고 싶지만 낭독하는 것은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었다. 내가 쓴 시도 어설픈데 그 시를 읽는 나는 더 어설펐다.
피할 수 없으니 배워야 했다. 때마침 도서관에서 낭독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세 달 동안. 한 달 정도 이론을 배운 다음에 실습을 했다. 학습자가 낭독을 하면 강사님이 피드백을 해 주었다. 나는 수줍어서 다른 사람들의 낭독을 듣기만 했다.
녹음실 스튜디오에서 오디오북 녹음 체험을 할 때는 나도 낭독할 수밖에 없었다. 낭독할 글을 4~5분 정도 분량으로 준비해야 했다. 어떤 책으로 낭독을 하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내가 쓴 글을 읽기로 했다. 이왕 녹음하는 거 내 글로 낭독하면 더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심장 고동 소리가 또렷이 들릴 만큼 긴장한 상태에서 녹음을 겨우 마쳤다.
마지막 수업 시간에는 도서관 정원에서 낭독을 했다. 단에 올라 마이크 앞에 서서 자신이 준비해 온 글을 읽었다. 도서관 사서 선생님들, 강사님, 학습자들 앞에 서니 오디오북 녹음 체험할 때보다 두 배 정도 더 떨렸다. 나는 또 내 글을 읽었다. 사람들에게 글쓰기를 공부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나 보다. 낭독하는 내내 심장이 빠르게 뛰어서 가슴 위에 손바닥을 대었다. 낭독이 끝났을 때는 뿌듯한 마음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가슴과 목소리가 떨리는 건 낭독을 배우기 전이나 후나 별로 차이가 없다. 그러나 나아진 것이 있다. 사람들 앞에서 낭독하는 것을 전보다는 덜 두려워하게 되었다. 낭독을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집에서 책을 읽을 때도 소리 내어 읽는다. 이제는 묵독이 낯설다.
작년 한 해 나는 낯선 나와 자주 마주했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나를 소개할 때 글쓰기를 배우는 습작생이라 했고. 전에는 취미로 글쓰기를 한다고 했다. 내 생각에는 습작생이라는 단어에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과 글쓰기를 더 열심히 배우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것 같다. 스스로를 습작생이라고 소개했으니 취미로 글을 쓴다고 말하는 것보다는 나 자신을 더 드러낸 것이다. 전에는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어려워했다.
무언가를 배우고 싶으면 배우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고. 나의 2025년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책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책을 가까이 했다. 봄에 보기 시작한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마지막 회를 겨울에 봤을 정도로 여가 시간에는 배우러 다니려고 했고 책을 읽으려고 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기만 했던 운동을 작년 12월부터 다시 시작했고. 작년 초에 올해 안에 쓰겠다고 다짐했던 브런치 연재 글을 발행했다. 12월 마지막 주에. 호흡이 긴 글을 처음 쓰게 되었다.
전에는 새해가 오는 것을 두려워하는 편이었는데 이번 연말에는 빨리 새해가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도 낯선 나와 자주 마주하고 싶다. 올해 연말에도 내년이 빨리 오길 기다리며 설레고 싶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