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영감어 : 빚
어렸을 때 일곱 살 터울의 오빠는 나를 괴롭히는 재미로 사는 것 같았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나에게 푸는 느낌?
안방에 누워서 TV를 보며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나에게 오빠가 권투 글러브처럼 양손을 감싸라고 색이 다른 수건 두 개를 준다.
오빠도 손을 수건으로 감싸고 선수처럼 준비 자세를 취하며 권투를 하자고 한다.
순식간에 안방이 권투장으로 바뀌고 긴장감이 감돈다.
아니 초등학생과 고등학생의 권투라니.
너무 하기 싫어서 얼굴을 찡그리며 팔을 뻗는다.
결국 팔이 짧은 나는 오빠에게 얼굴과 배를 몇 대 맞고 울부짖으며 끝난다.
그렇게 오빠와 나는 친해질 수 없는 가깝고도 먼 사이였다.
어렸을 때는 나를 괴롭힌다고 오해했지만 어른이 된 지금은 7살 어린 동생과 권투라도 함께하며 놀아주었던 오빠에게 고마운 마음만 남아있다.
오빠에 대한 애증이 깊었던 사춘기 시절이 지나고 수능이 끝난 어느 날이었다.
대학 합격 소식을 가족들에게 전했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웠던 우리 집은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부모님이 직장을 다니던 오빠에게 도움을 청해서 등록금을 낼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큰돈인데 그때 당시에 그는 얼마나 부담스러웠을까.
언젠가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을 때 오빠의 빚을 갚아야겠다고 다짐만 하다가 드디어 작년에 갚았다.
오빠는 안 갚아도 된다고 했지만 20년 동안 마음속에 적립한 고마움을 돈을 갚으며 전하고 싶었다.
오빠의 내 집 마련을 축하하며 갚은 돈이라서 의미가 더 깊었다.
너무 늦게 갚아서 미안하지만 빚을 갚아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 후련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