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와 만남
실로 오랜만에 갈기에 걸렸다. 어디서 옮은 것인지 모르겠다. 역시 아프다는 건 여러모로 좋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코로나 이후로는 처음 감기에 걸린 것 같다. 머리가 지끈 지끈거리고, 몸에 힘이 없다. 코는 왜 이리 많이 나오는지 풀어도 풀어도 끊임없이 나온다.
약을 먹어야 그나마 버틸 정도다. 몸이 아프니 글이고 뭐고 전혀 생각도 나지 않고, 쉴 땐 누워 있고, 일할 땐 약 먹고 그게 내 요즘 일상의 전부였다. 오랜만에 휴일을 맞아 그전에 잡았던 약속들 때문에 대학 후배와 친한 동생을 만났다. 대학 후배들은 약 15년 만에 만나는 것이었다. 무려 15년이란 세월이 지나 어떻게 변했을지, 또 어떻게 살았을지 궁금했다.
후배들을 만나면서 대화를 하는 순간, 이건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직감을 지울 수 없었다. 후배와 나는 모두 40대에 들어섰다. 하지만 서로 대화가 잘 통하질 않았다. 이야기를 하는 시작부터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말하는 것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듯했다. 그리고 자기가 할 말만 허둥지둥 헤대며, 밑도 끝도 없이 대화의 주제가 이상한 곳으로 흐르기도 하고, 대화에 전혀 집중을 할 수 없었다.
후배를 만나러 가는 길에 어떤 이야기를 하면 좋을까, 서로에 대해 물으며,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를 하고 싶다 생각하며 길을 나섰다. 하지만, 자신만의 세계관이 강하게 자리 잡혀 있는 사람처럼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잘 듣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묻는 것에 대해서는 다른 답변만 했다. 마치 몹시 불안한 10대 애들과 이야기를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예전에도 이런 적이 한번 있었다. 아주 오래전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는데, 밥 먹자고 약속했다고, 그 친구는 정말 밥만 먹어 치우더니, 다음에 보자는 식으로 하고 그 약속의 자리를 떠나려 했다. 그래서 내가 지금 뭐 하는 거냐 고 내가 묻자. 내가 왜 그런 물음을 가지는지 전혀 이해를 하지 못했던 그 친구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야기는 그동안의 과거에서 각자가 원하는 미래로 그 초점을 바꾸어 갔다. 내게는 여러 준비하고 있는 것들을 그동안 세운 계획대로 천천히 이루어 나가고 있다고 말해 주었다. 후배들에게 물었지만 지금에 집중한다 했다. 그저 그대들이 하고 싶은 것이 무언인지 궁금했을 뿐인데 아쉬웠다.
후배들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다음은 기약 없다는 생각만 하게 됐다. 내가 아는 혹은 내가 알던 사람들이 내게 아픔으로 다가와 유독 이번 감기와 만남은 나를 더 괴롭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