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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기억하고 있나요?

Vol. 13 헤서는 안될

by 민감성





논문을 쓰기 위해 설문조사가 필요했다. 축구와 관련된 논문을 쓰고 있던 나는 축구장에서 설문지를 돌릴 계획을 세웠다. 많은 양의 설문을 받아야 하기에 후배들에게 도움을 부탁을 했다.

그중에는 그 후배도 있었다. 수원 월드컵 경기장에서 프로 축구를 관람하는 관중들에게 시작 전부터 간단한 설문지 작성을 부탁했다. 400부 정도를 가져갔는데 열심히 관중들에게 설문을 부탁하는 후배들 덕분에 예상보다 일찍 마무리를 하게 되었다. 도와준 후배들과 저녁을 함께 했다. 술을 곁들인 저녁을 먹고 각자의 길로 향했다. 간만에 수원까지 올라왔기에 나도 집으로 향했다. 후배는 나와 방향이 같아 지하철로 함께 금정까지 가겠다고 했지만 고생해 준 후배 집이 있는 사당까지 배웅을 해주었다.


역시 술을 함께한 남녀 단둘이 있는 것은 위험했다. 지하철에 나란히 앉아가던 중 후배가 갑자기 내게 진심을 말하기 시작했다.


“저도 선배님 같은 남자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나도 너 같은 여자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농담으로 받아쳤다.


“치! 나는 진심으로 하는 말인데 선배는 장난으로 말하네요”


“아냐~”


“저도 빨리 남자친구 만들어야겠네요”


“그래 그럼 너는 어떤 스타일의 남자를 만나고 싶은데?”


“저는 선배님 같은 남자요.”


“아 아쉽네 나는 이미 임자가 있는데 아쉬워”


“근데 왜 나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


“과 선배들하고 동기들 이야기 들어보면 선배님은 여자친구한테 잘해준다고 하던데요”


“아냐 나도 이번에 처음 사귀는 거라 그렇게 말하는 걸 거야”


"간간이 학교에서 선배님이랑 여자친구분이랑 손잡고 걷는 거 보면 이쁜 사랑 하시는 것 같은데요”


“그래 좋게 봐주니 고맙네, 나보다 더 좋은 사람 만날 거니 걱정하지 마”


후배는 술이 들어간 김에 내게 투정을 부렸다. 며칠 뒤 학교에서 만난 후배는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를 털어놓아서 그런지 내가 더 친근함을 가진 듯 다가왔다. 은연중 후배의 진심을 알게 되어서 일까. 유난히 그 후배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이때부터였다. 진희보다 그 후배를 더 신경 되었다. 체육관에서 거의 매일 만나고, 이야기할 시간도 많았고 밥을 먹는 횟수도 전보다 더 많아졌다. 진희를 만날 때 온전히 진희를 생각하기 보다 후배와 진희를 비교하게 되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내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한 진희에게 짜증을 부렸다.


“진희야 내가 무슨 말하는지 이해 못 했어?”


“아니 오빠 이 얘기 한거 아니었어요?"


“그게 아니고 이거라고!!”


“아 나는 오빠가 다른 이야기하는 줄 알고..”


답답함을 참지 못했다. 진희가 고개를 숙이고 힘없이 미안해하는 모습에 나는 머쓱했다. 예전부터 있었던 답답함이 결국 짜증으로 표현되었다. 우리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리고 먼저 사과를 했다.


“진희야 미안해”


“......”


“짜증 내서 미안해”


“......”


“솔직하게 말하면 전부터 진희가 잘못 알아들을 때마다매번을 다시 말해야 하는 게 답답했었어”


“미안해요”

이 말 이후로 진희는 말이 없었다. 그때 알 수 없는 진희의 표정에서 나는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동안 내 안에 있던 답답함을 가둔 구슬이 깨지는 동시에 진희와 나의 관계 또한 금이 가는 계기가 되었다. 우린 말없이 바로 기숙사에 돌아갔다. 나는 여러 번 문자메시지로 진희에게 사과를 했지만 그날 진희는 답이 없었다. 이틀이 지나고 나서 진희에게 연락이 왔다.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어요. 그동안 연락 못해서 미안해요”


신경을 안 쓰려고 했지만 그날 이후로 진희를 만날 때마다 알게 모르게 이 부분이 계속 마음에 쓰이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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