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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기억하고 있나요?

Vol.14 - 헤어질 결심

by 민감성



이제 슬슬 우리가 어떻게 이별했는지 이야기를 할 때가 온 것 같다.


그동안 마음속으로만 가지고 있었던 차마 누군가에게 말하지 못했던 불편한 진실 즉 진희를 만날 때마다 답답했던 것들에 대해 예전 나에게 사람들이 왜 그렇게 이야기를 했는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보통의 연애를 하는 많은 연인들도 자주 싸움을 한다. 매번 비슷한 내용으로 싸우니 반복되는 감정 소비에 지쳐 결국 이별을 선택하곤 한다. 그럼에도 나는 처음 도전하는 연애라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생택쥐베리의 어린 왕자에는 익숙해지면 그만큼 책임이 따른다는 글이 나온다. 하지만 나는 익숙함에 따르는 책임감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진희에게 답답함을 토로한 이후, 일단은 화해를 하고 다시 만났지만 예전의 마음처럼 돌아가지 못했다. 그녀를 보면 환하게 미소를 지어졌던 예전과는 다르게 얼굴에 부자연스러운 미소가 지어졌다. 진희 또한 전처럼 마음 터놓고 이야기하는 것 같지 않았다. 알게 모르게 우리에는 거리감이라는 곳이 생기게 되었다.


게다가, 진희를 만날 때 뭔가를 하려고 해도 어떠한 말에 혹시 상처받지 않을까 걱정이 앞서 나는 말을 아꼈다.

이 때문이었을까 자주 걷던 길을 걸을 때도 나는 현격히 말수가 줄었다. 진희는 예전처럼 계속 듣기만 하는지 진희도 말을 아꼈다. 마치 서로가 살얼음 위를 걷는 것 같았다.


“진희야 무슨 말이든 좀 해봐?”


“네.. 전 별로 할 얘기가 없는데요”


그렇게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길이 나 있는 대로 그냥 걷기만 했다.


“오빠? 오늘은 평소보다 말을 안 하네요?”


평소와 다른 내 모습에 진희도 의아하는 것처럼 물었다.


“그럼 우리 오늘은 이쯤에서 돌아갈까?”


“네 알았어요”


우리는 각자에게 필요한 시각디자인 건물과 체육관 건물로 돌아갔다. 홀로 체육관에 돌아온 나는 이 감정을 해석하기 위해 텅 빈 배드민턴 경기장 벤치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별의별 생각이 다 지나갔다. 진희를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예전의 감정이 올라오지 않는 것을 보며 이쯤에서 그만 만나자고 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을 앞에 두고 나는 왜 그리 편치 못했는지를 이해하려 노력했다.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누군가 내 뒤에서 어깨를 툭하고 쳤다. 그 후배였다. 후배가 나를 보며 깜짝 놀라 한마디를 던졌다.


“어머!! 선배님 울어요?”


그렇다. 나는 내 못난 감정에 나도 모르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어? 아냐. ”


“선배님 어디 아프세요?”


처음 겪는 미묘한 감정으로 마음이 아팠지만 사랑을 옆에 두고도 의문을 갖는 내가 싫었다.


“사실은 여자친구를 만났는데 여자친구 앞에서 웃음이 안나더라고..”


“선배님 설마 헤어진 건 아니죠?”


“아니 아직 근데 아마 곧 그럴 것 같아. 저번에 한번 말다툼을 했는데 그때 내가 해서는 안 될 말을 했거든..”


결국 후배에게 내 마음을 털어놓았다. 한참 내 푸념을 들어주던 후배는 수업 때문에 휴지를 챙겨주곤 자리를 떠났다. 나는 이후로도 한동안 그곳에서 움직이지 안ㄹ았다. 누군가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나니 약간은 해소되는 듯 싶었지만, 여전히 많은 것들을 안고 기숙사로 돌아갔다.


침대에 누워서도 다시 한번 잘 해볼까 아니면 지금이 헤어져야 하는 걸까를 두고 싸워야만 했다. 엎치락뒤치락 하는 알쏭달쏭한 감정에 결국 지금과 같은 마음으로 그녀를 만난다는 것은 그녀에게 무례라는 결론을 내렸다.

며칠 뒤 내 정리된 결심을 전하려고 진희에게 연락을 했다. 며칠 만에 다시 만난 우리는 한적한 기숙사 뒤에 벤치로 자리를 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예전 헤어질 때 진희가 모자를 쓰고 왔다면 이번엔 내가 모자를 쓰고 있었고, 전에 허락할 때는 그녀가 일어서 있었고 내가 앉아 있었지만, 이번엔 그녀가 벤치에 앉고, 나는 일어서 있었다.


“진희야 사실 나 너한테 할 얘기가 있어..”


“무슨 얘기요?”


“사실 저번에 우리가 말다툼을 한 이후로 뭔가 막막한 마음이 계속 들더라고. 그래서..”


“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진희를 만나는 건 아닌 것 같아서 우리 잠시 시간을 가졌으면 해서”


“무슨 말인지 알아요.”


그녀의 대답은 칼같았다. 예전의 나는 당황해서 아무것도 묻지 못하고 헤어지자는 말에 알았다고만 했는데, 진희는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왔는지 왜 헤어져야 하는지 이유를 묻지도 않고, 바로 수긍했다.


“미안해 진희야”


“그럼 우리 그동안 연락은 안 하는 거죠?”


이 말을 듣는 순간 지난 시절 내가 진희에게 했던 약속들은 모두 거짓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보이지 않아야 할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나는 울었지만 그녀는 울지 않았다.


“어..”


라고 말한 순간 진희는 나를 한번 쳐다보더니 뒤돌아서 그대로 멀어져 갔다. 내게서 사라져 가는 진희를 그대로 바라만 봤다. 몸은 멈춰져 있는데 눈물은 멈추질 않았다.


“아.. 이렇게 헤어지는구나.” 라고 속삭였다.


어찌해야 할지 모를 마음을 달래기 위해 아무도 없는 곳으로 무작정 갔다. 결국 배드민턴장으로 들어갔다. 벤치에 앉아 ‘이제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고개 숙인 나의 시선이 바닥에서 배드민턴 네트를 향하니 처음 진희와 배드민턴을 치던 그날의 모습이 떠올랐다. 보라색 운동복을 입고 배드민턴을 치던 진희의 모습이 보였다. 그날의 그녀는 이제까지 내가 본 가장 행복한 미소를 하고 있었다.


“진희야 미안해”


라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서 중얼거렸다.


돌아서는 그녀를 붙잡지 못했다. 아니 붙잡을 수 없었다. 그렇게 힘없이 돌아서는 그녀의 마지막 모습이라도 마음껏 보려 했지만 눈물이 앞을 가려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빈 체육관에서 한없이 울었다. 마음이 왜 예전처럼 되돌려지지 않는 나를 한참 동안 한탄하며 이별의 시련을 나홀로 보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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