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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감성 Feb 09. 2024

각자의 몫


인생에는 그 누구도 아닌 각자가 감당해야 하는 몫이 있다.


 오랜만에 집에 찾아온 동생이 그저 설이 다가오니 미리 찾아온 것이라 생각하였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며칠 전 동생이 이상한 사람에게 설득 당해 거금을 투자당했다. 그리고 투자금 회수를 하려면 투자금만큼의 보증금이 필요해 우리 가족에게 투자금의 보증금을 부탁(빌려보기) 하기 위해 왔던 것이다.


  내 나이가 벌써 사십 중반이 되었으니 동생 또한 사십을 넘겼다. (하지만 이 부분은 어디까지나 형으로부터의 시선이지만) 왜 매번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야말로 TV에서만 보던 것을 현실애서 그것도 동생이 당한 것을 보니 참 어이가 없었지만, 그것도 모자라 동생은 아직까지 자신이 돈을 찾을 수 있다는 믿음에 가족들까지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못함에 더 서운해 하였는데 나는 이것이 더 못 마땅했다.


  실로 몇 년 만에 모여 가족회의를 하였는데 대화를 하다 동생의 뜻에 온 가족 모두가 아니라고 반대했다. 자신의 뜻을 몰라주는 상황이 오니 결국 자신의 귀를 닫아 버리고 자신의 할 만만 한 채로 다시 내려가 버렸다.


  그동안 동생은 지방에 혼자 살며 자신만의 삶을 살아보겠노라 하고 철학과 자연을 공부하며 인생을 공부하고 싶다 했다. 그러는 중간중간 자신이 깨달은 나름의 인생에 대한 진리를 우리에게 늘 설파했다. 인생은 어쩌고 저쩌고 하던 동생이었고, 자신은 돈보다는 더 중요한 가치를 위해 인생을 살겠다고 호언장담했던 자신의 인생철학과 정면으로 반하는 일을 벌이고 만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나는 종종 봐왔다. 얼마 전 만나 후배가 그러했고, 예전에 잠시 만난 동료가 그러했다. 사람이 힘들 때는 그들은 자신의 이야기에만 집중하고, 내면에서 하는 이야기만 들으려 한다. 자신이 믿고 있는 것만 믿으려 하고, 저 신의 뜻과 생각이 맞지 않는 사람의 말은 무시하거나 듣지 않는다. 그래서 다들 나중에 그 말을 들을 걸 이라고 후회한다.


  나는 지금껏 내가 감당해야 하는 내 인생의 힘든 구간을 스스로 견디며 감당하며 살았다. (모두가 그럴 테지만) 살아온 인생에 이런저런 많은 경험을 가져 어떤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견디어 내는 능력(실은 걱정을 해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후부터 알아서 잘 해결되길 시간에 맡겨둔다) 이 조금 생긴 것 같다. 힘든 일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게 그냥 마음 한편에 불안감으로 존재하지만 인식은 잘 못하고 지낸다.


  이번 일 또한 동생이 스스로가 해결할 일이라 내가 쓴소리를 했지만서도 딱히 도와줄 방법은 없었다. 스스로 닫은 귀를 다시 열 때 비로소 가족들이 보일 것이다. 지금은 마치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처럼 느껴질 테니 자금 당장 동생이 감당해야 하는 동생의 몫인 것이다.

  금액이 큰 액수이긴 한데 얼마가 되었든 간에 자신의 귀를 닫은 동생에게 도와줄 방법은 더더욱 없다. 그 누구의 지시도 없이 자신이 주인이 되어 자신만의 인생을 살며 멋지게 빛나던 빛을 잃은 동생이었기에 이번일로 인해 동생에게 적지 않은 실망감을 감출 수 없어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동생과 언쟁을 하며 예전으로 돌아간 나의 모습을 봤다. 그동안 많이 바뀌었다고, 사람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며 스스로에게 변화를 가져가며 살아온 나로서는 다시 예전의 안 좋은 모습을 보게 되면서 참 많이 노력했는데 한순간에 무너지는 나의 모습을 보며 또한 많이 실망했다. 비록 시간이 좀 지나 서로의 감정이 한풀 꺾인 상태에서는 잘 해결되리라 말을 했고, 자신의 행동을 존중해 달라 부탁했지만 그 뒤끝 맛은 시원치 않았다.


  출근을 하며 내내 이 생각뿐이었다. 나는 과연 바뀔 수 있는가 아니면 그저 바뀐척하며 가식이라는 이름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것뿐인가. 여기에 대한 해답은  아마 예전에 읽었던 “미움 받을 용기”라는 책에서 그 답을 알 수 있었다. 일을 시작하며 어젯밤 잠도 설칠 만큼의 산더미 같았던 고뇌가 어느 틈엔가 잊고 일에 열중하고 동료들과 농담을 주고받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때 알아차렸다. 각자 자신에게 주어진 몫이 있다는 것을.


  지금 나에게 시급한 문제보다 중요한 문제를 해결해 나가 보면 시급한 문제는 저절로 해결된다는 것과 수많은 일들을 거치며 우리는 살아간다는 것을 그랴서 일희일비할 것 없다는 것을 말이다.


  인생에는 그 누구도 아닌 각자가 감당해야 하는 몫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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