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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기억하고 있나요?

Vol.5 - 배드민턴 데이트

by 민감성





그녀와 사귀고 설레는 마음으로 밤을 보냈다. 다음 날 아침을 먹으러 식당에 가보니 이미 그녀가 와 있었다. 줄을 서고 있었는데 그녀 옆에는 같은 방사람들로 보이는 사람들과 함께 있었다. 우리를 공식적으로 사귀는 사이를 인정한 것처럼 방사람들은 내가 온 것을 확인하고는 그녀를 내 옆으로 가라고 몸으로 밀어냈다.


그녀도 어쩔 수 없다는 식의 얼굴로 약간 쑥스러워 하면서 내게로 왔다. 모든 과정을 본 나는 그쪽 사람들에게 멀리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다. 그녀들의 얼굴엔 이미 웃음꽃이 피어났다. 그녀를 먼발치에서만 바라만 보다 막상 이렇게 가까이서 마주 보니 굉장히 어색했다. 무슨 말을 할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그녀가 먼저 내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언니가 이쪽으로 가래요.”


“네 봤어요. 방 사람들이 조금 심술 굳네요. 이왕 이렇게 된 거 같이 식사하시죠?”


“네..”


그녀와 마주 앉아 단둘이 식사를 하게 되었다. 어제의 그 떨림이 채 가시지도 않았고 그저 행복했다. 그녀가 내 앞에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나질 않았다. 밥을 먹는 시간이 지나가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밥을 먹으며 그녀의 일정을 물어보았다. 그녀는 과제가 많아 새벽까지 과제를 하는 날이 많다고 했다. 그래서 전화보다는 문자가 편하다고 말을 해주었다. 나는 아무렴 어때 하며 그저 그녀와 밖에 나가 함께 걷고 저녁을 먹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오전에 수업이 있어서 먼저 일어날게요~ 오빠 연락할게요"


라는 말과 함께 그녀는 식사를 마치고 돌아갔다. 다른 말보다 “오빠 연락할게요" 란 말이 귓가에 계속 맴돌았다. 인생에서 누군가와 처음 사귀니 앞으로 무얼 해야 하는지 몰랐다. 다른 연인들처럼 함께 밥을 먹고 싶었지만 어딜 가야 할지 또 무얼 먹어야 할지 잘 몰랐다. 그녀가 좋아하는 걸 먹고 싶었고, 또 그녀가 좋아하는 곳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물어보지도 못했다.


수업을 들으며 운동을 하는 중간에도 연락을 준다는 그녀의 말에 연락이 언제 오나 하루 종일 오매불망 기다렸지만 연락은 오지 않았다. 기다리다 지쳐 먼저 ‘저녁 몇 시에 밥 먹어요?’ 라고 문자를 보내니 ‘먼저 먹었다’는 답을 보내왔을 때 기대에 부픈 내 마음은 실망으로 바뀌었다.


다음 날 아침에 식당에서 다시 그녀를 만났다. 나를 본 그녀는 이번엔 알아서 방 친구들을 남겨두고 내게 다가왔다. 나를 보자마자 그녀가 내게 말을 걸었다.


“어제 연락을 못해서 정말 미안해요. 과제 하느라 바빴어요”


“괜찮아요”


“오빠 물어볼게 하나 있어요 오빠는 취미가 뭐예요?”


그녀가 다시 날 오빠라 불렀다. 오빠라.. 듣는 것만으로도 묘하게 기분이 좋아졌다. 오빠란 단어는 몇 번을 들어도 좋았다. 오빠란 말에 흠뻑 취해 질문을 듣지 못했다. 그래서 재차 물었다.


“내 취미는 독서와 음악 감상은 아니고 사실은 운동인데요 왜요??”


“저도 운동 좋아해요!”


“진희는 어떤 운동 좋아해요?”


“저는 배드민턴 치는 걸 좋아해요 오빠는요??”


“저도 배드민턴 치는 거 좋아해요. 나중에 같이 한번 칠래요?”


“좋아요. 오빠는 언제 시간 돼요?"


“아 나는 체육관에 거의 있으니 진희가 괜찮은 시간에 내가 맞추면 될 것 같은데?”


“그래요 그럼 내일 저녁 먹고 어때요?”


“내일 저녁이라.. 좋아요~!”(뭔들 안되겠냐!!)


“오빠 참고로 저 배드민턴 잘 쳐요 ~! 오빠는 배드민턴 잘 쳐요?”


“나도 수업 시간에 배워서 조금 치는데?”


“그래요? 그럼 같이 치면 재미있겠네요.”


“좋아요~!!”( 이게 바로 배드민턴 데이트로구나 ~)



그녀와 아침을 먹으며 서로에 대해 조금 더 알아갔다. 진희와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그녀의 목소리에 묘한 매력이 있음을 느꼈다. 그녀의 목소리는 날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그녀의 이국적인 외모와 어우러져 내 마음 깊은 곳까지 들려주었다.


하루에 한 번 식사를 할 때 허락되는 그녀와의 데이트가 어찌나 짧게 느껴지는지 못다 한 말이 입안 가득했다. 하지만 내일 있을 배드민턴 데이트가 무척 기대됐다. 군대 이후로 처음으로 시간이 빠르게 지나길 바랐다.


하루가 지나고 배드민턴 체육관에서 그녀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온 그녀는 위아래 보라색 츄리닝을 입고 나타났다. 첫눈에 반한 사람처럼 보라색 그녀가 들어오는 순간부터 빛났다. 나만의 환상을 뒤로하고 우리는 몸풀기로 서로 가볍게 셔틀콕을 주고받았다. 내 눈에는 셔틀콕을 칠 때마다 찰랑거리는 그녀의 머릿결 등 그녀의 모든 움직임이 슬로우 장면처럼 천천히 움직였다. 그녀는 배드민턴을 치는 거였지만 나는 혼자 드라마를 찍는 중이었다.


“대충 몸도 풀었으니 이제부터 슬슬 음료수 내기 시합할래요?”


내 제안에 그녀도 흔쾌히 받아주었다. 1시간 정도의 시합 결과는 아쉽게도 내가 이겼다. 적당히 맞쳐주면서 어떻게든 지려고 했는데 그녀의 연이은 실수로 내가 이김을 당해버렸다. 나는 이긴 것이 미안해했지만 그녀는 내기한 대로 편의점에 들러 음료수를 사주며 다음에 다시 내기를 하자고 권했다. 그녀에게도 승부욕이 발동했던 것 같다. 우린 밖으로 나가 체육관 계단에 앉아 음료수를 마시며 짧은 대화를 나눴다.


“오빠 생각보다 배드민턴 잘 치시네요” (생각보다 못 하는 척하느라 힘들었다.)


“진희도 잘하던걸요”


“다음에 다시 시합해요 우리”


“어우 좋아요”


“오늘 재미있었어요. 간만에 운동하니 좋네요”


“나도 재미있었어요. 진희한테 얻어먹는 음료수라 더 맛있는데요”


“다음에 내가 이겨서 더 비싼 거 얻어먹을 거예요”


“언제든지요.” (또 그녀와 함께 할 수 있어서 좋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저녁 바람이 우리 둘을 감싸않았다.


“오빠는 영화 보는 거 좋아해요?” (앗!! 이것은 같이 영화 보러 가자는 의미인가??)


“영화 보는 거 엄청 좋아하죠 진희도 영화 보는 거 좋아해요?”


“네 저도 좋아해요. 오빠한테 좋은 영화 추천해 주려고요" ( 아 같이 보러 가자는 게 아니구나)


“영화 제목이 뭐예요?”


“지금 생각이 안 나서 이따가 방에 가서 네이트온으로 알려 줄게요"


“알았어요. 이따가 보내줘요”


계단에서 땀으로 인한 엉덩이 묻은 먼지를 털고 함께 기숙사로 향했다. 매번 혼자 들아가던 기숙사였는데 지금은 옆에 누군가 있다는 사실이 믿기질 않았다. 그것도 여자친구라니 말이다. 4학년이 되어 나에게 봄이 찾아왔다. 오늘 하루가 아주 룰루랄라였다.


땀으로 젖은 몸을 샤워를 하고 난 후 네이트 온에 접속을 했다. 그녀에게서 연락은 아직이었다. 아마 샤워를 빨리하는 나와는 달리 그녀는 시간이 조금 더 걸리는 듯 싶었다. 네이트온에다 “진희야 이거 보면 영화 제목 보내줘요”라는 글을 남기고 점호를 하러 행정실에 다녀오니 그녀에게 답이 와 있었다. 그녀가 추천해 준 영화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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